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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모 일기 4 | 새 출발의 희망

제4장 프롤로그

by 뺑또

2023. 12. 18


사이보그 막시무스를 키운 지도 6년이 되었다.


첫 마리모글을 쓴 지도 3년이 훌쩍 넘은 셈인데, 아직까지도 마리모글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놀랍고, 또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그분들 덕분에 매년 마리모이야기를 연재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갔던 술집에서 내 생일선물로 받았던 것이 막시무스.

그로부터 삼 년 후, 막시무스가 사이보그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데려온 것이 수세미.

그리고 바로 작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데려온 것이 바로 마리모 3호(가칭)다.


처음엔 커다란 어항에 막시무스 혼자만 외롭게 있었는데,

하나 둘 새 식구가 생기더니 이젠 마리모 가족이 되었다.


그런 사이, 나도 대학교를 졸업했고 회사를 다니다 퇴사하기도 했고,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6년 전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마찬가지로 6년 전의 사이보그 막시무스도 두 친구들과 함께 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저 물속에 둥둥 떠다니다 보니 친구들도 생기고, 집 구조도 바뀌고, 어느덧 6년 차에 접어든 거겠지. 마리모나 나나 사는 건 비슷하다.


참, 작년 이맘때 마리모 3호의 이름 공모를 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신 고마운 분들!


'세바스찬'은 막시무스와 형동생 할 수 있을 것 같고,

'수세미 2호'는 수세미 1호의 계보를 이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 같고,

'요를레이'는 발음 자체가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모두 유쾌한 이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둥이라는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둥기둥기 귀여워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

그리고 막시무스 - 수세미에 이어, 선배들과는 전혀 개연성 없어 보이는 네이밍이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달까. 딱 봐도 셋이 혈연관계는 아니고, 각방 쓰며 각자 할 일 하는 룸메이트지만 종종 거실에 나와 같이 저녁 먹고 웃고 떠들기도 하는 사이 같았다. 마둥이 이름 제안해 주신 분,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 어항에는 막시무스, 수세미에 이어 마둥이가 들어오게 되었다. (1년 만에 이름 찾은 마둥이)

왜소하지만 힘을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사이보그 막시무스와 그의 듬직한 두 동생들이다. 마음에 든다.





늘 그 자리 그곳에서 푸른 상록수처럼 변함없이 지내고 있는 마리모들.

잘 자라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죽지 않고 별 탈 없이 살고 있는 중이다.







복슬복슬 잘 자란 마리모들.

이런 걸 털 쪘다고 해야 할까?

원래 이렇게 자라는 게 맞는 건가 의심이 갈 정도로 털이 많이 자랐다.

경도 있게 잘 뭉쳤다기보다는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은 느낌의, 하얀 민들레꽃 같다.



모름지기 6년 차 프로마리모 집사라면 마리모 모양만 보고도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초보 집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쑥 잘만 자라는 마리모들. 새삼 이 놈들이 대단하다.

나처럼 대놓고 방치형으로 키우는 식집사도 없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혼자 잘 자랄까?

심지어 사이보그 막시무스조차 작년부터 겉 표면에 이끼들을 잔뜩 끼고 살더니

올해엔 수세미와 마둥이를 따라 제법 복슬복슬해졌다.

거기다 뭐가 또 그렇게 신난 건지 혼자 둥둥 떠 있는 녀석.

3년 전에도 그랬듯이, 막시무스는 그냥 혼자 둥둥 떠 다니는 게 좋은 것 같다.

수세미랑 마둥이보다 더 활기 넘치니, 이 정도면 그냥 살아 있는 거라고 인정해줘야 한다.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펭귄 마을은 물폭탄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작년 게시글엔 분명 정갈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하지만 매번 마을을 복구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물갈이 한 번 할 때마다 열심히 세팅해 놓은 오브젝트들이 저렇게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탓에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이젠 저 오브젝트들은 그냥 어항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데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리모 어항 속에는 펭귄들도 있고, 펭귄들이 사는 집도 있고, 알록달록 산호초들도 있는 것이다. 그게 똑바로 서 있지 않고 누워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있긴 있으니까.






물갈이를 위해 잠시 꺼내 둔 수세미. 꼭 매생이국의 떡 같은 모양이다.


원래는 저것보다 꼬리가 더 길었다. 후에 찾아보니 저런 꼬리들은 돌돌 말아줘서 일체화시켜주는 거라고 하더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모양을 예쁘게 다져줄 생각으로 저 꼬리들을 조금 다듬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다음엔 꼭 돌돌 말아줘야지.







왼쪽부터 막시무스, 마둥이, 수세미.


물 밖으로 꺼내니 복슬복슬한 털이 착 가라앉았다.


막시무스는 여전히 찌그러져 있고, 마둥이는 1년 전만 해도 원래 완벽한 원기둥이었는데 지금은 살짝 뚱뚱한 강낭콩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수세미랑 확연히 구분이 가능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22년과 2023년 마리모들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이렇다.


막시무스: 0.8 -> 0.8cm

수세미: 1.4 -> 1.7cm

마둥이: 2.1cm (작년 마둥이 크기를 재지 못했음)


사실 어느 부분을 기준으로 재는가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측정되는 탓에 아주 정확한 측정값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수세미를 기준으로 본다면, 1년 전보다는 확실히 더 자라긴 한 것 같다.


작년에 쓴 게시글을 보니, 내가 내년에는 조금 더 자란 마리모들과 함께 포스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던데, 올해 정말로 그렇게 되었으니 소원 성취했다.





마리모들은 어항 속에 퐁당퐁당 던져두었다. 물속에 경쾌하게 떨어지는 마리모들. 내년에 또 변함없이 다시 보자! 올해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내년도 금방 돌아오겠지.


마리모들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듯이, 나에게도 올 한 해 꽤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몇 개는 생각보다 별 일 아니게 지나갔고, 그중 몇 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어항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마리모들처럼, 나도 나로서 삶을 살고 있겠지.

그대로인 듯 조금씩 자라고 있고, 자라는 와중에도 변함없는 마리모처럼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올 한 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도 복 많이 받으시길!

내년 이 맘때에도 별 탈 없이 마리모 포스팅으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마리모들도 건강해야겠지만, 나도 건강해야겠지!



당시 실제 포스팅과 댓글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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