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야생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산속. 땅은 낙엽으로 뒤덮여 있고 나무는 군데군데 높다랗게 솟아 있다. 살짝 굴곡이 져 있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땅 위에 그나마 평평하고 마른 곳을 찾아 침낭을 깐 뒤 낙엽과 마른 장작으로만 모닥불을 피우니 어느새 자그마한 야영지가 완성된다. 오늘 갓 사냥한 사슴고기와 운 좋게 채집한 야생 버섯을 모닥불에 구우며 허리춤에 달린 휴대용 술통을 꺼내 보드카를 마신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 지친 몸을 쉬이고 나면 내일 오후 즈음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뭐 대충 이런 감성 말이다. 야생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극한의 컨셉 놀이. 그것이 곧 캠핑인 것이다.
물론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일단 캠핑지 자체도 나라에서 공인된 캠핑 가능 지역이어야 한다. 먹을 것도 마트에서 고심 끝에 사 올 테고 텐트나 침낭은 무슨 최첨단의 기술공학이 적용된 소재를 쓴다. 나 같은 경우에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곳으로 캠핑을 가는 게 꺼려진다. 그리하여 따뜻한 물로 향긋한 거품을 내어 목욕을 하고, 푹신한 에어메트에 누워야 잠이 잘 오는 것이다. 이렇게 문명 친화적인 야생이라니. 그러니 캠핑이란 곧 야생인 척하는 최첨단 문명의 집합체이자 '어른들의 소꿉놀이'라 할 수 있겠다. 여름엔 에어컨을 틀고 겨울에는 난로에 전기메트에 실링팬까지 쓰면서도 마음만큼은 서부의 카우보이, 러시아의 베어그릴스, 혹은 조선의 보부상인 것이다.
아주 운이 좋게도 나와 내 남자친구 모두 캠핑을 좋아한다. 추울 땐 춥게, 더울 땐 덥게 자야 하며 화장실은 텐트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하는 데다가 샤워실은 공용이고 공들여 텐트를 쳤다가 그다음 날에 다시 접어야만 하는 생고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선호도만으로 캠핑을 곧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캠핑을 하려면 여간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먹고 자고 씻는 데에 필요한 장비들은 물론이요,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것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세상에 '차'라니.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인 나와 내 남자친구.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긴 했지만 차를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도 차를 산 친구들은 없었다. 애초에 운전 자체가 불필요해 보였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고 데이트를 하다 보면 굳이 그 복잡한 서울 도로 위에서 차를 끌고 주차 걱정을 하는 것이 무척 고단해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우린 차 없이도 잘만 빨빨거리며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녔다. 강릉 부터해서 여수, 경주, 부산 등등... 뚜벅이 생활 자체가 주는 감동도 있었다.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어두운 대로를 하염없이 걸어간 끝에 우연히 따스한 불빛이 번지는 파스타집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결국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차를 사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 역시 막연한 버킷리스트 같은 것으로만 남겨 두었더랬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차를 사겠단다.
이미 남자친구의 유튜브가 차 관련 영상으로 도배되고도 남았을 때였다. 왜 차를 사고 싶냐고 했더니 우리들의 추억을 위해서란다. 차가 생기면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그렇게 생애 가장 젊은 날에 더없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나 뭐라나. 추억이고 나발이고 그냥 사고 싶어서 사는 것 아니냐고 해봤지만 아뿔싸, 한발 늦었다. 이미 남자친구는 중고차 어플에서 마음에 쏙 드는 차를 발견했고 사랑에 빠진 눈치였으니까.
그 차가 경차였다. 그것도 중고 아반떼보다 더 비싼 경차. 심지어는 한국인이라면 응당 골라야 할 무채색이 아닌 쨍한 민트색이었다. 아니 돈 아끼려고 했으면 제일 싼 차를 골라야지 왜 하필 아반떼보다 비싼 경차인 것이며, 왜 하필 내가 초등학생 때 썼던 롤리팝폰을 연상케 하는 색이란 말인가?
"나한테 딱 어울리지 않아?"
그게 남자친구의 대답이었다. 크기도 아담하고 귀여워서 부담 없어, 그런데 눈매는 매서워서 멋져 보여, 그런 데다가 경차 관련해서 혜택도 잘 받을 수 있어, 심지어 평범하지 않고 톡톡 튀는 색깔이야. 그래서 그 차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랑에 빠졌다는데 내가 뭐 어찌할 수 있을까. 게다가 본인 돈이 아니던가. 그렇게 우리의 첫 차는 그 민트색 경차가 되었다. 남자친구의 애칭인 '뿌또'에서 따와서 이름도 '뿌카'가 되시겠다.
그렇게 우리는 뿌카로 첫 캠핑을 시작했다. 캠핑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SUV도 아니었고 브랜드 있는 캠핑 용품도 없었고 낭만 넘치는 캠핑 사이트를 꾸민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돈도 없었고 사진 찍는데도 취미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만일 감성 넘치는 캠핑 사진이나 고급스러운 캠핑장비들로 채워진 캠핑 사이트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픈 분들이라면 더 전문적인 에세이나 유튜브를 찾아가시기를 바란다. 우리도 틈날 때마다 그런 콘텐츠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니까.
이 에세이는 적은 자본으로 캠핑을 시작한 초보 캠퍼의 현실적인 우당탕탕 캠핑 대소동 이야기이다. 난로 없이 영하 15도에서 자고 20년 넘은 텐트에서 자다가 침수되고 까마귀한테 삼겹살을 빼앗기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참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러니 내 예상과는 달리, 차가 있어서 전에 없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뿌또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경차 타고 캠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