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듯이, 해고 통보를 받고 바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처음 다녔던 출판사에서 만난 동료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직을 확정 지은 후 다니고 있던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상사의 간곡한 만류로 마음이 흔들리면서 이직 의사를 철회했고, 하필 그때 나와 연락이 닿아 자신이 가려고 했던 자리가 공석이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또한 이전 직장에서 만난 선배가 내가 지원한 팀에 친분 있는 사람이 있어서, 사적인 평판 조회(워낙 좁은 바닥이라 아는 사람에게 걔 어때? 하는 평판 조회를 심심치 않게 한다.)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서류, 면접을 다 수월하게 통과하고 나는 새로운 보통의 직장을 찾았다.
산전수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심적으로 이래저래 많이 힘들었어서, 새 직장에서는 쥐 죽은 듯이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자고 마음먹었다. 뭔가를 해보겠다거나 빨리 인정받겠다거나 하는 직장인의 목표 따위도 없었다. 조금 지나 보니 섣부른 목표 따위를 가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홍대 근처의 출판사를 다녔고, 두 번째에는 도심 속 거대한 빌딩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세 번째로 옮긴 이 회사의 외관은 솔직히 적응이 잘 안 됐다. 회사 건물을 보고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이직을 하긴 했지만 처음에 택시를 타고 회사 앞에 내렸을 때, 택시 기사님께서 여기는 무슨 공장인데 이렇게 아가씨들이 많이 다니는 건지를 물어볼 정도로 허름했으니까.(조금 더 자세히 묘사했다가는 어디인지 금방 티가 날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까짓 허름한 회사 따위, 회사 앞으로 오라고 할 남자 친구도 없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낡은 회사의 외관만큼이나 내부 역시 낡은 문화가 가득한 회사였다. 내가 들어간 본부에는 총괄이사를 필두로 4개의 부서가 있었는데 이사 휘하의 부서장들이 어찌나 이사의 눈치를 보는지 여왕벌을 모시는 병정개미들 같았다. 두 명의 여자 부서장들은 이사님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 이사가 출근하시면 커피를 타고, 이사를 모시고 쇼핑을 다녔고 두 명의 남자 부서장들은 온갖 알랑 방귀를 뀌며 이사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대놓고 충성을 표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사는 학벌이 좋은 직원을 따로 불러 자신의 딸에게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묻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능력도 없는 이사의 딸을 취직시킨 후 못하는 일을 커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옆에 붙여 준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회사 감사팀에 찔러도 시원찮은 일이지만 그 정도로 내가 이 회사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사의 딸이 우리 팀도 아니었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 역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팀장님은 좋은 분이었다. 인성도 좋고 능력도 있고, 나름 이 회사의 개국 공신까지는 아니어도 초기 멤버에 속하는 편이라 위에서도 인정받고 예쁨도 받는 분이었다. 미혼이셨지만 아이를 키우는 팀원의 사정도 다 이해하고 편의를 봐주시는 분이어서 처음에 갔을 때는 팀 분위기가 좋아 보여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팀장님 밑에 3명의 대리가 있고 내가 마지막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게 되면서 이곳도 정상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층층시하, 나는 팀장님 한 명이 아니라 대리 2명의 섭정까지 받는 말단 중에 말단이었다.(얼마 안 있어서 한 명의 대리는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고, 나는 경력이 애매해 처음에는 사원이었다가 다음 해 대리로 승진했다.) 처음엔 연차가 조금 밀리니까 같은 대리라도 대우를 달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님과 대리 두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팀 운영 체제 속에서 조금씩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일의 특성상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본 것을 서로 바꿔서 체크를 하는데, 사실 이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보는 일이라는 게 자기만의 스타일도 있고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류, 오탈자 같은 명백한 실수가 아니라면 서로의 결과물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 정도로 크로스를 보면 된다. 이전 회사에서도 그렇게 일해왔고 어디서도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두 명의 대리가 생각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와 막내(조금 지나 내 밑으로 팀원이 더 들어왔다)의 의견, 생각, 경력 따위는 조금도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가 한 것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식이었고, 우리가 그들의 결과물에 지적하는 내용들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처음엔 내가 못해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 곳의 스타일이 있으니까 내가 맞춰가야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또 배워가는 거라고도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답답하고 열이 받았다. 정말 내가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말 그렇게 잘하는 것이냐?라고도 할 수 없었기에 너무 숨이 막혔다. 게다가 나도 대리 직급을 달았음에도 팀장님과 대리 둘이서만 회의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이게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은 몇 차례 유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 많은 계약직 팀원이 채용되었을 때 그녀와도 같은 문제를 이야기했던 적이 있고, 다른 팀에서 우리 팀으로 새롭게 배치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버티지 못하고 결국 퇴사를 했으며, 나중에 내가 퇴사한 후에 우리 팀 막내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일로 스트레스받는 만큼 그녀들과 인간적인 관계 역시 나빴다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또 서로서로 인간적으로는 잘 챙겨주며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여서 또 나만 속으로 속앓이를 했다. 누가 봐도 이건 명백한 인권 모독성 발언인데 다들 재밌다고 웃을 때, 일하는 시간 내내 채팅으로 떠들며 풋풋 웃어댈 때, 아니면 채팅으로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한숨 쉴 때마다 다들 좋은데 내가 이상한 건가, 다 웃는데 나만 우는 건가 싶어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자, 더 이상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요가를 하기도 하고, 콘서트, 영화, 쇼핑 등 닥치는 대로 문화 생활을 즐겨보기도 했지만 도대체 속이 풀리지 않았다. 회사에 지각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퇴사를 하고 싶은 욕망에 퇴직금을 들고 유럽으로 떠나는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한 1년 한국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까, 그냥 엄마 아빠 집에 얹혀 살면서 백수로 살까 별별 고민을 하면서도 아침이면 꾸역꾸역 좀비처럼 출근을 하는 의미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그즈음 예전에 스터디를 하면서 알게 된, 출판사로 취직을 했었던 언니들 중 한 명은 다시 도전하여 결국 라디오 PD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오래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고 나만 인생의 실패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출발선에서 가지고 있던 스펙은 다들 비슷했는데 어느 사이에 나만 저 멀리 뒤처져 있는 것 같아 너무 우울했다.
물론 비슷한 선에서 시작했더라도 쏟아부은 노력,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달랐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냥 뭐라도 자꾸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탓할 게 나 밖에 없어서 계속 나 스스로를 갉아먹었고 내 안이 텅 비어 가고 있을 때쯤, 또 한 번 탈출구가 열렸다. 그게 탈출을 위한 문이었는지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는지 그때는 역시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