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식구_에필로그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친구는 가족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음에 신기해했다. 다른 플랫 메이트와 살 때는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마주치는 것도 신경이 쓰여서 아예 밤낮을 바꿔서 얼굴을 한 달 넘게 보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종일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견에게 말을 걸어 온종일 대화가 이어지는 공간임에도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고했다. 만약 동거인이 집에 사람을 데려온다고 했을 때는 불편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결국은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오빠가 그런다면 “미쳤어?” 한 마디로 끝났을 거랬다.
서량은 내가 고등학생 시절 매일 아침 수저와 간식, 점심을 손에 쥐여주며 학교 봉고차 놓치겠다면서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잡아줬고, 매주 주말 날 데리러 도서관에 왔다. 이제는 서량이 부르면 내가 운전해서 마중 나간다. 서로 다쳤을 때 본인을 걱정하기보단 서로를 걱정했다. 내가 아무리 결혼식을 가는 게 싫어도, 꾸미는 게 싫어도 딸 잘 키웠다는 소리 듣게 하려고 집안 행사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내가 절대 나를 위해 할 수 없는 걸 서량을 위해 하고, 서량 역시 그렇다. 서로에게 당연히 쏟을 수 있는 마음들과 시간이 있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척하며 글을 썼지만 산다는 건 결국 이성적일 수 없다. 서량과 나 사이의 당연해져 버린 것들이 다른 이들과는 절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니까. 하다못해 나 대신 당근마켓 직거래를 하러 가달라든가, 우체국을 가달라든가 같은 친구에게는 절대 부탁 못 하는 잡무들을 언제부터 영혼의 식구들에게 부탁할 수 있게 됐는지 설명할 수 없다.
내가 했던 실수를 돌이키며 함께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산다는 게 고민하는 것보다 부딪혀보며 더 많은 답을 얻고 그것보다 더 많은 질문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맞닥뜨리다 보니 최소한, 이 정도는 맞아야 같이 살 수 있다고, 포기할 수 없다고 믿었던 내 기준이 무너지기도 했다.
고정된 글은 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식구에 대해서 그렇게도 고민 많이 하는 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집의 식구는 맨 처음 틴더에서 만나 한 번 만나고는 닷새 뒤에 집에 들어갔다. 그 전에 살 뻔했던 셰어하우스는 지금 식구와 살기 위해 계약하진 않았지만 역시나 틴더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의 집이었다. 기대가 없으니 더 맞춰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이전 글들의 표와 질문지, 생활 패턴을 다 따져가면서 식구를 찾지 않았다. 그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글이 이 글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고정하는 글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식구를 찾아 나가는 중이다. 많이 실패하더라도, 투닥거리면서 안 맞더라도 나름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영혼의 식구를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