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린이책을 만들어 보나 했는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기나긴 방황을 지나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출판인으로서 살아보자고 단단히 마음먹고 회사를 옮겼다. 처음 해 보는 이직이었고, 어린이책에 대한 경력을 쌓아보겠다는 것만 생각했던 터라 다른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는데 새로 옮긴 회사는 이전에 다니던 출판사보다 규모와 분위기가 판이했다. 이전 회사가 사원과 임원이 맞담배를 피고, 모자를 쓰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의 소규모 회사였다면 새로 옮긴 회사는 모두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는 오피스 of 오피스였다. 교육 사업을 중심으로 다각도의 사업 부문을 갖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15층 사옥을 올려다보며 진짜 다른 사람들 같은 회사원(?)이 되었구나 싶어 잠깐 좋기도,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생경한 기분 속에서 출근한 첫날 어린이책 팀으로 새로 왔다고 소개하는 나를 아무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내 착각인가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접촉도 하지 못할 만큼 회의실 옆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자리에 앉을 때도 처음 만들어지는 팀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회사에는 이미 어린이책 전문 브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이사님은 당시 유행하던 학습 단행본을 만들겠다며 외부에서 어린이책 경력자인 팀장과 나를 채용하고, 내부에서 중등 물리 교재를 담당하던 대리 한 명을 차출하여 교재개발팀 내에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수익을 내지 못해 예산 지원도 잘 받지 못하고 있던 교재개발팀에서는 새로운 직원을 충원하고 내부 인원까지 빼가는 이사님의 행보와 새로운 학습 단행본 개발팀이 마뜩잖았을 것이었다.
시작이 어찌 되었던 끝이 좋았으면 다 좋았겠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팀이 끝이 좋을 수 있을까.
이사님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야 했기에 마음이 급했고, 이미 자신이 구상해 둔 책이 있어 빠르게 진행하기를 원했지만 어린이책 경력만 십여 년으로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던 팀장은 자신의 철학과 어긋나는 책은 만들고 싶지 않다며 시작부터 마찰이 심했다. 회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밖의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의 고성이 오가는 전쟁 같은 회의가 계속됐고 팀장은 팀장대로 이사님은 이사님대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 중간에서 나를 계속 부려먹었다. 단행본을 만들어본 경험도 없고 회사 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경험도 없던 나는 이래저래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팀장 역시 자유로운 분위기의 출판사만 오래 다녔던 탓에 생활 습관도 자유로웠던 사람이었다. 지각도 잦고 불필요한 외근도 많았지만 아무도 제재하지 못했다. 자기보다 상사라 할 지라도 전혀 쫄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하며 목소리를 드높여서 싸우는 쌈닭 같은 사람이었지만 화끈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에는 상처도 많고 여린 사람이기도 해서 같이 있을 때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야 했다. 그녀가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와는 너무 다르고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같이 일하는 내내 힘들고 불편했다.
결국 남자 대리님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원래의 팀으로 돌아갔고, 나와 팀장만이 남아 뭐라도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외부의 견제와 내부의 마찰 속에 일 년도 채 안 되어 이사님은 결국 퇴사를 결정하셨다. 이사님은 일단 우리를 기존에 있던 어린이책 브랜드로 전출시켰지만 그곳 사람들 역시 굴러 들어온 돌을 반기지 않았고, 팀장 역시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사님과 같은 회사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사님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려있던 나는 떠나자니 갈 곳도 없었고 남아있자니 눈치가 보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다시 그 지난한 취업의 과정을 반복할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일단은 살아남고 보자는 생각에 이사님께 나가시기 전에 초등개발팀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나만 혼자 초등개발팀에 남았다.
초등 사회는 담당자가 없어서 계약직 사원을 두고 교재를 만들어왔었는데 내가 발령을 받자 기존에 일하던 계약직 언니가 더 이상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 언니와 일하던 다른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눈치가 보였지만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눈 딱 감고 일단은 버티기로 했다. 전체 학년을 나 혼자 담당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사람들과도 부단히 친해졌다. 그렇게 겨우 자리를 잡고 버텨가고 있었는데 매출이 적다는 이유로 사회, 과학 교재는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결정이 나면서 사회 담당자였던 나와 역시 한 명뿐이었던 과학 담당자가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나를 아껴주시던 개발팀장님은 회사 내부에 다른 팀으로 일단 어디든 가서 버티고 있으면 다시 끌어와 주겠다고 하시면서 백방으로 내 자리를 알아보셨지만 결국은 갈 만한 자리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악착같이 버텼구나 싶어 솔직히 더는 이 곳에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지겨워진 나는 별 저항을 하지 않고 순순히 짐을 싸서 퇴사했다.(과학 담당자는 퇴사를 당할 만큼의 사유가 없는데 부당하다며 인사팀과 전쟁을 할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럴 의지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팀장님은 퇴사 전까지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가는 것 등의 편의를 봐주셨고 그 덕에 별 공백 기간 없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출판계는 진입이 어려워서 그렇지 확실히 한번 경력을 만들고 나면 이직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듯했다. 3군데에 이직 준비를 했고 2군데에 최종 합격을 해서 그중 이번에야말로 오래오래 다닐 수 있을 만한 회사로 결정해 이직했다.
그즈음에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꿈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서른을 넘긴 나이였고 더 이상 뒤쳐진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먹고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 외에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기존에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마음만 편하면 된다! 는 생각으로 갔던 회사였는데 역시 회사는 마음편히 다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번 깨닫게 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