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을 보고
여기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직속 상사에게 엄청난(?!) 부탁을 하려는 중이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애가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되었잖아요.
근데 와이프가 밤에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들어해요. 이러다가 문제가 좀 심각해질 거 같아서..."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팀장의 표정이 직원의 대답을 채근한다.
"그래서 당분간만이라도 좀 일찍 퇴근을...."
구구절절 자신의 가정문제를 어필하면서까지 불쌍할 정도로 애원하던 그 남자의 부탁은
다름 아닌 '정시퇴근'이었다.
좀 일찍 퇴근하게 해달래서 퇴근 시간 전 30분이나 1시간 조기퇴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팀장은 '당분간만이라도 정시퇴근'을 선심 쓰듯 흔쾌히 허락했고 남자 직원은 뛸 듯이 기뻐했다.
(화면 속 그 남자는 기뻐했지만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남자.
역시 조심스럽게 직속 상사에게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머뭇머뭇 입을 연다.
아이가 어려서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조기 퇴근도 아닌 정시퇴근을 조심스레 부탁하는데...
하지만 중년의 팀장은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면서 훈계를 덧붙인다.
일보다 가정을 우선시하겠다는 건가? 누구는 애 안 키워봤나? 나도 너처럼 힘들게 애 키웠어.
그래서 우리 와이프가 일까지 관뒀어.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남자라면 그런 경험이 필요해.
어쩌고저쩌고~~~
(허! 시어머니가 자기도 모진 시집살이했다고 며느리에게 똑같이 시집살이시키겠다는 심보인가?)
결국 그 팀장이 부하 직원에게 내린 최대한의 배려(?)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정시퇴근'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나온다)
얼마 전에 정부의 새로운 보육 정책이라고 나온 게
맞벌이로 늦게 퇴근하는 부부를 위해서 노인들이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그래서 맞벌이 부부는 육아 부담을 덜고 노인들은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다고
홍보까지 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다.
그걸 보면서 나는 맞벌이 부부로 하여금 퇴근을 더 앞당기게 하는 정책은 왜 못 만드는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일찍 퇴근하게끔 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 아닌가?
열이 확 뻗쳤더랬다.
남자들도 저렇게 정시 퇴근이 눈치 보이는데 임신 중인 여성이 단축 근로를 쓴다?
말도 안 된다.
우리나라가 왜 초저출산 국가가 되었는지 생각해보라.
정해진 퇴근 시간에 퇴근도 제대로 못하는 대한민국의 망할 직장문화가 망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먼저 망할 거다.
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에 사례자로 나온 저 젊고 불쌍한 아빠들을 보면서
5년 전 우리 남편이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첫 아이를 낳고 막 아빠가 된 우리 남편은 당연히 출산휴가를 냈다.
문제는 출산휴가를 낸 다음날부터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을까?
첫 아이를 품에 안은 감격과 생명의 신비로움, 행복에 젖어 있는 때도 잠시...
남편은 직장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나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느라 괜한 긴장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왜 그래? 회사에 무슨 일 있어?"
"내일 당장 출근하라네."
"뭐? 벌써? 아직 출산휴가 이틀 남았잖아."
남편이 말하길, 직속 상사가 이런 식으로 말했단다.
'니가 애 낳았냐? 니 와이프가 애 낳았지? 회사에 밀린 일이 산더민데 혼자 애 낳았다고 유세냐?'
법적으로 보장된 (꼴랑) 3일간의 출산휴가조차도 마음 편하게 쓰지 못하는 X 같은 현실.
욕이 절로 나왔다.
그때 나는 남편 직속 상사의 만행을 언론사에 제보할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바로 (한때 목동에 본사를 둔) 방송국이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방송사도 이럴진대 다른 회사들은 오죽하랴...
깊은 절망 속에서 아이를 안고 한숨을 쉬며 젖을 물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절망은 곧 현실이 되었다.
당시 남편은 저녁 8시 생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도 출근은 항상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오전 8~9시 사이에 했다. 저녁 생방송이 9시에 끝나고 뒷정리까지 하면 얼추 9시 반에서 10시.
목동에서 김포 집까지 차로 오는데 대략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집에 오면 빨라야 밤 10시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집에 올 때까지 나는 집에서 혼자 삼시 세끼 내 밥을 챙겨 먹고
오직 울음으로만 의사표현을 하는 그 어린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면서
오롯이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랬다.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 견딘다고 표현한 건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아이와 단둘이 있는 그 시간에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잠실 사는 사촌 언니에게 김포까지 와달라고 애원했다가 욕먹고 엉엉 운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들고 퇴근할 때도
고개를 돌릴 기운도 없이 멍하게 티브이만 보며 수유한 적도 있었다.
산후 우울증이 내게도 찾아왔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땐 나도, 남편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건 하루 종일 얼굴을 비춰야 월급을 주겠다는
그 망할 회사의 조직 문화 때문이었다.
얼마 후 남편은 결국 회사를 관뒀다.
남들은 기를 쓰고 들어가려 애쓰는 공중파 방송국에, 그것도 정직원이었던 남편의 사표를 두고
시어머니는 물론 우리 친정엄마 주변 친척들, 친구들, 지인들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전부 다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와중에 기뻐했던 이는 나 혼자 뿐이었다.
남편이 집에 있게 되면서 독박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나는 금방 산후 우울증과도 빠이빠이했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문제 때문에 우울해졌다.
안정된 직장에서 나오는 고정수입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뒤늦게 체감한 것이다.
매달 드는 고정지출, 대출이자, 보험료, 생활비..... 실업급여로는 택도 없었고
빚은 무섭게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마주할 시간을 번 대가 치고는 너무나 혹독했다.
그로부터 꼬박 5년이 지난 지금, 빚은 여전히 남아있다.
생활비를 어쩔 수 없이 카드로 충당한 것이 꽤 쌓여서 좀처럼 없어지질 않는다. (망할 카드빚!)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욕심껏 형편껏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본다.
기왕 일보다 육아, 회사에 하루의 2/3를 저당 잡힌 삶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선택이니만큼,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비록 퇴사라는 다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긴 했지만, 그래서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힘들었지만
대신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얻었고 그 시간은 아이의 인생에서도
우리의 인생에서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찬란한 기쁨과 행복의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아빠 사랑해, 엄마 사랑해' 하면서 엄마 아빠 모두 자기 옆에 있는 걸
자연스럽게 여긴다. 남편은 아이에게 처음 '아빠 사랑해'라는 말을 들은 날,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다시 시청하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던 '아빠의 전쟁' 속 그 젊은 아빠들을 생각한다.
나인 투 식스도 모자라 나인 투 나인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저 수많은 아빠들.
제작진의 제안에 따라 한 회사의 사장은 가장 야근을 많이 하는 두 남자 직원(아빠들)을 지목해
5시 반 칼퇴근을 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하루만 칼퇴근을 하고 이튿날은 전날 못다 한 업무와 자신들만 먼저 퇴근한다는
죄책감(?)에 새벽 첫 차를 타고 5시 반에 출근한다. 그리고 사흘 째부터는 어쩔 수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사정 때문에 다시 야근을 자처하고 만다.
아빠의 전쟁에 나온 그 젊은 아빠들은 하나같이 가족을 부양하느라 회사에서 끝도 없는 일과 씨름한다.
그런 남편들을 둔 아내들은 어떤가?
평일 '저녁을 같이 먹는' 일 따윈 꿈도 못 꾸고 밤 9시, 10시, 늦으면 자정 넘어 퇴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전업주부로 하루 종일 '독박 육아'를 한다. 이쯤 되면 '아빠의 전쟁'은 '엄마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혼자 육아를 도맡아 한다는 건, 혼자 생계를 도맡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육아의 책임 혹은 권리는 아빠들에게도 있다. 하지만 '아빠의 전쟁'에 나온 그 아빠들은 한결같이
평일 저녁엔 깨어서 '아빠~'하고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도 못 듣고 잠든 아이 깰까 봐 쉬쉬하며
혼자 조용히 늦은 저녁을 먹는다.
이쯤 되면 남편과 아내 둘 중 누가 누가 더 힘든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아이를 키우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 -그중에서도 한창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갈 때인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젊은 부모들-은 이렇게 매일 '전쟁 중'이다.
'저녁이 없는 삶'. 게다가 그것이 당연시되는 삶.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이라면 정말 '노답'이다.
가정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경직된 그리고 매우 잘못된 직장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보다 육아를 택한 아빠들, 그래서 용감하게(?)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젊은 아빠들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택도 없다.
엄마들은 물론 아빠들도 어린 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떤가?
인간이 언어를 배울 때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면 평생 제대로 말할 수 없듯이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결정적인 시기'를 보낼 '권리'가 있다.
나는 지금도 희운이 만할 때 (4~5살 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그때 우리는 성남에 있는 작은 다세대 주택에 살았는데 아빠는 가내수공업으로 마당 한편에 있는 작업실에서
양말을 만들었고 엄마도 이따금 아빠 일을 거들며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셨다.
내 유년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그 집에 살 때였다.
손바닥만 한 시멘트 마당에 커다란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동생과 함께 물놀이하던 어느 여름날,
엄마가 떡이 든 쟁반을 들고 '옹달샘' 동요를 개사해서 '맛있는 떡 누가 와서 먹나요~' 노래하며
우리를 바라보시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가? 나는 희운이가 아기 때 옹달샘 노래를 참 자주 불러주었다.
(물론 그 집 살 때 엄마 아빠가 싸웠던 것도 내 유년시절 가장 불행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한다)
그 어린 시절, 나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도, 불행했던 기억도 모두 엄마 아빠와 연관되어 있는 걸 보면
육아서적에 흔히 나오는 -엄마(아빠)가 필요한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말이 불편하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야 하는 절대적인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 아빠들이 한창 일로 바쁜 시기다.
먹고살기 위해 돈은 반드시 벌어야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손이 많이 가는 가장 바쁜 시기의
젊은 3,40대 부부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가?
어떻게든 도와줘야지 맞다. 하지만 도움은커녕 퇴근 시간에 대한 배려조차도 없는
일에 대한 강요, 가정에 대한 의무 포기를 종용하는 폭력이나 일삼고 있지 않나.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우리 같은 30~40대 부모에게 정말 지옥 그 자체다.
천사같이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오래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커주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고 힘들어서
빨리 아이가 커서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매일 그런 모순투성이 현실과 싸우면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 싶어
죄인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상사에게 정시 퇴근만이라도 하게 해주십사 굽신거리는
젊은 아빠와 엄마들이 한없이 가엽고 안쓰럽고 화가 난다.
아이를 키우고,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화두는 내내
어떻게 이런 모순된 현실 속에서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즐겁게 일하고 가족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기왕이면 나만의 시간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꿈같은 현실'을 꿈꿔보는 것이다.
그 옛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유명한 소설의 제목을 이렇게 바꿔볼 순 없을까?
<일하고 놀고 사랑하라 >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나. (이건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욕망이다)
나 혹은 나와 같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조화롭게, 균형 있게 해나갈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