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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Jan 19. 2022

4.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이런 거였다

 하노이행을 결정한 후, 내 머릿속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목록화시키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하노이에 사는 엄마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카페에 틈나는대로 들어가 정보를 검색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알아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이사하는 거지만, 이사라고 하기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복잡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하노이에 들어가기 전에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남편이 들어가고 난 후 나와 아이도 따라 들어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계약 연장을 1년만 해 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주인에게 얘기하고 집을 내놓고 나서도 한동안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출국 전에 해결을 못하고 갈까 봐 애가 탔지만 다행히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온 신혼부부가 계약을 결정했다. 무조건 한 번에 집을 계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전투적으로 집을 정리한 것-모든 물건은 서랍 안으로, 밖으로 나와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정리했다-이 효과가 있었다. 아이도 있는 집이 정말 깨끗하다고, 예비신랑의 어머니께서 한 번에 결정을 해 주셨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했다는 게 실감 났다. 이제는 무조건 가는 거다. 살 집도 더 이상 없으니.


 자동차는 아직 쓸만해서 친정아버지가 타시기로 했다. 팔고 가기도 아깝고 타겠다는 사람도 없어서 좀 고민이었는데 아버지가 맡아주시기로 했다. 사실 그 차를 살 때 아버지가 좀 도움을 주셨는데 이렇게라도 드리고 갈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좋았다. 일단 집과 차가 해결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이삿짐만 잘 정리하면 모든 게 순탄하게 끝날 것만 같았다. 


 해외이사는 남편 회사에서 보내 준 두 곳의 업체에서 견적을 받았고,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정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원하는 이사 날짜를 확정할 수 있었다는 것. 출국 예정일과 화물 이동 시간을 고려하여 최대한 빨리 이삿날을 잡았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하루하루 확인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되는 동안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올해가 검사 대상 연도였는데 코로나로 그동안 좀 미루다 그만 잊고 있었다. 사실 올해 처음으로 유방암 검사를 해야 해서 좀 무섭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한 마음에 검진을 미루던 것도 있었는데 출국 전에 깔끔하게 받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동네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예약했다. 검사가 엄청 아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진짜, 너무, 심각하게, 욕 나올 정로로!!! 아팠다(물론 개인에 따라 케바케이겠지만). 힘들게 검사를 받고 나와서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산부인과와 내과를 같이 운영하고 있길래 요 근래 배가 아프던 거나 좀 물어보려고 내과에 들렀다. 지금 생각하면 하늘이 도와준 거지만 그때는 참, 모든 것이 얄궂게만 느껴졌다. 


 내가 배가 아프다 어쩌다 하는 얘기를 별로 대수롭게 듣지 않던 의사는 내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방금 내가 찍고 나온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다른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내 엑스레이를 봤는데 사진으로 보이는 내 가슴 모양이 좀 좋지 않다고. 자기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명확하게 판독해줄 수는 없지만 여기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공단으로 보내는데 그동안 자기가 확인해서 재검을 권한 환자들이 꽤 있었고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나한테 검사 결과가 통보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서 2차 검사를 받기를 권했다. 의뢰서와 촬영 엑스레이도 CD로 줄 테니 가져가라고. 꼭, 반드시 추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원래 한국 여성들은 치밀 유방이 많아 엑스레이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최초 유방암 검사를 받을 때 추가로 초음파 검사를 받으라는 권유를 많이 듣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나는 엑스레이에서 뭔가 보인다고 하니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우리 집안 자체가 암 병력이 있고 막내 고모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조금 무서웠지만 별거 아닐 거라고, 그냥 추가 검사받고 확인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근처 대학병원에 검진을 예약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아무 일도 아닌 채로 끝날 일이었다. 작더라도 유방외과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갔더라면 조금 일찍 결과를 알 수 있었을 텐데 혹시 몰라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진료를 보기까지 일주일, 추가 검사를 받기까지 일주일, 그 결과를 듣기까지 또 일주일이 걸렸다. 그렇게 조용히 병원을 다니며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그날은 베트남 입국한 후 거주증을 만들 때 필요한 사진을 찍으러 집 앞 상가에 있는 사진관에 가는 길이었다. 4년을 다니며 아이가 단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는 길이었고, 원래는 걸어 다녔는데 하필 그날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고 한 날이었다. 항상 횡단보도를 건널 때 킥보드에서 내려서 걷게 하는데 유독 그날은 횡단보도 중간쯤을 지났을 때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먼저 갈게~하며 내 옆을 휙 지나갔다. 이상한 일들이 모이고 모여 그날, 그 사건이 일어났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 인도에 올라가자마자 넘어진 아이에게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했다. 그냥 혼자, 어디도 부딪히지 않고 넘어졌기에 아무 일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바로 뒤에 있었고 내가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넘어진 아이는 일어나지 못했고, 끔찍하게 소리를 질러대며 울었다. 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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