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5년 차, 어른 8년 차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입사한 지 약 한 달 만에 도망치듯 퇴사한 나. 그 커리어를 위해 국비지원 학원에도 다녔으나 직종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새롭게 세운 내 이직 기준을 바탕으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몇 가지 길이 보이기는 했다. 그중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길이었다. 정말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으나, 내 이직 기준은 명확했으므로 그 기준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직종변경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학원 같은 것도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아예 허사는 아니었던지, 옛 경험을 바탕으로 하니 그 포트폴리오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예 0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왔던 길에서 방향만 틀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뭐든 해봐야 안다.
새로운 직종에 맞춰 면접 준비도 새로 했다. 그런데 그 예상질문 중에서 내게 꽤나 곤란한 질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공백기간'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수습기간 1개월 만에 퇴사했다는 이력은 당연히 이력서에 적어내지 않을 것이므로, 그 1개월의 기간은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그에 따라 그 직종을 위해 국비지원학원을 다니고 최종 합격이 되기까지의 약 4개월이라는 기간도 비어 있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첫 번째 직장 퇴사 후 조금 쉬겠다며 1개월을 쉬었던 것까지 합친다면 나는 도합 6개월 이상을, 그냥 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학원을 다니고, 몇 주간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한 달간 고군분투하며 직장을 다녔던 그 모든 기간이 그저 '공백 기간'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접관에게 "그 기간을 통해 정서적으로 성장했습니다만?" 따위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면접관을 울릴만한 대히트 감동서사가 아니고서야 친한 친구마저도 의리로 들어줄 것 같은 그런 재미없는 개인사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Q. 공백 기간이 긴데, 뭘 했나요?
A. 직종변경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나마 직종변경이라는 구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나는 모든 면접에서 그렇게 대답을 했고 그중 한 기업에 합격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내 대답이 면접관들에게 납득이 갈만한 답변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진짜 했던 일은 면접용 대답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이력서에 적힌 6개월의 공백이 아니라, 실제로 두 번째 퇴사 후의 약 1개월간의 공백기간 동안 했던 일 말이다.
당연히 직종변경을 위한 노력도 했다. 방황은 하더라도 실행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성격 덕분에 내가 세운 계획대로 빠르게 실행한 결과 금방 이직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히 그것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겐 이직 준비만큼이다 더 절실하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퇴근 후 제대로 쉬는 방법을 익히는 일이었다.
<오늘의 집>으로 자취방을 인테리어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나의 그 '옐로 하우스'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게 쉼이 되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상 회사 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나니 그 자취방이라는 공간도 내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다. 주말에도 하루 종일 회사 생각으로 멍하니 숏츠만 보았다. 옐로 하우스도 내 눈엔 그저 무채색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공간을 내 취향으로 꾸몄다 한들 그것들을 즐기지 못하니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전 직장이 유독 큰 스트레스였던 탓도 있었지만, 돌이켜보건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첫 직장에 다녔을 때에도 난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기는 했다. 그러니 그다음 직장을 원활하게 다니기 위해서라도 나는 온전한 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회사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머리를 텅 비울 수 있는 쉼 말이다.
나는 그 해답을 공간이 아닌 시간에서 찾았다. 쉼을 얻으려면,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루틴을 찾아야 했다. 내가 실천했던 방법 두 가지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매주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 다짐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무릎 강화 운동을 시작한 뒤로 운동이 신체 건강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했으니까. 그런데 인간이 참 간사한 것이, 무릎 통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이전까지만 해도 평생 할 줄만 알았던 무릎 강화 운동조차도 귀찮다며 등한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게으름 탓에 정기적인 운동도 미래의 일로 유예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서야 그 정기적인 운동을 실행할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는 내 몸을 위해서라기보다 내 마음을 위해서였다.
무릎 강화 운동을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비단 운동과 신체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운동이 곧 명상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명상을 통해 머릿속이 맑아지듯이, 운동을 하며 내 몸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의 잡념들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근력 운동을 하면 근육에만 집중하게 됐다. 러닝을 하면 내 호흡에만 집중하게 됐다. 바로 그 몰입의 시간이야말로 나를 괴로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러니 운동을 해야만 했다.
나는 수영을 하기로 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라는 점도 좋았으나, 어렸을 적에 수영 강습을 받았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수영하는 언니들 틈에서 낯을 많이 가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 시간이 꽤 좋았다. 물 밖에서는 해선 안 되는 행동들이 물속에서는 허용됐다. 마음대로 잠수할 수도 있었고, 몸을 이상하게 비틀 수도 있었고, 죽은 척 몸에 힘을 풀고 둥둥 떠다닐 수도 있었다. 그 죽은 척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던지, 한 번은 한 아주머니께서 날 보고 사고가 난 줄 알고 소리를 지르셨던 적도 있었더랬다.
그렇게 그 자유로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신청하게 된 수영 강습. 너무 오랜만에 남들 앞에서 옷을 벗자니 부끄러웠다. 수영복은 또 어찌나 들어가지를 않던지, 보다 못한 어르신이 내게 비누칠을 하라고 조언해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어기적어기적 수영장에 내려간 나. 익숙한 락스 냄새를 맡으며 수영장 물 안에 들어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자마자 놀랍게도 어릴 적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어릴 때처럼 죽은 척을 하는 엉뚱한 짓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살을 가르는 것에 집중하며 수영장 레일을 돌았다. 발차기와 팔의 움직임, 그리고 내 호흡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은 도무지 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샤워 후 밖으로 나오니 더없이 상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다시 보였고 더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확실히 운동을 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심장이 뛰면서 새로운 생각이 밀려드는 덕분에, 혼자 반복하고 있었던 묵은 생각들이 밀려난다.
매일 집과 회사만 오가다 보면 궁극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 바로 '자동 출퇴근' 능력이다. 아무리 딴생각을 하고 있어도 내 몸이 알아서 저절로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 능력 말이다.
이 능력을 쓰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이미 지하철을 갈아 탄 뒤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도 닳고 닳은 길이다 보니 새로운 자극이랄 것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늘 고정된 길만 오가며 나를 갉아먹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내가 만든 우울의 늪에 계속 빠져들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네 산책이 필요했다. 그 매일같이 반복되는 경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목적지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를 즐기기 위한 산책이 필요했다. 주변에 산책로가 없어도 개척하면 됐다. 마치 모험을 하듯, 이곳저곳 낯선 곳을 누비다 보면 평소에는 몰랐던 또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나는 그 공백기간 동안 동네를 산책했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하루는 계획 없이 산책길을 걷다가 우연히 곁가지로 뻗어 올라가는 실계천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곳엔 봄이면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폈고 여름이면 풀숲이 무성하게 자랐다. 그곳에는 오리 가족이, 왜가리와 백로가, 잉어들이 살았다. 낮에는 유치원생들이, 화단을 손질하는 작업자들이,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있었고 밤에는 퇴근하고 나온 가족들, 강아지들, 러닝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져있나 궁금해서 그저 앞으로만 달렸던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고가도로 밑으로 난 널찍한 자전거 길이 나왔다. 고가도로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들이 굉장히 묵직하고 위압감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신전 같았달까.
그곳에는 커다란 하천이 꽤 거친 물살을 만들며 흐르고 있었다. 그 하천을 따라 자전거길과 산책길이 있었고, 그 옆으로 커다란 놀이터와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체조를 하는 공터, 아저씨들이 족구를 하는 족구장도 있었다. 그뿐이랴. 농구장, 축구장, 스케이트보드장, 물이 나오는 수영장 놀이터, 심지어는 맨 발 머드길까지 조성되어 있었으니 그 동네에 그만한 복지도 없었다.
하루를 통째로 빌려서 자전거를 타고 그 길만 쭉 따라 달렸던 적도 있었다. 더 이상은 달릴 체력이 없을 때에야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버스정류장을 찾았는데 뜬금없게도 이태원이 나왔다. 나는 그 동네에서 계획에 없던 카페에 들러 처음 보는 독특한 음료를 마셨다. 그게 참 재미있었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 이 동네에도 탐험이라는 게 가능하다니.
그렇게 새로운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맑아졌다. 외롭지도 않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인 것 같지 않았다. 나처럼 퇴근 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았던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뜀박질을 하면서 내일을 준비했다.
공백기간에 내가 했던 일들은 모두 그만큼의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비단 직종변경을 위한 노력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황하듯 동네를 돌아다니고, 그저 취미처럼 수영을 했던 것들도 결국에는 하루의 생활루틴으로 정착해 이후 회사생활에서 내게 내일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말이다. 단지 일만 잘한다고 업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내 스트레스를 올바르게 풀 수 있을 때, 내일을 버텨낼 용기가 생기는 거였다. 그러니 그 공백기간 동안 내게 무얼 했느냐 묻는다면 나는 직종변경을 위한 노력만 하지는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물론 이력서에는 그에 대해 단 한 줄도 적어낼 수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