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티아스와 막심>(2019) 리뷰
By. 눈썹
영화의 오프닝에서 자꾸 무언가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제 눈썹이 세모인 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자비에 돌란의 2019년 영화인 <마티아스와 막심>의 포스터는 두 명의 주인공이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빨간 옷을입은 마티아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으며, 파란 옷을 입은 막심은 카메라가 아닌 그 뒤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게다가 그 장면을 검은 배경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단지 영화 속 색감 좋은 장면을 활용하여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궁금하다. 왜 이렇게 많이 가두어 놓았을까?
이 영화의 포스터는 검은 윈도우 박스가 둘러싸고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둘이 응시하는 곳에는 실제로 창이 있으며, 그 창은 친구들로 하여금 마티아스와 막심이 키스신을 찍는 상황을 낄낄거리며 몰래 구경하게 해주는 틀이 된다. 둘의 모습은 카메라로도 담기고, 창문이라는 틀을 통해 친구들의 눈 게다가 실제 영화를 찍는 카메라에 담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두 번째 보다보니 ‘네모난 어떤 것’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사진이나 그림을 포함하여 창문이나 네모난 디스플레이에 재생되는 영상 등을 포함해서다. 이렇게 눈에 밟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다가 비로소 처음 보았을 때 왜 찝찝한 느낌이 들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마티아스와 막심>을 처음 볼 때의 나는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너무 정의내리려고만 하였다.
영화는 마티아스와 친구들이 리베트라는 친구의 집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않아 4:3 화면비의 HD 캠코더에촬영된 자연을 보여준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해 보이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되게 옛날에 찍은홈비디오 생각이 나네’ 영화를 보여주는 스크린/화면은 또 다른 화면을 소환하여 화면의 비율과 해상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후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상황에서도 영화는 또 다른 화면을 불러온다. 상대방의 말을 수정하는 마티아스에게, 친구들은 예전에도 그런 적 있다며 세로로 찍은 휴대폰 영상을 증거로 가져온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다른 영상들을 거리낌없이 화면 속으로 가져오지만, 철저하게 현재와의 격차를 벌리며 보여준다.
마티아스와 막심이 서로에게 느끼는 모호한 감정의 발단인 영화 촬영 장면은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불친절하면서도 순차적으로 놓여있다. 화면의 가장 안쪽은 과거의 한 순간을 포착해 놓은 사진들이 있다. 그 앞에는 이 순간을 지속적인 과거로 만드는 카메라가 있으며 그것을 현재 친구들이 몰래 보고 있다. 홈비디오, 휴대폰 영상, 사진 그리고 캠코더 모두 지나간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마티아스의 표정그리고 막심의 대사로 한 데 응축된다.
막심은 “예전에도 키스한 적 있잖아”를 반복하고, 마티아스는 계속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티아스는 과거가 된 영화 촬영 장면에계속 얽매여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의 이러한 감정은 이후에 나오는 여러 영상 장면 혹은 창문으로 대변된다. 그 중 가장 꼽을 수 있는 장면은 술에 힘을 입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막심에게 표현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둘의 두 번째 키스 역시 창문과 밀접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번의 창문은 불투명한 비닐로 씌워져있으며 막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 오프닝에서의 투명한 창문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키스였기 때문에 ‘친구’를 포함한 카메라에 잡혀도 좋다는 것을 가리킨다면, 불투명한 창문은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미는 아닐까. 때마침 바깥에는 비가 오고, 이전에 자신들의 키스신 촬영장면을 구경했던 친구들은 같은 건물의 다른 방에 있다. 이 방에는 카메라도, 밖에서 바라보는 창문도 없다. 마티아스 자신도 자신의 비친 모습을 볼 수 없다. 이렇게 창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 내면의 모습을 살짝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조심스레 넣어둔다.
이 영화를 보고 분명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저 둘은 관계가 뭔데? 사랑이이야? 우정이야?” 하지만 이러한 궁금증이 이 영화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영화에서 ‘네모난 어떤 것’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개념을 틀 짓는 것을 도형적으로 보여주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를 전제로 하고 보면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어떠한 것을 틀로 바라볼 때 이것이 어떻게진실과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두 사람의 감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궁금증은 개념을 또는 감정을 정의하려고 한다. 두 사람이카메라에 담기고 다른 사람에 의해 보이고 하면서 마티아스는 그것을 정의하려고 한다. 어쩌면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의는 둘이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영화의 말미에 그림이 한 장 등장한다. 맷과 막스의 목장. 그 그림에서는 어린 마티아스가 막스와 같이 사는 미래를 그린다. 그것이 어떤감정인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마 어린 아이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같이 있고 싶으니 같이 있을 미래의 그림을 그린 것일 것이다. 어떤 것을 선으로 나누어 명확하게 가르는 것은 분명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자비에 돌란은 애매한 감정 상태의 두 사람을 보여줌으로써우리가 당연하게 가르는 것들을 모호한 상태로 놓아두기를 추천하는 듯하다. 마티아스의 어린 시절 그림을 영화의 맨 마지막에 가져다놓지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