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 남자친구가 뜬금없이 보일링크랩이라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것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알고보니 요새 유행이란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게, 새우, 홍합 등을 푹 쪄내서 양념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었다.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보통 이런 해산물은 양이 적거나 너무 비려서 불호하게 되는 게 필연적이라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던 거였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 독특한 붕어빵 가게를 발견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남자애 두 명이 붕어빵을 만들고 있었다. 팥 붕어빵부터 슈크림 붕어빵, 십원빵, 호떡, 심지어 미니 붕어빵까지 다 총출동해 있어서 마치 빵틀로 구워낼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다 팔아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욕심 그득한 메뉴 설정과는 달리 정작 가장 인기가 많은 붕어빵 빵틀이 고작 5구짜리 한 줄 뿐이었으므로 매출은 커 보이지 않았다. 덩치 큰 남자애는 손이 무척 느렸다. 그 옆에 서 있던 마른 남자애(아마도 다른 빵을 담당하고 있었을)는 주문 관리를 할 생각도 없이 그저 뻘쭘하게 서 있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런 비효율적인 생산 구조와 추운 날씨가 주는 낭만 덕택에 그 점포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버렸다. 나와 내 남자친구 역시 결국 그 붕어빵의 낭만을 못 참고 줄을 서 버리고 말았으니, 그 탐욕의 업보로 2 ~30 분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붕어빵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나름 관찰할 거리들이 많았던 덕이다. 우선 첫 번째 관찰거리. 이 어린 사장님들이 붕어빵 앙금을 정말 아낌없이 두툼하게 넣어주셨다. 붕어빵 굽는 모양새가 좀 어설프기는 했지만 적어도 양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손님 입장에서야 좋기는 했으나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 어린 사장님들이 과연 재료 값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관찰거리. 그 와중에 나름의 장사 수완을 생각하기는 했는지, 붕어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열심히 호떡(아마도 제일 안 팔리고 있을)을 구워서 무료로 시식해 보라며 홍보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호떡을 먹어본 입장에서 말하건대, 역시 호떡은 기름에 튀긴 호떡이 제맛이지 빵틀에 구워 만든 것은 퍽퍽해서 영 맛이 없다. 내가 줄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 시식을 두세 번이나 더 했으나 아무도 호떡을 사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면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관찰거리. 내 앞에는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줄을 서 있었다. 눈매가 고양이처럼 크고 예뻤다. 처음에는 맨 앞에 서 있었던 아빠와 아들과 한 일행인 줄 알았으나 관찰 결과 아빠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근거로 다른 일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문 관리 시스템의 미비로 누가 먼저 주문을 하고 누가 주문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천 원과 오천 원짜리 지폐를 한 손에 꼭 쥔 채 살짝 초조하게 서 있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주문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내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인지 나를 보지 않는 척 뒤를 돌아보면서 세네 번이나 나를 흘깃 쳐다봤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살짝 웃어주기는 했는데 그게 호의로 느껴졌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기에는 나도 낯을 가리는 탓에 결국엔 남자친구에게 말하는 척 아이가 들으면 재미있을지도 모를 말들을 했다. 이를테면 "여긴 일이 비효율적이고만~" 이라든지, "그래도 붕어빵은 맛나긋지~" 뭐 이런 실없는 소리 말이다. 그게 아이를 좋아하는 내향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달까.
여자 아이의 차례가 되자, 아직도 여자 애가 아빠와 한 일행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불쑥 주문을 해버렸다. 내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그 여자애는 하루 종일 우릴 원망했을 거다. "혹시 주문했어요?" 하고 물으니 역시나 주문을 하지 않았던 그 여자애는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붕어빵 여섯 개를 주문했다. 붕어빵을 받고 돈을 내려하는데도 그 어린 사장님들이 돈 받는 것을 깜빡했던 탓에 내가 목소리를 높여 계산을 해달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 여자애는 날 어떤 사람이라 생각했을까. 친절한 언니? 오지랖 많은 이모? 얼추 예측 가능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생각은 전혀 가늠이 되지 않기에 더욱더 궁금하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볼거리가 많았던 붕어빵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걸어서 무려 30분이나 되는 길을 걸으며 나와 남자친구는 그 붕어빵 가게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한참 동안 떠들어댔다. 시스템이 없다, 심지어 손도 느리다, 게다가 앙꼬를 이만큼이나 넣어주다니 분명 시세를 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등... 대체 어쩌다 그 두 남자애는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게 됐던 걸까? 생김새도 전혀 달라 형제처럼 보이지도 않던데... 덩치 큰 남자애가 마른 남자 애 보다 더 적극적으로 보였다. 아마도 이제 갓 아르바이트를 할 나이게 되어서 한 철 장사를 해보자, 하고 친구와 시작은 했으나 막연하게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으니 다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빵틀을 다 사버린 것 같았다. 혹은, 그 붕어빵 틀을 파는 업자가 애들을 만만하게 보고 재고가 남았던 각종 빵틀을 패키지로 묶어 팔아재꼈던 것일 수도 있으리라.
아니면, 사실 그 붕어빵 가게에는 따로 주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주인은 굉장한 붕어빵 고수였지만 갑작스레 팔을 다쳐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대신 붕어빵 장사를 해보겠다며 친구 하나를 데려다가 시작해 본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 고집스러운 '팥 붕어빵' 사랑을 내심 못마땅에 하고 있었기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먹힐만하다고 생각되는 10 원빵, 미니 붕어빵, 슈크림 붕어빵까지 들여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야심 차게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영업 결과, 아버지의 매출액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매출액을 찍게 되고, 결국 아버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지혜와 강인함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아들에게 넌 최선을 다했다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아버지...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겠다.
내가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니, 막상 이런 근본 없는 얘기를 시작한 것은 남자친구였으면서 영 질린 표정이었다. "이렇게 감당 안 될 줄 몰랐지?"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말하는 남자친구. 그러면서도 오늘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우선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며 노는 것 자체가 낭만이라고 했다. 보일링 크랩도 맛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붕어빵을 먹은 것도 정말 좋았단다. 그 어린 사장님들 덕분에 30분간 웃고 떠들며 왔던 이 시간도 너무 좋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길게 느껴졌던 30분의 길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그 붕어빵 가게로 인해 우리는 더없이 열 띄게 이야기를 이어갔으니 말이다. 게다가 분명한 건 그거였다. 붕어빵이 정말 맛있었다는 거였다. 붕어모양 틀보다 더 크게 반죽을 부은 덕분에 겉은 네모난 모양으로 바삭바삭하게 구워졌고, 속은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에 팥 앙금이 아낌없이 들어차 있었다. 과장 좀 보태서 지금껏 먹었던 붕어빵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래서 결국 다음에 또 그 붕어빵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쩌면, 그 어린 사장님들의 역량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급한 기대감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