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뚜로 빼뚜로 Nov 20. 2021

지난 날을 쿨하게 추억하는,  웨스 앤더슨식 특집기사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2021) 리뷰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

독창적인 이야기와 감각적 미장센으로 많은 시네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이 시대의 시네아스트, 웨스 앤더슨이 그의 10번째 작품 <프렌치 디스패치>와 함께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다양하고, 더 화려하며, 더 유쾌하다.

웨스 앤더슨이 준비한 연말 특집기사를 함께 즐겨보자!     


4명의 기자, 4개의 이야기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편집장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폐간을 앞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간 과정을 담는다. 마지막 발간호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예기자가 작성한 4개의 기사와 편집장의 부고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기사는 새저랙(오웬 윌슨)이 작성한 앙뉘의 여행스케치 ‘The Cycling Reporter’이다. 자전거를 탄 새저랙은 오래된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킨다. 두 번째 기사는 베렌슨(틸다 스윈튼)이 작성한 천재 화가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의 이야기 ‘The Concrete Masterpiece’이다. 로젠탈러의 걸작 ‘concrete masterpiece’가 공개되었을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베렌슨은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세 번째 기사는 크레먼츠(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작성한 ‘Revisions to a Manifesto’이다. 크레먼츠는 학생 혁명의 리더였던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와 교류하며 가까이에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학생 혁명의 과정을 담아낸다. 마지막 네 번째 기사는 라이트(제프리 라이트)가 작성한 ‘The Private Dining Room’이다. 해당 기사는 ‘Tastes & Smells’ 섹션을 위한 것으로,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셰프인 네스카피에(스티브 박)의 음식에 관한 리뷰로 구성되어야 맞지만, 정작 기사의 내용은 네스카피에의 음식을 먹으러 간 날 라이트가 경험한 소동이 담겨있다.      


한 권의 잡지같은 영화

전혀 다른 시기의 전혀 다른 인물들을 다루는 4개의 에피소드(기사)는 순차적으로 분리되어 제시된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종결되면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연결고리가 전혀 마련되지 않는다. 연결되기는커녕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전, 기사의 섹션(Local Color, Art & Artists 등)과 제목, 그리고 기자의 이름이 적힌 스틸 이미지가 삽입되어 에피소드를 분리시킨다. 이러한 영화의 서사 방식은 마치 잡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의 이전 작품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느낌처럼 구성한 것 -책의 표지로 시작하여 책을 덮는 것으로 끝나는 연출과 중간중간에 동일한 폰트로 디자인된 챕터의 삽입-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번에도 ‘잡지’는 이야기의 주요소재(내용)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형식)으로도 차용된 셈이다.     


잡지에 보내는 쿨한 헌사

웨스 앤더슨은 대놓고 이 영화의 영감을 미국 잡지인 <뉴요커>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 속 4개의 기사 역시 실제 <뉴요커>에 실렸던 보도들을 모티브로 구성한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잡지들과 그 잡지를 열정으로 채웠던 기자들에 대한 헌사인 것이다. 아마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노고를 알아주는 이 영화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을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씨네21의 김현수기자는 이 영화를 보며 <씨네21>의 마감 풍경을,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잡지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웨스 앤더슨은 잊혀진 것을, 또는 잊혀져가는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회고는 언제나 쿨하고 유쾌하고 낭만적이다. “그래 우리 이런 걸 즐기며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지.”와 같은 방식이랄까?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눈물보다 미소짓게 만든다. 아마 영화를 본 기자분들도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편집장인 하위처가 “No Crying”을 철칙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욱더.     


4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영화 시작부터 물밀 듯이 쏟아져나오는 정보들을 이해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평을 하였다. 필자 또한 영화 초반에는 투 머치 인포메이션! 이라 속으로 불평하였다. 심지어 등장인물도 역대 최고인 것 같다. 기자처럼 수첩과 펜을 들고 영화관에 들어가야 할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에게 미리 본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수첩과 펜을 들고 가는 대신 영화 속 정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추리 영화가 아니다. 정보 한두개쯤, 자막 한두개쯤 놓친다고 해서 영화를 이해하는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핵심은 기자들이 취재한 이야기의 사소한 내용이 아닌, 그 이야기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있다. 4명의 기자가 작성한 4개의 에피소드는 내용 면에선 연결되는 지점이 전혀 없다. 그러나 모든 에피소드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어떤 현장에서건 수첩과 펜, 그리고 중립적인 언론인의 자세(크레먼츠가 강조했던)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기자들의 열정이다.      


제작사인 Searchlight Pictures에서 개봉기념으로 발행한 <French Dispatch> (나도 사고싶...)



*사실 영상기법(흑백과 컬러전환, 줌인, 애니메이션 등등)에 관해서도 논의할 지점이 너무 많은 영화이지만,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작가의 이전글 각자의 속도로 걷다 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