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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Aug 13. 2021

11월 9일 토요일의 팜 스프링스, 여름이었다.

영화 <팜 스프링스, 2020> 리뷰


입추와 말복이 지나니 귀신같이 아침의 하늘색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래졌고, 저녁의 풀벌레 소리가 ASMR로 자동 재생된다. 24절기의 정확함에 이번 환절기도 소름이 돋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팜 스프링스는 사막 지역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여름 기간은 너무 덥다. 대신에 11월부터 5월까지의 날씨가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와이안 셔츠와 찢어진 청반바지, 그리고 시원한 물놀이가 잘 어울리는 11월 9일 토요일에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포스터의 단서들을 보며 영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하겠다.

 

영화 <팜 스프링스> 한국어 포스터


위에서부터 살펴보면,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5%의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공개된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제78회 골든글로브의 작품상과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쉽지만 수상에는 실패하였고, 둘 다 <보랏 속편>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이 외에도 제37회 선댄스 영화제의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이는 <미나리>가 수상하게 되었다.

'타임 루프 썸머 로코'라는 친절한 설명처럼 포스터 속의 두 주인공은 11월 9일 토요일에 갇혀버린다. 신랑 하객인 나일스가 먼저 끝도 없이 반복되는 11월 9일 토요일을 지겹도록 겪는다. 나일스가 걱정되었던 신부의 언니 세라는 그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다가 함께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버린다.

'내일을 원하는 여자' 세라는 양자역학을 마스터하며 11월 10일 일요일로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늘만 사는 남자' 나일스는 반복된 날들 속에서 안전한 일탈을 하며 작은 변화를 만끽한다. 세라는 날짜가 제대로 넘어가는 세상에서 나일스 없이 지루할 것을 두려워하고, 나일스는 세라가 없는 11월 9일 토요일 속에서 아무런 기쁨을 얻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또한 왼쪽에 있는 표지판에 그려진 염소는 세라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고, 오른쪽에 있는 경비행기는 안전한 일탈의 최고점을 선사해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수영장은 이들이 겪어온 11월 9일 토요일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무한대를 의미하는 기호가 개봉 날짜 옆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앉아있다.


'여름이었다'라고 해도 캠핑하는 밤에는 겉옷이 필수이다.

'wake up'

영화밖에 살고 있는 우리도 휴대폰 알람의 성화에 번쩍 눈을 뜬다. 지금처럼 특히 일상이 제약된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반복된 일과를 해내다 보니 매일매일 달력의 숫자는 넘어가도 마치 유사 타임 루프에 빠져버린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가 많다. 어제와 오늘이 너무 똑같아 지루함을 떨쳐내 버리려는 몸부림으로 끊임없이 놀거리를 탐색하고 실행하지만, 이내 의미 없다는 허무로 마무리해 본 적도 많다. 나일스와 세라가 11월 9일 월요일을 가장 진심으로 대한 날은 마지막이라는 각성이 있을 때이다. 그 각성은 놀만큼 충분히 놀아봐야 비로소 찾아오는 얄궂은 손님이다. 머물다가 금세 또 떠나면 다시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OTT 서비스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적절한 재미와 일상에 대한 명상이 훌륭하게 배합되었다는 칭찬을 이렇게 간단한 말로 표현해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마침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는 훌루(Hulu) 오리지널 영화이기도 하다.


2021년 8월, 영화 <팜 스프링스>를 보았다. 여름이었다.


* 해당 리뷰는 씨네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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