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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r 01. 2021

범죄영화는 핑쿠핑쿠하면 외않되?

영화 <소리도 없이>(2020) 리뷰

   

by. 그레이색이야

회색지대(Gray zone)에 위치한 수많은 회색인간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의 색채를 탐미하고 탐구합니다.





노란 천막의 트럭과 핑크색 계란판. 초록의 청보리밭과 연두색 자전거.

파랑에서 핑크빛으로, 그리고 보랏빛으로 변화하는 하늘까지.

범죄영화치고는 색감이 너무 사랑스럽다.

자고로 범죄영화는 어둡고, 무채색으로 그려내는 것 아니었나?

범죄 이야기를 이리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색채로 담아낸 이 영화가, 나는 궁금해졌다.          

영화는 트럭 위에서 계란을 팔고 있는 두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계란 한 판에 얼마냐고 묻는 손님에게 “8천만원이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창복과 그 옆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태인. 누가 보아도 그들은 평범하고 성실해보인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창복의 대사처럼, 창복과 태인은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 일이 시체를 유기하는 일일지라도.

그들에게 시체유기는 범죄가 아니라 주어진 업무이자 생존 방식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창복과 태인은 유괴된 여자아이 초희를 억지로 맡게 된다.

범죄영화는 꼭 검은색이어야 할까?

비 오는 날보다 햇빛 눈이 부신 날의 이별이 더 힘들다던 옛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어두운 뒷골목에서의 범죄보다 청량한 하늘 아래에서의 범죄가 더 살벌하고 기막힌 법이다.

11살 초희에게도 나름의 생존 방식이 존재한다.

초희는 유괴가 된 상황에서도 또래 아이들처럼 울거나 떼쓰지 않는다.

창복과 태인의 유괴 업무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물론이고 방치되어있던 태인의 여동생 문주를 씻기고 가르치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다.


시체를 유기하고 아이를 유괴하는 창복과 태인, 그리고 이들의 범죄행위를 돕고 태인의 동정심을 이용하는 초희. 이들의 행동은 모두 생존을 위한 일이기에 쉽게 비난할 수 없다.

마치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별주부와 토끼같다.

용왕의 신하로서 토끼를 유괴하는 별주부와 간사한 꾀로 별주부를 속이고 도망가는 토끼.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창복과 태인, 그리고 초희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 또한 그들의 악행이 생존과 결부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악인의 잔인함이 아닌 절실함만이 가득하다.

이렇게 악의 경계는 흐려진다.

그리고 흐려진 경계는 우리의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 많은 창복과 태인은 유괴범이라기보다 초희의 보호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태인에게 보였던 초희의 미소는 어느 정도 진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인의 집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겁게 웃던 네 사람(창복, 태인, 초희, 문주)의 모습은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처럼 보인다.

유치원 통학 차량처럼 보이는 노란 버스는 유괴된 아이들을 나르는 범죄의 수단이었고, 도망친 초희가 만났던 술 취한 아저씨는 변태처럼 보였지만 진짜 경찰이었다.

범죄영화치고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색채 또한 흐려진 경계를 강화하기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초록의 청보리밭을 자전거로 내달리는 태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청춘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범죄를 저지르러 가는, 혹은 저지르고 오는 남자의 모습일 뿐이다.

초희가 바라보는 보랏빛 하늘 아래 청보리밭 또한 보기엔 아름답지만, 태인의 집에서 탈출한 초희가 마주하게 될 위험과 공포의 공간일 뿐이다.

대놓고 검은색인 범죄가 아니기에,

속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평화로운 일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초희가 유괴되어 처음으로 태인의 집에 가던 날, 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다급하게 뛰어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초희에게 “오빠 말을 잘 들어야지.”라고 타이르며 태인에게 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범죄는 소리도 없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처절함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어느 경우엔, 검정보다 핑크가 더 어둡고 슬프다.

핑크색으로 그려내어 더욱 처연하게 느껴졌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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