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5년 차, 어른 8년 차
들뜬 마음으로 입사하게 된 두 번째 회사.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열심히 일하겠노라 다짐했던 회사.
그 회사는 면접에서부터 야근이 많을 것이라 예고했다.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야근 수당도 없었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난 다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도 야근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받고 싶어서 기꺼이 10시 이후까지 일을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내 거창한 다짐과는 달리 수습기간 한 달 만에 퇴사를 하고 말았다.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던 첫 번째 회사와는 달리, 두 번째 회사는 으리으리한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전철을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널찍한 대로변의 회사 건물이 나왔다. 처음 그 건물을 봤을 때부터 어렸을 적 처음으로 대형 종합학원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낯설고 서늘한 느낌. 새 공책 냄새와 잘 소독된 건물 냄새. 당장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평가받을 것 같은 폭풍전야의 분위기.
중고 신입으로서 난 뭔가를 거뜬히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물론 이전의 경력이라고 해봤자 1년 차의 물경력뿐이었고 그마저도 이번에 가게 된 회사의 직종과는 딱 일치하지 않는 직종이었지만, 그 결점을 보완하고자 학원이라도 다닌 덕에 자신감만은 넘쳐나긴 했다. 학원과 현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일단 부딪혀 보다 보면 금방 감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내 딴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일주일쯤 지나자 칭찬을 받기도 했다. 오. 이대로라면 나도 꽤 괜찮은 신입사원일지도? 뭐 그런 오만한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더랬다.
그런데 입사 일주일 뒤, 본격적으로 내 파트의 업무에 돌입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생전 처음 써보는 어떤 기획안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나는 그런 식의 기획안은 한 번도 작성해보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혹시 내가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이전 기획안 자료가 있을지, 내 사수에게 정중히 물었더랬다. 그랬더니 그 사수가 너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네?"
"지금 뭐. 라. 고 하셨냐고요."
그 사수는 내가 그런 요청 자체를 한 것에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신규입사자가 윗선에 보내야 할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회사의 이전 자료를 참고 삼아 볼 수 있을지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나 무례한 일이었던 것일까. 그럼 내가 어떻게 그 기획안을 혼자서 작성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미처 부당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마치 그 옛날, 필로티 빌라 자취방에서 날 찾아왔던 아랫집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수는 내게 관련 자료를 주기는 했으나 다시는 이런 식으로 묻지 말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알아서 해야 했다는 말일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이언트와의 단톡방에 초대되었을 때도 그랬다. 내게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던 그 사수는 내가 단톡방에 말을 하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정확히 뭘 어떻게 잘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눈치껏 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않아야 했는데 그 기준이란 결국 그 사수의 기준 (변동 가능성이 매우 높은)이었으므로 나는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줄타기는 번번히 떨어지기 일쑤였으니,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그 사수는 처음부터 나를 숙련된 경력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나를 중고 '신입'이 아니라 '중고'신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업무에 투입되어서 자신의 기준치만큼 숙련되게 일을 했어야만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입공고를 보고 지원한 신입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돈도 당연히 신입만큼 받았다. 그런데도 입사하자마자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처음 써보는 기획안을 완벽하게 작성하고 정산을 하고 섭외를 하고 촬영을 해야 했다. 모두 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그것도 상사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해 가며 말이다. 그 작업을 집에 가서도 했다. 다들 회사에서 하는 게 편하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얼른 회사를 나오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 10시까지 작업을 했으나 기대치만큼 성과가 나오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두려워졌다. 도저히 이 업무들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입사 삼 주차쯤 됐을 때의 일이었다.
중고신입이란 그런 거였다. 신입과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경력자처럼 일해주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경력이 있기 때문에 신입으로 뽑은 거니까. 말인지 방귀인지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랬다. 그렇다 보니 이전 직장에서 물경력만 쌓을 수밖에 없었던 내겐 예정된 고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 내 잘못인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처음부터 포기를 했거나 손을 놔 버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꽤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터였다. 왜 드라마든 뭐든 그런 플롯도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어리숙하던 신입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점차 성장을 해나가는, 그래서 결국 자신을 미워하던 사수에게도 인정을 받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나는 퇴근하면서도,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도, 늘 그 가능성을 생각했다.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사수에게 질문도 하고, 주말에도 업무 역량을 키우기 위해 내 딴에는 나름 열심히 노력을 했더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름 여러 일을 잘 처리해보려고 했던 일이, 내 사수에게는 그저 '일을 대충 빨리 쳐버리려고 하는 행위'처럼 보였나 보다. 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잘하면서 다 처리할 수 있었을까.
그 와중에 나는 또 계속 실수만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다. 다루기 까다롭다는 인플루언서를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서 그 인플루언서와 소통하고 있었다. 전화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덕분에 섭외 확정을 받고 관련 내용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정했던 마감일자를 넘어서도 그 인플루언서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어떻게든 실수 없이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 인플루언서에게 문자로 혹시 그 건은 언제쯤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랬다. 그런데 아차, 그게 토요일이었다. 결국 주말에 감히 문자를 했다는 죄로 그 인플루언서는 갑자기 섭외승낙을 취소하고는 내가 답장을 보낼 새도 없이 내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그때가 친구들과 밖에 있었을 때였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즈음이 되자 내가 그 직종에 재능도 없다는 사실도 들통나기 시작했다. 기업의 제품 이미지 콘텐츠를 제작해야 했는데 내 눈에는 다 좋게 보이는 이미지들이 사실은 모두 좋지 않았다. 사수는 그래도 이미지를 많이 보다 보면 감각이 생길 거라고 말하며 나름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도무지 동감할 수가 없었다. 주말 동안 아무리 SNS를 들여다보아도 그 감각이라는 것이 쉽게 생기질 않았던 것이다. 하긴 SNS자체를 잘하지도 않았고 사진 찍는 취미도 없었던 내게 그런 능력이 갑자기 생길 리가 없었다. 결국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달은 나의 사수는 상급자와 말해서 내 업무를 줄여주기도 했다. 나를 잘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업무 능력이 올라간 것은 아니었으니, 나도 답답했지만 경력자인 줄 알고 자기 밑으로 들였던 사수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놈의 정산 시스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얼 어떻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는데 다시 설명을 요청해보기도 하고 관련 자료들을 읽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왔건만 이걸 이렇게 못할 수가 있다니. 나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사실 애초에 숫자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정산을 할 때에도 0 하나를 더 붙이기 일쑤였던 나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기는 했다. 그런 내가 뭔가를 정산하고 청구해야 했으니 매번 살 떨릴 수밖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구나. 즐겁지도 않거니와 오래 할 수도 없겠구나. 역시 학원과 실무는 전혀 달랐다. 그게 입사 한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헉, 하고 소리치며 잠에서 깼는데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찌나 흠뻑 젖었던지 한 번은 모든 게 귀찮아서 그냥 잤다가 그다음 날에 감기에 걸릴 정도였다. 그 후로는 밤마다 중간에 깨서 잠옷을 새것으로 갈아입어 주어야만 했다. 그걸 매일 밤마다 했다.
퇴근길에서도 집에서도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안 좋은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평일뿐만이 아니라 주말에도 그랬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 보면 한 것도 없는데 주말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결국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바로 퇴사를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로도 얼마나 많은 번민이 있었는지 모른다. 회사를 오래 다닌 것도 아니고, 고작 한 달밖에 다니지 않았으면서 지금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 더 다니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사수와 마찰이 있긴 했지만 다들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나만 잘하면 다 해결될 문제 같은데. 기타 등등...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퇴사를 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더 이상 이 직종에서 커리어를 쌓고 싫지 않다.
2.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지 않다.
커리어에서도, 회사에서도, 급여에서도 이득이 없다면 그 회사를 더 다닐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무조건 환승 이직을 해야 한다는 글들을 많이 봤지만 나는 그럴 여력도 없었다. 게다가 수습기간 중 퇴사는 이력서에 경력으로 기재할 수도 없으니 얼른 퇴사해서 직종변경에 집중하는 것이 나나 회사에나 이득이었다. 결국 그 결심 덕분에 내가 원했던 회사의 채용공고에 제때 지원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회사에 합격하여 잘 다녔으니 잘 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엄마가 입이 아프도록 얘기했던 그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회사와는 좋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퇴사일정이 정해졌다. 퇴사를 얘기하면 마음이 후련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퇴사 직전까지도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었다. 내 결정을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었는데도, 더 이상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회사의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퇴사 바로 전날 밤에는 새벽 다섯 시까지 뜬 눈으로 버텼다. 안 좋은 생각으로 눈물을 펑펑 쏟다가 퇴사 당일, 멍한 머리로 회사에 마지막 출근을 했다.
회사 밖에서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나 혼자 복귀하는 길. 멍하니 노을이 지는 그 동네를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그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 해보는 태업이었다. 인사팀과 만나 퇴사 서류에 사인을 했을 때 인사팀 직원은 꽤 아쉬워했다. 그 인사팀 직원은 내 면접을 보러 들어온 면접관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그 부서가 힘들기로 유명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물론 직종 변경하겠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이 직종을 아예 포기하거나 배제하지는 마세요."
퇴사 이후에는 잡플레닛에서도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격분한) 퇴사자의 리뷰를 봤다. 그제야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이런 문제로 퇴사한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 일들을 통해서 내겐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친구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왜 그렇게 낙담하느냐고,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 요새 세상에서는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또 권장되지 않던가. 그런데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한 젊은이라니. 이 어찌나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 더 이상 와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친구의 걱정처럼 낙담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힘이 났다. 나는 드디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직장에서는 내 가능성을 넓혔다면, 두 번째 직장에서는 내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한 달일 수도 있겠으나, 그 한 달간 적어도 내 딴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다. 물론 그 똑같은 일을 나보다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재미도 없고 적성에 맞지도 않고 보람도 없는 일을 어떻게든지 내게 맞춰 보려고 이리저리 욱여넣으려 했던 그 노력을 그때보다 더 잘할 자신은 없다. 내 능력의 한계다. 그러니 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 않았다.
사실 그 직종으로 이직을 하게 된 이유도 해봤던 일들 중 가장 유망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커리어를 어떻게든지 이어가야만 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름 그럴싸해 보이는 직종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로 그 직종을 좀 편협하게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 한계를 알고 나자, 그 한계 덕분에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돌파해 나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직종변경을 준비했다. 직종변경을 위한 새로운 기준은 이러했다.
-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인가.
- 커리어를 장기적으로 쌓을 수 있는가.
-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인가.
- 나중에 프리랜서로서 커리어를 가져갈 수 있는가.
그렇게, 나는 그 한계 내에서 더 자유롭게 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