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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때

마리모 4년 차, 어른 7년 차

by 뺑또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대학 졸업생 시절과는 달리, 퇴사 후 내 취업 방향성은 명확했다. 회사에서 했던 다양한 일들 중에서 가장 유망해 보이는 일로 내 진로를 결정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그 직종을 공부하기 위해 국비지원학원을 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빽빽한 일정의 수업을 들었고, 실습을 하기 위해 새벽까지 팀플레이를 했다. 분명 전 직장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이었건만 전문성 자체가 달랐다. 아예 새로 배워야만 했다. 이런 종류의 툴을 사용해서 이처럼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수가 없었던 물경력 1년 차가 드디어 사수에게 배울 법한 전문적이고 효용성 있는 지식을 배우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약 3개월간의 학원 생활 이후로도 약 일주일간의 칩거생활 끝에서야 나는 그동안 내가 배우고 일해왔던 것들을 총동원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낼 수 있었다. 단 1픽셀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은 깔끔하고 정돈된 ppt. 거기에는 지난 1년여의 경력이 꽤 완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정도의 포트폴리오라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기업에는 서류로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내 노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얼른 이 멋들어진 포트폴리오를 기업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내 예상대로 포트폴리오를 넣은 기업들 중 대다수에게서 면접 일정이 잡혔다. 그럼 그렇지, 라며 기고만장해지는 것도 잠시 이제는 말로써 나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면접이라니. 사실 이전 직장에서도 면접이라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건 뭐랄까, 으레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같은 절차가 있는 면접은 아니지 않았던가. 이전 직장에서는 그저 대표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당일에 출근일자까지 정했던 것이다. 그러니 체감생 내겐 이번에 보게 될 면접이 생에 첫 정식 면접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가던 길. 목에 사원증을 건 채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직장인들 틈 속에 내가 있었다. 면접 대기실에는 내 또래의 취업준비생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해 준 물을 마시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사람과, 뭔가를 열심히 중얼거리는 사람과, 조용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내 경쟁자인 걸까? 그래도 역시 다들 떨리긴 한가보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청심환이라는 것도 마셔봤다. 그러다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면접장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내가 앉을 의자 하나와, 면접관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꽤 떨어져 있었다. 의자에 앉는데 내가 일으키는 모든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의자 끄는 소리, 앉아서 옷매무새 정리하는 소리,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 등등. 날 가려줄 책상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것도 없었으니 결국 의지할 데가 없어 내 손만 맞잡았다.


면접관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이리저리 분위기를 살폈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 대답이 괜찮았을까? 그냥저냥 별로였던 걸까? 그러다 당황스러운 질문이 나왔다. 내가 지원한 직종이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작업들 중에서 어떤 카테고리의 작업에 흥미가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카테고리라니. 대체 어떤 카테고리가 있다는 말이지? 우선 침착하게 혹시 카테고리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도 면접관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학원에서 내 직종에 대한 전문성만 키울 생각을 했지, 정작 나는 그 직종에서도 특별히 어떤 분야에 몰입을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말을 중언부언하고 나와서야 깨달았다. 내가 아직 이 직종에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면접을 보고 나오자마자 면접관들에게 들었던 질문들을 모두 메모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면접 예상 질문들을 수정보완했다. 그 작업을 반복했다. 면접 탈락 문자를 받아도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 면접의 패턴까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젠 청심환도 필요 없었다. 질문의 형태만 바뀔 뿐 그 질문의 본질은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쯤 되었을 때에야, 드디어 한 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 무렵에 이사를 갔다. 원래 동생과 함께 살았던 그 기다란 분리형 원룸은 돈 없는 비루한 사회초년생이 혼자 살기에는 사치였으므로, 이제 내 한 몸 누이기에 딱 좋을 작고 단촐한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사를 가던 날, 내가 3년 동안이나 살았던 그 분리형 원룸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벽이 튼튼하고 층간소음이 없고 건물이 깔끔해서 좋았던 그 집. 졸업을 하고 첫 직장을 다니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나의 부족한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그 방. 동생이, 친구들이 들락날락했던 그 방에 짧다면 짧은 3년의 흔적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처음으로 공간에 애착이란 것이 생겼다. 그래서 그 방을 떠나기 전에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부끄럽지만 벽에 뽀뽀까지 했더랬다. 잘 있어라 내 자취방아. 잘 있어라 나의 스물일곱.


그렇게 이사를 간 자취방은 구제시장이 있는 동네의 7평짜리 방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드디어 인생 처음으로 내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라는 것을 해봤다.

<오늘의 집>에 들어가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공간들을 구경하며 나만의 아지트 같은 자취방을 계획했다. 나의 자취방이 내게 힐링의 공간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동생과 함께 쓰던 4인용 입식 책상은 본가로 보냈고, 그 책상과 함께 썼던 의자만 내 컴퓨터 책상 의자로 썼다. 재수 시절 때부터 썼던 이불은 버렸다. 대신 3단 접이식 매트리스를 사서, 벙커베드 위에 올렸다. 이로써 매번 누울 때마다 무릎 아프게 털썩 주저앉을 일도 없어졌다. 레일 커튼을 달겠답시고 난생처음 전동 드릴을 돌렸을 땐 꽤나 긴장했다. 생각보다 나사가 천장에 잘 박히지 않아서 당황했는데 다행히 그로부터 3년이 지나도록 커튼레일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레일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인 노란색 커튼을 달았다. 침대보도, 베개도 모두 노란 계열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옐로 하우스'. 모두 내 취향으로 꾸민 그 방에 누워 있자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내 마음은 더없이 충만했다. 이제 그 집에서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겐 내 취향의 집도 있었고, 새 직장도 있었으니까. 새 출발을 하기엔 꽤나 완벽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겨우 1년 차 경력으로 입사한 중고 '신입'일뿐이었다. 중고신입이란 뭐랄까, 사회생활 경력이 있으니 최소한의 일머리 정도는 있을 것이라 기대받는, 게다가 '중고'이니까 신입만큼 가르칠 필요도 없는, 그럼에도 '신입'이기에 돈을 신입만큼만 줘도 괜찮은 그런 애매모호한 신분이었다. 물론 1년 차 중고신입만큼 신입으로 채용하기에 좋은 신분도 없었다. 1년 차란, 사수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경력이니까. 그 덕에 내가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신분이 내게 어떤 스트레스를 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대신 어떤 역경이 펼쳐지더라도 다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대책 없는 낙관만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런 낙관만 있다면야 뭐든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때였다.



그 당시 내가 꾸몄던 '옐로하우스' 빨래 한번 널면 지나다닐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 흠이었으나, 내 취향의 인테리어를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처음으로 내 방을 가져본 것처럼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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