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낀 첫 순간, <킬 빌>(2004)
우리는 온갖 것들이 마구 섞인 형태를 ‘잡탕’이라 부른다.
잡탕이라는 말에 존경은 없다.
이 때문에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마구 뒤섞어놓은 ‘B무비’ 또한 낮은 수준의 영화로 취급되었다.(A급이 아닌 B급이라는 의미의 명칭부터가 이를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잡탕의 영화에서 최초의 영화적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다.
B무비의 대가로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4년작 <킬빌>은 내가 처음으로 본 B무비이다.(사실 산업적 측면에서 따져보면, <킬 빌>은 B가 아닌 A무비에 속하지만, 단순히 스타일적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이 영화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킬 빌>이 개봉했을 당시, 나는 10대였고 지금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도 아니었다.
누구나 다 본다는 소위 흥행영화들만 가끔 관람하는, 평범한 10대 관객 중 하나였을 뿐이다.
즉, <킬 빌>이라는 영화는 나의 영화목록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아빠는 엄청난 영화광이었다. (물론 현재도)
아빠는 영화관을 가기보다는 비디오를 애용하셨다. 주말이면 비디오대여점에서 영화를 왕창 빌려 한번에 2~3편씩 연속으로 보시곤 하였다.
내 기억으로 아빠는 당시 홍콩액션이나 미국액션 영화들을 주로 보셨는데, 다소 잔혹하거나 야한 장면이 포함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들도 내가 옆에 앉아 보는 것을 대수롭지 않아 하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가 보는 영화를 우연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화면 속에는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은 백인 여자가 사무라이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이소룡과 금발과 사무라이의 결합이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의 이 낯선 조우는 나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킬 빌>과 나는 이렇게 만났다.
그 당시 아빠 옆에서 본 영화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킬 빌>만큼 나에게 충격을 선사한 영화는 없다.
영화 속 장면이 너무 잔인해서나 영화의 서사 방식이 독특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였다.
<킬 빌>은 ‘이미지로 기억된 첫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이미지가 선사하는 ‘순수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영화를 보며 “아름답다”라고 느낀 적은 있었으나, 그것은 영화의 서사나 감정선같은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킬빌>의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다.
다른 영화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심지어 전혀 아름답지 않은 (팔이 절단되고 머리가 날아가는) 잔혹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장면을 아름답게 느꼈다.
나는 변태인 걸까?? 어린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특히 내가 전율을 느꼈던 장면은, (아마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키도와 오렌의 결투 장면이다.
달빛 아래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일본의 전통 가옥 정원에서 두 사무라이 키도와 오렌은 자신의 검을 뽑아든다.
휘날리는 오렌의 옷자락, 두 개의 검이 부딪히는 소리, 서로를 주시할 때 들리는 시시오도시의 ‘탁’ 하고 떨어지는 소리, 흰 눈에 흩어지는 빨간 피.
두 사무라이의 혈투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킬 빌>의 이미지들은 더 이상 내러티브에 봉사하지 않는다.
이미지가 주인공이고, 이미지가 영화를 추동한다.
이미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유희하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킬 빌>을 위해 여기저기서 이미지를 끌어모은다.
홍콩 무협영화와 일본 사무라이영화부터 미국의 서부영화와 TV드라마, 스웨덴의 성인물, 만화와 고전회화까지.....
공허한 패러디라고 불리는 ‘패스티쉬’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담고 있는 내용과 상징을 모두 날려버리고, 표면적인 이미지만을 차용한다. B무비의 대표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원전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본래의 텍스트에서 분리시켜 자유롭게 유희하는 것. 이것이 패스티쉬의 미학이고 B무비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이미지 그 자체만을 유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엄연히 시각예술이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표현하는 것이 영화의 사명임을 생각한다면, B무비가 선사하는 공허한 패러디와 근본없는 패치워크, 시각적 과잉과 유희 등에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by. 그레이색이야
회색지대(Gray zone)에 위치한 수많은 회색인간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의 색채를 탐미하고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