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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Aug 12. 2021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우르슬라의 딸 트루디 이야기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공모전


트루디의 집은 늘 적막함이 가득하였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조차 아득하게 느껴졌다. 트루디는 아홉 개의 손이 달린 문어로 마을에서 불경스러운 존재였다. 마법의 약을 구하려는 자들만 교환할 것을 가지고 방문할 뿐 이유 없이 트루디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생명은 아무도 없었다.     


“키티, 사랑스러운 내 친구. 오늘 기분이 어때?”     


트루디는 하나의 팔이 두 갈래로 갈라진 손을 들어 산호를 쓰다듬었다. 산호는 트루디의 집에 육지의 민들레 씨앗처럼 우연히 내려앉았다. 연약하지만 씩씩하게 자라는 키티를 보면서 트루디도 엄마 없이 홀로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트루디의 엄마는 우르슬라다. 트루디도 엄마처럼 몸은 문어를 닮았고, 어릴 적부터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우르슬라의 남동생인 트라이튼 왕은 오래전 부인을 잃고 늙은 어머니와 여섯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귀족 가문 태생으로 아들 트라이튼이 모든 것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르슬라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는 이유로 일찍부터 궁과 떨어진 곳에 거처를 잡았고, 가족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딸을 하나 낳게 되었고, ‘사랑받는 아이’가 되라는 마음을 담아 트루디라고 이름을 지었다.

우르슬라는 궁과 마을 전체에서 배척당하는 상황 속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화려한 왕궁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을 조금씩 훔쳐오기 시작하였다.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가져오는 것은 나쁜 짓이지만, 우르슬라는 자신이 그 정도는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곧 트라이튼 왕과 어머니에게 발각되었고, 그들은 이를 빌미 삼아 우르슬라를 확실하게 없애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는 계략을 세웠다.   


“욕심 많은 우르슬라는 듣거라. 너의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트루디라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에게 물려줄 재산이 필요해요.”

“왕가의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트라이튼 왕은 삼지창을 꺼내 우르슬라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그때 트루디가 집에서 헐레벌떡 뛰쳐나와 우르슬라를 막아섰다. 트라이튼 왕의 삼지창은 트루디의 팔에 찍혀 한쪽 팔의 절반이 뭉툭하게 잘려 나갔다. 이 모습을 본 우르슬라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겠다며 마법의 힘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트라이튼 왕과 그의 부하들은 다시 삼지창을 가져와 우르슬라의 몸통을 찔렀고, 우르슬라의 몸은 영혼이 빠져나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트루디는 방금 전까지 우르슬라가 있던 자리에서 목 놓아 울었고, 그 사이 트라이튼 왕의 어머니는 부하들을 시켜 트루디의 집에서 보석들을 모두 찾아 떠났다.     


키티는 트루디의 옆에서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일, 엄마 우르슬라가 갑자기 보고 싶은 일, 새로운 마법을 터득한 일 등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사실 키티와 같은 산호는 바닷속에서 유일하게 말을 못 하였다. 아주 옛날 옛적에 인어 왕이 산호초 주변에서 비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산호들이 소문을 내는 것을 걱정하다가 아예 말을 못 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키티, 자꾸 잠이오니? 몸이 조금씩 하얗게 되는데 왜 그런 거야?” 


며칠 전부터 키티는 몸이 하얗게 되면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아졌지만, 트루디는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키티가 말할 수 있다면 어디가 불편한지 바로 알려줄 수 있을 텐데, 트루디는 키티가 걱정되어 마음이 몹시 답답하였다.     


“똑똑똑, 아무도 안 계신가요?”     


트라이튼 왕의 여섯 번째 딸인 에리얼이 트루디의 집을 찾았다. 에리얼은 문을 열어주는 트루디의 갈라진 손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멀리까지 온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에리얼은 인간 세상에 있는 에릭 왕자님을 사랑하게 되어서 다리를 얻을 수 있는 약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여기 귀여운 친구는 먹이와 햇빛이 부족한가 봐요. 자꾸 잠을 자네요.”

“키티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아세요?”     


에리얼은 산호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사는 마을을 알려주었다. 키티도 그곳에 가면 금방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멀리까지 혼자 가본 적이 없는 트루디는 길을 잃을까 봐 키티를 데리고 나서는 것이 걱정되었다. 에리얼은 트루디를 안심시키며 인간 세상에 가기 전, 산호 마을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하였다.    

 

“꼬리가 갈라져 다리가 되는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내놓아야 해요. 그리고 완벽하게 인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에요. 괜찮겠어요?”

“네, 목소리가 없어도 왕자님은 저를 알아보시고 사랑하실 거예요.”

     

트루디는 불 위에 솥을 걸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약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리얼에게 약병을 건네며 인간 세상에 올라가 해변에서 이 약을 마시라고 알려주었다. 약을 얻기 위해 내놓은 에리얼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소라껍데기에 담은 후 트루디는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리얼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키티와 친구들에게 주고 싶어요.”     


에리얼은 두 팔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트루디와 키티를 껴안았다. 트루디는 자신의 힘으로 처음 만든 약이 에리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길 기도했다. 그리고 키티가 얼른 나아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기를 또 기도했다. 친구들과 함께 처음 먼 길을 떠나는 트루디의 마음은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 차올랐다.


<작가의 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이야기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악당 캐릭터의 대명사인 우르슬라를 다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원작보다 조금은 희망적인 맺음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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