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뚜로 빼뚜로 Aug 03. 2021

모든 색이 공존하는 삶에 대하여

: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색채 미학

온 나라가 한국영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던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의 <기생충>과 나란히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스페인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색채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2019년작 <페인 앤 글로리>이다. 수상을 못해서인지 아니면 <기생충>의 기세에 가려져서인지,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진 못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N차 관람을 할 정도로 매우 맘에 들었던 작품이다. <페인 앤 글로리>에 매료된 필자는, 작년 하반기 개봉예정이었던 알모도바르의 신작 <휴먼 보이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참혹한 현실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7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먼 보이스>가 개봉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휴먼 보이스>의 개봉을 자축하는 의미로 <페인 앤 글로리>의 리뷰를 해볼까 한다(?) 문맥상 <휴먼 보이스> 리뷰를 쓰는 것이 맞지만, 아직 1회차 관람밖에 하지 않은 관계로... 한번 더 관람한 뒤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ㅎㅎ


이름하여 <휴먼 보이스> 개봉 기념, <페인 앤 글로리> 리뷰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작품이라 불리는 <페인 앤 글로리>는 40여 년간 영화 창작이 그에게 남긴 고통과 영광을 은유한다. 앞서 언급했듯, 알모도바르는 색채의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으로, 색채를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핵심언어로 사용해왔다. 일례로, 그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욕망'은 '빨강'이라는 색채를 통해 시각화된다. 또한 그는 어둠 속에만 위치해있던 경계적 캐릭터들(억압받는 여성, 성소수자 등)을 화려한 원색으로 부활시키며 그들의 강렬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색채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색채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알모도바르의 연출 방식은 <페인 앤 글로리>에서도 그대도 나타난다. 색채 연구가인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 주목하여 <페인 앤 글로리>의 색채 미학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포스터

영화는 수영장의 파란색 물을 화면 가득 담아내며 시작된다. 파란 물속에는 살바도르가 부동의 자세로 가라앉아있다. 파란 물속을 유영하던 카메라는 그의 허리에 남아있는 수술 자국에서 멈춘다. 영화의 주인공인 살바도르는 노령의 영화감독으로,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과거 영화작업으로부터 남은 것은 고통과 상처뿐이라 생각하며, 모든 창작활동을 중단한 채 무기력하게 침잠해있다. 이처럼 영화는 고통의 흔적과 함께 침잠해있는 살바도르파랑과 함께 담아내며 시작한다.      

파란 수영장 속 파란 수영복을 입은 살바도르. 그의 등에는 선명한 수술자국이 남아있다.

파란 수영장에서 나온 살바도르는 우연히 옛 동료 줄레마를 만난다. 이 장면에서 살바도르는 파란 계열의 의상을 입고 파란색 물통을 사용하는 반면, 줄레마는 붉은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빨간 와인을 마시며 빨간 휴대폰을 사용한다. 줄레마는 예전에 함께 영화를 찍었던 배우로, 살바도르와 달리 여전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파랑을 휘감은 살바도르는 활기가 넘치는 빨간 줄레마와 색채 대비를 이루며 더욱 차갑고 슬프게 비춰진다.

파란 살바도르와 빨간 줄레마

줄레마와의 만남 이후 파랑으로만 가득 찼던 살바도르의 삶 속에 빨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빨강과거의 지표이다. 옛 동료였던 줄레마의 의상과 소지품에도, 그가 만들었던 영화의 포스터에도, 옛 연인의 의상에도,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초상화에서도 모두 선명한 빨강이 자리한다. 살바도르는 과거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지닌다. 과거는 그에게 상처를 남긴 고통의 시기인 동시에, 영화와 사랑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던 영광의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와 화해하고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기 위해 의절했던 알베르토를 32년 만에 찾아간다. 살바도르는 알베르토와 빨간 소파에 나란히 앉아 헤로인을 한다. 헤로인은 살바도르가 알베르토와 페데리코(살바의 옛 연인)를 떠나게 만든 결정적 이유이자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해 헤로인에 의지한다. 헤로인에 대한 그의 집착은 과거의 열정을 되찾고 싶은 살바도르의 강박으로 해석되며, 이러한 강박 속에서 빨강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한다. 

살바도르의 영화 <맛(sabor)>의 빨간 포스터  /  빨간 소파에서 헤로인을 하는 살바도르

강박적으로 영역을 확장한 빨강은 배경과 소품을 넘어 살바도르의 의상에까지 옮겨지는데, 그의 신체로 전이된 빨강은 마치 그가 과거의 열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강박으로 되찾은 빨강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둘 사이 앙금이 모두 없어진 듯 보였던 살바도르와 알베르토는 또다시 크게 다투게 되고, 둘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악화된다. 이 장면에서 살바도르는 와인색의 정장과 빨간무늬가 새겨진 파란 셔츠를 입는데, 의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빨강 아래에 깔린 파랑은 다시 찾아올 슬픔을 암시하는 듯하다. 알베르토와의 다툼 이후 더 짙은 파랑으로 회귀한 살바도르는 이전보다 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차갑게 식는다.

빨간무늬 아래 파랑이 깔린 살바의 셔츠  /  다시 짙은 파랑으로 차갑게 식은 살바

과거와의 관계회복에 실패한 살바도르는 그날 밤 탁한 노랑색의 상의를 입고 파란 침대 위에 힘없이 눕는다. 노랑은 조금만 더러움을 타도 빛을 잃는 색이다. 순수한 노랑은 깨달음의 색이지만, 탁한 노랑은 시기, 배반, 거짓, 의심, 불신 등을 상징한다. 이 장면에서의 탁한 노랑은 그가 느꼈을 좌절을 드러내며, 파란 침구와 결합하여 더욱 빛을 잃은 듯 보인다. 

탁한 노랑 의상을 입고 파란 침대에 누운 살바도르

살바도르에게 노랑어머니를 상기시키는 색이다. 어머니가 죽기 직전 지냈던 방은 밝은 노랑색이며,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들인 살바도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러 문화권에서 대지의 상징으로 사용되어온 노랑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힘, 즉 모든 인간의 대지인 어머니로부터 얻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다. 또한 노랑이 지닌 ‘빛’의 이미지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로도 확장 가능하다. 살바도르는 노란 방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다시 삶과 예술에 대한 의욕을 회복한다. 영화 속 노랑은 살바도르를 빛으로 이끄는 영광의 색인 것이다. 앞서 알베르토와의 다툼 이후 장면에서는 탁한 노랑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영화 후반에서는 선명하고 순수한 노랑으로 변화하며 영광의 빛을 되찾게 된 살바도르를 보여준다.    

선명한 노랑으로 변화한 살바도르  / 노란방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살바도르

살바도르가 침잠의 파랑에서 열정의 빨강을 거쳐 영광의 노랑으로 변화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초록이다. 초록순수하던 어린 시절과 결부된 색이다. 회상장면 속 어린 살바도르는 초록 의상을 입는다. 칸딘스키는 “완전한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 가장 평온한 색”이며, 인간에게 “휴식의 시간”을 부여한다고 하였다. 살바도르는 초록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로의 회귀를 반복하며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고 평온을 얻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순수한 나와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고 사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초록을 통해 본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살바도르는 어린 시절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초록의 의상을 착용한다. 초록으로 돌아온 살바도르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은 바로 갤러리에서 우연히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하는 장면일 것이다. 선명한 초록을 입은 살바도르가 자신의 초상화를 마주하는 순간, 영화 안에서 제기된 모든 질문은 답을 찾은 듯 보인다. 그의 말처럼 '그림은 도착해야 할 곳에 도착'했으며, 살바도르도 예전의 자신,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성숙한 자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초록 의상을 입은 어린 살바도르 /  초상화를 발견한 순간 초록으로 돌아온 살바도르

살바도르를 초록으로 돌아오게 만든 이 초상화는 어린 시절 그의 집수리를 도왔던 청년 에두아르도가 그린 것이다. 에두아르도가 그린 초상화 속 어린 살바도르는 초록이 아닌 빨간 상의를 입고 있다. 에두아르도는 그에게 처음으로 예술을 알려준 사람이자 성 정체성을 깨닫게 한 인물이다. 즉, 이 장면에서 사용된 빨강은 살바도르에게 영광과 고통을 모두 안겨주었던 예술과 사랑의 시작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빨강은 과거에 대해 살바도르가 지닌 양가적 감정, 잊고싶은 고통이자 다시 되찾고 싶은 영광 모두를 나타낸다. 

결국 영화는, 빨강이라는 색채가 양가의 감정 모두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고통과 영광 또한 우리 삶 속에 공존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 살바도르의 초상화를 그리는 에두아르도  /  에두아르도의 나신을 보고 붉게 달아오르는 어린 살바도르

영화 속 살바도르는 과거와 현재, 고통과 영광 모두 자신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내적 평온을 되찾았다. 때로는 모순되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일지라도 그 또한 모두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무수한 ‘나’의 모습들은, 서로 분리되거나 어느 하나로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면서 현재의 ‘나’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단일하거나 평면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한 개인의 삶이며, 알모도바르가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현재 삶은 어떤 색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색이 당신(또는 당신의 삶) 전체를 표상하는 색이라 단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검정과 같은 암흑의 색 속에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어두운색,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이 있더라도 그것을 외면하거나 지우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은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 아닐까? 


모든 색이 공존하는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응원하며, <페인 앤 글로리>의 리뷰를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도 나는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