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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08. 2020

비혼 동지의 청첩벽력장을 받으면 나는 누구랑 놀지?

결혼 안한다는 애들이 제일 빨리 결혼하더라

유치원생 때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결혼이 여성에게 썩 유리한 제도는 아니라는 걸 깨우쳤다. 중학생 때부터는 나는 결혼 하고 싶지 않다고 진로 얘기를 할 때 꼭 얹어 이야기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 중 한 명은 “그런 애들이 제일 빨리 결혼하더라.”며 많은 선조들의 경험을 임상 체험 해본 것 마냥 이야기 했다. 14살에 그 말을 했던 친구는 2020년 임상 체험을 떨쳐내고 비혼을 노래 부른다. 


결혼만 안 할 거라고 했지 연애를 안 할 거라곤 하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한 말을 지키며 연애 경력을 화려하게 쌓아왔다. 매년 10명이 넘는 사람들의 대시와 뒤따른 수많은 썸. 3번의 다자연애. 살기는 또 얼마나 복작복작하게 살았던가. 엄마 집에서 나오고 5년 중 3년 6개월 동안 다양한 형태로 총 6명의 사람들의 집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다. 많은 사람들을 온 마음으로 마주하고 부대끼며 감정을 교류하고 살아갔다. 그런 일이 익숙해 질 때쯤, 우리는 너무 가까워 거리를 두기 위해 헤어졌다. 더 부대끼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들어버리고는 서로 서서히 말이 없어지며 같이 살지 않는 것을 택했고 그렇게 천천히 멀어졌다. 


그럴 때 이효리 언니(멋지면 다 언니)의 말을 떠올린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더 나은 사람을 사랑하고 같이 살려고 하는 일에 있어서 결국 그 놈이 그놈인 걸까. 그 말을 남기고 효리 언니는 결혼을 했지. 내 ‘비혼’이 힘겨워 질 때쯤에는 어떻게 될까? 부담스러운 월세, 아플 때 혼자서 응급실을 가게 될 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수술 동의서에 사인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까? 


주변에 멋지고 능력 많은 수많은 여성들과 결혼을 논했다. 이성애자 여성 친구들은 한국 또래 남성의 부족한 성인지감수성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가며 결혼을 하지 않음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결혼 거부는 본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관계가 새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비혼을 선택하는 주체로 섰지만 어쩐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비어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사는 게 힘들어지면 그 문제의 원인을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쉽게 돌려버리진 않을까. "결혼 안 한다는 애들이 제일 빨리 결혼하더라." 그런 말들로 비혼에 대한 다짐은 쉽게 의심받고 거기에 대해 계속해서 나는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러다 비혼 동지의 청첩벽력장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게 되면, 나는 누구랑 노나. 친구들을 불러내는 게 부담스러워지고, 미안해지게 될 텐데 말이다. 나는 당신들의 남편에 대한 고민, 시가에 대한 고민을 듣기보다는 우리의 계획과 꿈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은데 거기에 당신 배우자도 낄 수 있을까... 출산을 하고 아이를 돌보러 집에 얼른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 인생 계획에는 같이 미래를 논하는 당신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남은 외로움의 탈출구는 결혼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결혼을 떠올리지 않을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의 배제다. 다른 생활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은 부재의 선언으로 미래를 남겨두니 이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혼을 예비책으로 떠올리지 않을 만큼 재밌고 잘 살 수 있는 비혼 계획이 필요했다. 혼자의 삶이 삐거덕 거리는 순간 내 삶에 여러 개의 비혼 대책을 같이 두고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하지 그 어떤 대안도 없어서 등 떠밀려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비혼 선언은 1인 가구가 되겠다는 다짐의 선언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늙어서 돌봄 노동이 필요할 때조차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겠다는 옹고집이 아니었다.


이 시리즈는 그 불안감에서 시작됐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한 선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의 삶에 결혼이라는 선택이 아닌 새로운 나만의 계획을 세워야만 나는 비혼으로 살아 갈 수 있다. 이 시리즈에는 배우자가 아닌 또 다른 식구를 찾아 나가며 했던 나의 노력과 고민을 담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식구에 대한 상상력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이 글은 새로운 세계를 함께 꿈꿔 나가보자는 프러포즈이기도 하다. 아무튼, 누구든, 우리는 식구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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