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출판사에 가려고 한 건 맞는데

문제집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by 샐빛

프로덕션을 나와 응시했던 방송사 공채 전형. 지방 방송사. 신문사, 연예 뉴스 신문, 잡지 등에서 모두 낙방하고, 수십 군데 응시했던 일반 사기업에서도 서류전형조차 통과 못하면서 바닥을 기던 시절, 방송사 공채 전형을 준비하던 스터디에서 알게 된 언니들이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처럼 공채 시험만 준비하느라 다른 경력도 없고,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는 건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얘기였다. 책은 나도 좋아하는 분야고, 방송 일을 했지만 책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어찌어찌하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지만 우물을 팔 의욕조차 남아있지 않던 시기라 남이 판 우물에라도 기어가서 한 모금이라도 물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출판사도 경력직을 주로 채용하는 분야이고, 신입 공채 같은 건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국문과 출신도 아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을 두드려야 할지 몰랐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서울 북 인스티튜트의 '출판 편집자 입문 과정' 공고를 보았다. 지난번에 돈만 날렸던 방송 아카데미 꼴이 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낮에는 알바를 하고 밤에는 서울 북 인스티튜트에서 강의를 들었다. 단기 과정이라 직접적인 실무를 익힌다기보다는 편집자가 하는 일의 맛만 보는 정도였지만 내가 출판사에 들어오기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은 하였다는 증거가 될 터였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나는 28살, 늦은 가을에 드디어 정식으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출판사가 아니었다는 데 있었지만.


작가의 원고를 받고, 원고를 수정하고, 작가와 글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뭐 그런, 책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단행본 출판사에 가고 싶었지만 가장 먼저 내 손을 잡아 준 출판사는 초중고생들의 참고서를 만드는 출판사였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었다. 주전공이었지만 복수 전공했던 신문방송학보다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렇게 무시했던 전공이 내가 가장 초라할 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다. 어디 가서 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는 사극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잘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나는 전공으로 밥 벌어먹고사는, 내 주변에서 전공의 유효성을 증명한 거의 유일한 케이스가 되었다.(그만큼 상경계열이 아닌 인문이나 어문학부를 나온 친구들은 주전공으로는 취직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전공이 무엇이든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고.)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다 늙은 막둥이를 신입으로 받아 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도 잠시, 숨 막히게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 교정지에 코를 박고 고개 한 번 들지 않는 사무실 분위기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꼭 날마다 독서실에 출근하는 느낌이었다. 마감을 앞두고 일상처럼 이어지는 야근과 다른 친구들과 너무 다른 업무 일정(꽃놀이로 신나는 5월, 12~1월은 마감을 앞두고 가장 바쁜 시즌이다)은 나를 계속 지치게 했다. 어느 새부터 인지 내 머릿속엔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반복해서 문제를 만들고, 답안을 설명하고, 홈페이지 질문란에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잘 아는 것처럼 설명해주고, 가끔 나오는 오타에 심장이 쫄리는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안정적이라 답답했다. 그렇게 꿈꾸었던 안정이었는데 다시 마음속엔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런 와중에 교과서팀에 배치되면서 역사 교과에서는 유명한 진보적인 선생님들을 모시고 교과서를 만든다는 자부심 같은 걸로 버텨볼까 싶었는데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교과서 팀이 해체되었고 이사님, 부장님, 팀장님, 사수가 줄줄이 퇴사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조무래기 3명이 남은 팀에서 나는 가장 막내였지만 가장 연장자라는 이상한 이유로 팀장 대행이 되어 주간 회의, 디자인 회의, 제작 회의에도 참석하는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 발 더 멀리 내다보며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시간을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버팀목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몇 년 더 거쳐야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운 좋게 빨리 겪어나가면서 회사 안에서 내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기보다는 도망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고 내가 있을 자리, 내가 입을 옷이 아닌 것 같다며 또다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마침 그 때, 먼저 퇴사하셨던 이사님이 이직한 회사에서 새롭게 어린이 단행본 팀을 꾸린다며 합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오셨다. 단행본을 만들고 싶었지만 쉽게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오다니! 나는 기쁜 마음에 오래 생각하지 않고 이직을 결정했다. 회사에서는 이제 자리를 잡고 있는데 꼭 옮겨야 겠냐며 나를 잡아주었지만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또 한번, 파랑새를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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