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2023> 리뷰
영화는 누구의 작품일까.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관계자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보통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몇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영화음악가도 스포트라이트의 반대편 그늘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해내던 사람이었다. '음악가' 앞에 붙은 거추장스러운 단어인 '영화'는 음악의 고귀함을 자본의 천박함으로 더럽히기에 충분했다. 클래식 트럼펫을 전공하고 영화계로 흘러온 엔니오 모리꼬네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소위 '정통 음악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만 했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래바람 휘날리는 사막에서 말을 탄 카우보이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런 영화를 서부 영화 또는 웨스턴 영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장르를 이탈리아의 맛으로 변주한 것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원조 맛집 옆에서 이탈리아 조미료로 그 맛을 흉내 냈으니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짝퉁 또는 아류의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제작비도 부족했기 때문에 촬영도 아닌 음악에 투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엔니오는 몇 가지의 악기와 휘파람을 사용하여 서부극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냈고, 미국으로 진출하여 흥행을 이끌어내며 원조 맛집의 아성을 무너뜨린다.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 36세 때의 일이다.
오보에라는 악기는 생소하다. 모양은 클라리넷이나 바순과 닮았는데, 다른 악기다. 오보에를 설명할 때, 한 번에 해결되는 음악이 있는데, '가브리엘의 오보에'라는 엔니오의 음악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앞부분 한 소절만 들으면 바로 '아하!'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넬라 판타지아'라는 가사를 흥얼거릴 수도 있다. 이는 사라 브라이트만이 엔니오에게 자신이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 끝에 영화보다 한참 늦은 1998년 발매된 노래다. 조금 나이가 있는 독자라면 박칼린, 배다해 등의 스타를 만든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58세 때 만든 곡이다.
엔니오의 아들 안드레아는 아버지와 같은 영화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안에서 그러하듯이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다. 완벽한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 안드레아가 부족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작곡을, 아버지가 편곡을 맡으며 사랑의 테마를 완성한다. 게다가 이 영화의 감독인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엔니오 헌정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은 영화 속 토토와 알프레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이외에도 쿠엔틴타란티노, 한스 짐머 등 영화를 매개로 엔니오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무수하게 나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엔니오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식에게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2020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쿠엔틴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더 헤이트풀 에이트>로 2016년 88회 아카데이 음악상을 수상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88세였다. 여섯 번째 후보에 올랐을 때, 비로소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매일의 성실함을 에너지 삼아 나이가 들어도 도전에 대한 욕망의 눈빛을 잃지 않았기에 엔니오만의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오늘은 눈을 감고 '듣는 영화'를 잠시 감상해 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