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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l 29. 2021

그래도 나는 좋겠다.

[대학원생 넋두리]

  

  자그마치 6년 넘게(심지어 군필도 아님..) 꾸역꾸역 다니던 학부를 겨우 마친 어느 여름 나는 졸업장도 받지 않고 배낭을 챙겼다. 그리고 약 4년간 한량, 외국인 노동자, 학생의 신분을 번갈아 메며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살아있는 한 죽지 않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버틴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유는 올해 한국의 여름의 더위 탓이다. 이럴 때면 7~8월, 최고 속도가 65km 나오던 낡은 스쿠터를 타고 태국을 횡단하고, 인도와 네팔에서의 6개월이 떠오른다. 햇볕에 노출된 피부가 죄다 벗겨지고 나서 이제 버티지 못할 더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월의 모로코 메르주가를 경험해보지 않고서 자만했던 과거의 나, 반성하자. 새벽녘 사막 투어를 위해 방문한 모하네 집은.. 뭐랄까.. 황토찜질방에서 나가도 계속 황토방이야.. 차가운 식혜 따위 없다구..      


  이렇게 저렇게 건조한 여름, 찌는 여름, 습도 높은 눅눅한 여름을 나고, 4년이 훌쩍 흘렀다. 호주에서 외노자를 하던 중 대학원에 원서를 냈고 그렇게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꼬박 2년이 지났다. 한 학기 학교를 나갔고 대학원의 매운맛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대학원 강의가 대면보다 순한 맛이었냐고? 훗. 과연 그럴까? 


 평균 4시간 정도의 수면시간, 학회지 논문 투고를 위해 빠지는 머리카락과 턱밑까지 내려오는 다크서클, 목디스크 및 각종 질병은 대학원생의 미덕이라고 했던가. (아! 논문 쓰면서 다들 한 번씩 응급실은 가야 한다고 들었다.. 그게 접니다..) 이런 육체적인 피로감은 그나마 버텨낼 수 있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있기 때문이다. 더욱 힘든 것은 공허함과 자괴감. 인간의 생애 주기를 표준화하여 재단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장 생산성이 좋은 나이라고 여겨지는 이 시기에 아무런 지표 없이 어딘가에 던져진 느낌은 계속해서 나를 옥죄어왔다. 과연 어디론가 나아가고는 있는 것일까? 우울의 바닥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무력감은 곧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오늘도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니. 

 

 사회인도 학생도 아닌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나의 질문에는 그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그동안 살기 위해 억지로 해왔던 운동도 그만 두기로 했다. 몸을 일으킬 의지조차 없었다. 어떤 의욕도 욕구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렇게 학기는 흘러가고 수업 과제를 위해 다시 밤을 새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4학기를 보내고 학회지 논문 두 편이 나왔다. 가끔 한 문장 한 문장이 도저히 써지지 않아 눈물을 짜내며 아무도 관심 없는 논문을 쓰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다. 비슷한 처지의 대학원생들끼리 학술지 논문을 마치고 조촐하게 하지만 진심 어린 축하를 나누는 데는 논문이 그저 마무리 되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경험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쯤 오랜 친구들과 모여 앉아 맥주를 들이켜고 있자면 어느덧 나보다는 '사회적 어른'이 진즉에 되어버린 친구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장님 과장님 팀장님 ... 온통 '님' 자 들어가는 으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나는 내 모습을 함께 그려내지 못한다. 


          " 대학원생아.(가명: 대학원생) 너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

          "응.. 고통스럽지."


 두 문장으로 사실 나는 대화를 끝냈다. 이직한 회사가 안정되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거라는 친구에게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그 꿈을 응원할 수 없는 나에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좋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니까.”     

 

 내가 좋은 상태인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한 문장에 들어있는 것이 이토록 어색했던 적이 있었던가? 한창 여행을 다니던 시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인데도 무언가 아득한 기분이 든다. 


        "좋다 =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


 나도 이런 등식을 믿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인도에서 만난 여행 작가이자 가이드였던 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직업 여행인이라는 것) 뭐.. 힘들죠 ㅎㅎ 제가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자유 여행도 아니고요.. 그래도.. 저는 좋아요. 하기 싫은 일 하면서 돈 버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버는 거니까."


 아..!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서 +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어쩌면 아직도 '사회적 유아기'에서 머물러있는 듯한 불안감과 초조함은 언제나 그랬듯 대다수의 타인이 설정한 기준에 - 굳이 말하자면 경제적, 사회적 지위랄까 -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인 나의 위치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닐까. 다시 온전한 나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목적으로 돌이켜보자면,  나는 충분히 그 대가를 받고 있다. 금전적인 것이야 차치하고라도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 아무도 보지 않을 것만 같은 내 논문에 피칠갑을 할 정도로 꼼꼼히 봐주시는 교수님(ㅎㅎ....), 어딘가 나와서 돌아다니는 논문들. 듣도 보도 못한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왜냐면 모르기 때문이지) 더 깊이 있는 학문을 하겠다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지금, 이 모든 순간들. 






그래!! 그래도 나는 좋겠다!!!
..
..
..............
.....










   그리고 지금까지 종강 후 한 달을 놀아버린 정신 나간 대학원생의 대학원생 놀리기였습니다. 

 (엄마.. 미안.. 세상에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말고는..아는 게 없는 나야...아..)     

 (내가 화가 나 안나..) 

.................... ㅎ끝.. 


google 검색어 : 바트 대학원생 놀리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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