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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Apr 05. 2021

초등학교 입학 전, 7세 금쪽이 비디오 처방전

영화 <오싱, 1985> 리뷰

7살 금쪽이는 밥을 잘 먹지 않았고, 눈물이 많아 별명이 '틀면 나오는 수도꼭지'였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주말 낮 시간을 이용하여 집에서 비디오를 시청하기로 하였다. 그 영화는 바로 김민희 주연의 오싱이었다.

오싱은 1925년생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NHK에서 15분 분량의 일일 아침 드라마로 제작되어 1983년 4월부터 약 1년간 방영되었다. 이것이 1985년 한국에서 오싱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1920년 강원도 횡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여 리메이크된 것이지만, 제목은 일본과 똑같이 오싱을 사용하여 어색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오싱은 오신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 비디오 케이스에는 히라가나 제목이 쓰여 있고, 포스터도 다시 오싱이 일본인임을 강조한다. 어느 것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싱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당시 리메이크 과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은 7세 금쪽이가 감상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다.

오신은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겨울, 입을 하나라도 줄여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려는 마음으로 뗏목을 타고 고향을 떠나 '작은 노동자'가 된다. 1년 노동 계약 조건으로 쌀 한 가마니를 받고 먼 길을 힘겹게 왔지만, 계약이 성사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작은 노동자'는 애보개로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나이도 두 살이나 속였기 때문에 계약은 파기될 위험에 처한다. 오신은 눈물로 호소하며 사정한 뒤에야 겨우 그 계약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7살 금쪽이가 눈물을 흘린 장면은 오신이 얼어붙은 시냇물에서 기저귀 빨래를 하는 모습이었다. 작은 브라운관 안에 있는 나와 동갑인 친구가 손이 시리다 느낄 때, 내 손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는 '저 아이의 고생을 보고 너의 안일한 생활을 반성해라'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하셨고, 급기야 세 살 터울의 동생을 포대기로 내 등에 묶어 놓은 뒤 애보개로 가능성이 있는지 심사해보기도 하였다. 결과는 당연히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오신은 학교에 가고 싶지만, 학생이 아닌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 글자라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오신의 모습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는 '이제 곧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가면서 하셨고, 이제 오신처럼 '작은 노동자'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애기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7살 금쪽이는 애보개가 된다는 상상을 하며 잠시 그쳤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그러자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으면 다음 장면에 나오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일본 순사'가 잡아간다는 이야기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오신은 50전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기저귀 빨래를 하다 빨랫감을 내던지고 산속으로 도망간다. '작은 노동자'는 처우에 부당함을 느껴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다. 오신은 가족들과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리지만 추위에 점점 정신을 잃어가다 다행히 산속에서 숨어 지내는 독립군들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여기에서 만난 진우 오빠는 오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선생님이자 아버지인 그는 오신에게 학습을 넘어 인생의 가치와 희생적인 사랑을 심어준다. 그러나 진우 오빠의 도움으로 성장한 오신이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는 주재소로 끌려가고 오신의 집은 헌병대의 감시를 받게 된다.

1년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한 오신은 받았던 쌀 한 가마니를 도로 돌려주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2년 계약에 쌀 다섯 가마니를 받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소개받는다. 오신은 작년보다 오른 자신의 임금에 만족하며 자진해서 '작은 노동자'가 되기로 한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은 없다. 오신은 두 번째 근무지인 정미소에서 다시 탈락 위기를 맞지만, 압박면접에서 할머니를 위하는 진실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에 감동한 노(老) 마님은 오신에게 손녀 혜자의 남동생을 돌보고, 혜자의 인성교육을 위한 러닝메이트가 되는 직무를 부여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신이 아닌 혜자의 이기적인 어리광이 다시 7살 금쪽이를 향했다. '우리 금쪽이는 저 혜자 같다?'

설 연휴 '작은 노동자' 오신은 집에 갈 수 있는 휴가를 받는다. 가족들에게 줄 과자와 쌀 선물을 들고 오랜만에 다니러 왔지만, 집에서 엄마와 오신이 없는 빈자리를 무리하며 채워주시던 할머니가 결국 돌아가신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오신은 하얀 쌀밥을 많이 먹는 부자가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7살 금쪽이도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비디오 처방의 결과는 성공적인 것 같다. 7살 금쪽이는 밥을 잘 먹었고,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오싱을 떠올렸다. 영화 <오싱>에 대한 기억은 몇 년 후,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 독후감 쓰기 숙제로 연결되었고,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브런치의 소재가 되었다.


* [광고아님] 올레TV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by 호모나랜스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사람, 호모나랜스(Homo narrans)는 아동과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를 즐겨보며 내 속에 아직 자라지 않은 내면 아이의 친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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