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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Jan 26. 2022

5. 부러져도 쓰러지지는 않아

길바닥에서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를 보면서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안 서서, 나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아이에게 계속 일어나라고 채근했다. 그냥 넘어진 거 가지고 왜 그래, 얼른 일어나. 하지만 아이는 움직일 수가 없다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근처 벤치에 아이를 앉히고 다리를 살펴보았지만 다리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아이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일단 아이를 둘러업고 근처 정형외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등에 업힌 채 부러진 다리가 달랑거릴 때마다 아이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걸 몰라주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가 너무 무거워 헉헉대고만 있던 그때의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엑스레이를 찍는데 촬영 선생님의

아이고, 하는 탄식 소리를 듣고서야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의사의 판독을 듣기 전이었지만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의사는 아이 정강이 다리뼈가 부러졌다고 했고 큰 병원의 소아 정형외과로 갈 것을 권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황한 간호사와 의사들은 그저 초보 엄마가 놀라서 그러려니 하는 듯했지만 부를 사람 하나 없이 고통으로 소리 지르는 아이 옆에서 너무 무력한 내 모습이 한심하고, 앞으로 닥칠 일들이 두려워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간 병원에서 깁스를 해줬으면 좋았으련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도대체 왜? 깁스하고 기다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동네 병원이 너무 야속하다) 결국 친정 부모님을 불러 일자(一)로 누워 꼼짝도 못 하는 아이를 들고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는 바람에 고생을 두 배로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수술은 할 필요 없으니 며칠 있다 다시 와서 통깁스를 하고 뼈가 붙기만을 기다리면 된다고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지쳐 잠든 아이를 재우고 멍하니 깜깜한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이고 들고 움직이느라 너무 지쳐 버렸지만 그날 밤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또 앞으로 무슨 일이 더 벌어질 건가 싶어 피곤한데도 정신은 또렷했던 것 같다.


그래도 생각보다 침착하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아이도 챙기고, 이사 준비도 할 수 있을 테니. 그것도 해외이사를, 그것도 혼자서. 


결국 아무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부모님께 내 상황도 말씀드렸다. 2차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갈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손자에 이어 자식까지 한꺼번에 비보 아닌 비보를 들으신 부모님은 애써 침착하게 모든 게 다 잘 지나갈 거라고 괜찮다고 해 주셨다. 나라도 빨리 상황이 정리되면 좋았을 텐데 2차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2주 앞두고 다리가 부러진 아이와 유방암 조직 검사를 앞둔 나. 그리고 어서 정리를 해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이삿짐들. 어질어질한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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