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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Jan 19. 2017

우리가 미친 쳇바퀴를 멈춰야 한다

세 아이 공무원 워킹맘의 죽음을 보며


셋째 육아휴직 끝내고 복귀한 뒤 주 70시간 이상 근무.

일요일 새벽에도 출근. 그 이유는 오후 시간만이라도 세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서. 

하지만 세 아이 워킹맘은 직장 복도에서 홀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30대 여성 공무원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녀만 유독 일을 많이 했던 건 아니라며, 

대부분의 직원이 평균 8~9시에 퇴근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직업으로는 최고라는 공무원. 

그것도 국민의 보건과 복지를 위해 일해왔던 그녀는 

정작 자신의 건강이나 복지 따위는 신경 쓰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세상을 등진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 앞에 어른거렸을 세 아이, 특히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막둥이가 맺혀서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일어나야 해. 이대로 쓰러질 순 없어.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 보고 싶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야근과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이 미친 직장,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내 동동거리게 만든 비겁한 나라를 내가 먼저 등지리라. 

내가 살기 위해서, 내 가족이 숨쉬기 위해서. 



경향신문 기획시리즈 '맘고리즘' 중에서


세 아이 공무원 워킹맘의 비극은 '헬조선'에선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올초 경향신문에서 기획시리즈로 내고 있는 '맘고리즘' 기사를 보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는 우리네 여성들의 삶에 한숨이 난다.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게다가 살림까지 거의 도맡다시피 하는 대한민국의 워킹맘들은 

'슈퍼우먼'이 아니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스트레스 우먼'에 가깝다. 

'출산-> 육아 -> 경력단절맘 or 워킹맘 or 전업맘 ->황혼 육아맘'의 알고리즘으로 이어지는 '맘'들의 삶을

'맘고리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나도 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나는 현재 둘째 출산과 동시에 일을 잠시 못하게 될 '예비 경력단절맘'이고,

우리 친정 엄마는 내 첫째 아이를 키우시며 건강이 더 나빠진 '황혼 육아맘'이다. 


지난 5년 동안 일하고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금과 생활비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누구 말마따나 '달랑 한 놈' 키우면서도 친정 엄마의 도움(희생)이 없이는

마음 놓고 밖에 나가 일을 할 수가 없더라... 

남편 역시 '온종일 회사에 궁둥이 붙이고 있어야 월급을 주는' 후진 직장 문화의 희생자였다. 

남편이 어쩌다 프로젝트를 맡아서 야근을 하고, 며칠 째 집에도 못 들어올 때면 

이러다 우리 남편이 과로사하는 건 아닌가, 우리 남편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혼자 애를 키우지?

젊은 나이에 생과부 되는 건 정말 끔찍한데... 별별 상상을 하며 노심초사할 때도 많았다. 


다행히 우리 남편은 과로사하지 않았고 

나도 과부가 되지 않았고 

우리 아이도 아빠 없는 아이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다만 아직까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 3편,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배우 윤상현이 우리나라와는 영 딴판인 '육아 천국' 스웨덴에 갔다. 

스웨덴에는 평일 오전, 한 손엔 라떼를 들고 한 손은 유모차를 미는 아빠들, '라떼파파'가 흔하다. 

그곳의 '일하는 아빠'들의 대부분은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쓰고 아이 키우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여긴다. 

그곳의 부모들은 일주일이면 7일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걸 당연시 여기며 

그래서 아이들도 아빠를 그리라고 하면 하트 뿅 뿅을 날리며 행복해한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아빠를 그리라고 할 때 소주병과 담배, TV, 피곤에 찌든 얼굴을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의 직장 문화다. 

한 회사의 CEO를 섭외해 직원들에게 야근을 제안하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우리나라 제작진이 밤 9시나 10시까지 야근을 제안하면 어떠냐 했더니 

CEO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럼 우리 직원들이 날 고발할지도 몰라요. 그건 우리나라 노동법에 위배되는 행윕니다.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몰카라는 걸 알려야겠군요."

그러면서 한국은 보통 몇 시까지 일하냐고 되묻는다. 

보통 밤 10시 전후로 퇴근한다는 제작진의 말을 듣고 뜨악해하던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 역시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남자는 늦게까지 직장에서 일하며 돈 벌고 여자는 집에서 혼자 애를 키우는 게 당연했단다. 

그런 스웨덴을 바꾼 것은 역시 정치였다. 정부에서 먼저 나서서 가장 먼저 유급 육아휴직제를 만들고

부부가 육아휴직을 쓰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당시 유럽에선 파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세대 정도가 지나자 자연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갔겠지. 

남자도 육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의식의 변화'가 곧 문화의 변화로 이어지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바꾸게 된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는 언제 저렇게 될까' 한숨이 나고 부럽기만 하다. 

우리가 스웨덴처럼 바뀌려면 아마도 빨라야 우리 자녀 세대에서나 가능하겠지. 

하지만 우리 아이가 아빠가 되어 살아갈 20~30년 후에라도 '라떼파파'를 흔히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과로로 세 아이의 엄마가 죽어나가야 하는 이 미친 사회의 쳇바퀴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분명 개개인의 노력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다.  

칼퇴근도 눈치 주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는 특히. 

그런 것은 정책으로 개선해야 하고, 그런 정책을 만들어 실천하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루하루 일하고 애 뒤치다꺼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다 간다고, 

정치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고 푸념만 해서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적어도 분노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워킹맘에겐 '어린애 두고 얼마나 돈 벌겠다고' 쯧쯧거리는 배려 없는 시선과 

전업맘에겐 '집에서 애나 키우는' 할 일 없는 '맘충'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들을 그냥 넘기지 말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진짜 '충'들은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나?

그 어떤 뛰어난 정책이나 제도보다도 더 바꾸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람들의 뿌리 깊은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의 변화는 나부터, 내 주변 사람들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다. 


"분노가 지성과 짝을 이뤄 의미로운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의 화는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진보적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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