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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Oct 21. 2021

아네트에게 오은영 박사님이 보인다.

영화 <아네트, 2021> 리뷰


 분명히 다작 감독은 아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1984>, <나쁜 피, 1987>, <퐁네프의 연인들, 1991>, <폴라 X, 1999>, <홀리 모터스, 2012>, 그리고 <아네트, 2021>. <아네트>는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프랑스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카락스 감독의 복귀작이며,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2020년 칸 영화제는 코로나19로 열리지 않았고, 2019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은 마침 본 브런치에 있어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https://brunch.co.kr/@ppeeppae/3


 작가주의 경향이 짙은 영화는 감독 그 자체가 된다. 그동안의 작품을 보면 자신에 대한 질문에서 사랑으로 넘어가 <아네트>에서 본격적으로 딸의 존재를 둘러싼 질문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위태로운 요트 위에서 추는 왈츠는 전쟁 같은 부부싸움을 수려하게 그린다. 이 장면은 <아네트> 포스터의 대표 이미지로 실렸다. <라라랜드, 2015>에서 미아와 셉이 함께 추던 왈츠와는 차원이 다르다. 카락스 감독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감독으로서의 삶,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로서의 삶, 특별한 재능을 가진 딸을 육아하는 아버지로서의 삶 사이에서 무수한 고민을 하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아네트>로 작성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답을 쉽게 공개하면 재미가 없을지 모르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도록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였다.


영화 <아네트, 2021> 포스터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감독>

 스탠딩 코미디 쇼를 하는 헨리와 오페라에서 노래를 하는 안은 결혼 하여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셀럽으로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가십거리가 되어 대중에게 소비된다. 헨리는 코미디로 대중을 '죽여주고', 안은 극 중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대중 대신 '죽어준다'. 대중은 날카로운 것 같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우매하게 느껴지는 존재이다. 그들의 코드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질문은 더욱 깊이를 더해가고, 꺼내고 싶지 않은 심연과 마주하기도 한다. 미래를 약속한 동반자는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옥죄는 경쟁자가 되어버린다.

 바나나를 즐겨먹는 '신의 유인원' 헨리는 '킹콩', 사과를 즐겨먹는 '인간' 안은 '앤'을 닮았다. 헨리는 무대 위에 올라 대중에게 즐거움을 제공하지만,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안은 소프라노라서 높은음으로 소리를 잘 낸다. 1930년대 초기 미국 영화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들은 전통적인 셀럽이었다.


라라랜드에 사랑과 전쟁을 더하면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

 헨리는 안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딸 아네트를 낳았다. 그러나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수록 그 불똥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 안에게 튀어버린다. 지극히 못난 행동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을 달래고 있다. 금이 간 부부 사이를 붙여보고자 세 식구는 요트 여행을 떠나지만, 술에 취한 헨리는 강제로 안을 붙들고 왈츠를 추다가 바닷물 속으로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헨리와 안 사이에는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안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아래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었다. 늘꿈에 그리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날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인 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실례한다고 하면서 독백과 지휘를 반복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고 싶다. 사실 삼각관계의 완성은 서브 남자 주인공의 매력 발산이 아니겠는가.


헨리와 안 사이에 나의 무대를 갈망하는 지휘자가 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딸을 육아하는 아버지>

 셀럽의 2세는 태어날 때부터 피곤하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부터 콘텐츠가 되어 대중에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아네트는 어머니를 잃었지만,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노래를 잘 부른다. 헨리는 망가져버린 자신의 꿈을 밀어 두고, 아네트를 데리고 다니며 전 세계를 누빈다. 아버지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고 있던 아네트는 마지막에 아버지와 정면으로 맞서며 '아버지를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슬픈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은 온전하게 사랑을 받기보다는 그저 착취당했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카락스 감독과 그의 딸 나스탸가 직접 등장한다. 공교롭게 나스탸의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영화의 처음에는 이제 영화가 시작한다고 알리며 조용히 집중하라고 공지하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소문을 내달라고 당부한다. 카락스에게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는 허용됐지만, 흥행 감독이라는 수식어는 붙여지지 못했다. <아네트>는 카락스 감독의 첫 영어 영화로 아마존 스튜디오가 배급을 맡아 감독의 전작보다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 허물기는 <아네트>가 카락스 감독의 것임을 드러내며 선명한 도장을 찍는다.


레오스 까락스 감독과 그의 딸 나스탸


 아네트에게 오은영 박사님이 보인다. 아버지와 맞선 후 인형은 죽고, 사람이 다시 태어났다. 혹시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사람이 아닌 인형처럼 대하지 않았는지, 그동안 아이를 착취하지는 않았는지 질문해보자. 그리고 온전한 사랑을 주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하며 꼭 안아주자.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We love each other so much.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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