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
우리 집에 있는 물건 중 100가지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 몇 주 동안 꽤 많은 물건을 버렸다.
찢어진 매트, 고장 난 스팀청소기, 유통기한 지난 약, 쓰지 않는 오래된 여행가방, 내게 필요 없는 방한용품...
가짓수를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스무 가지 정도의 물건을 버린 것 같다.
집안 곳곳에 방치된 그 많은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미루고 미룬 공간(?)이 있으니~ 바로 냉장고다.
냉장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여닫는 곳이니 틈틈이 정리한다 쳐도 온갖 이름 모를 것들로 꽉 찬
냉동실을 열어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이내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오늘만은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싶어 일단 문쪽에 있는 식재료부터 꺼내놨다.
하얗게 성에가 껴서 안에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겠는 비닐봉지들을 꺼내놓고 몇 시간을 두니
그 정체가 드러났다. 내가 좋아하는 시루떡, 오메기떡, 약밥 등이다.
아아~ 내가 이것들을 언제 누구한테 받았더라?
시루떡은 작년인가... 어느 개업 집에 가서 맛있다고 했더니 주인이 인심 좋게 싸주신 거고
오메기떡은 올봄인가 친정 엄마가 선물로 받은 거라면서 몇 개 나눠주신 거고
약밥은 시어머니가 해주신 거고...
그때그때 맛있는 음식을 받았을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아득해졌다.
다시 한번 쪄먹어 볼까? 그때 그 맛이 날까?
조심스럽게 데워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것들, 다 버려야겠군.
냉동실에도 오래 두면 음식이 상한다더니 개당 천 원이 넘는 비싼 오메기떡은 그새 쉬어 빠졌고
개업식에서 먹었던 그 쫀득한 시루떡은 퍽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약밥은 뭐... 데우니까 다 퍼져버려서 주워 먹기도 힘들었고.
방송대본을 쓸 때 몇 가지 원칙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끼면 똥 된다'는 거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나중에 보여줄 게 아니라 아끼지 말고 초반에 보여줘야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원칙.
아끼다가 똥 된 냉동실 음식들을 보니 그동안의 내 사고방식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껴뒀다 나중에 손님들 오면 같이 먹어야지...
이건 귀한 거니까 잘 놔뒀다가 우리 신랑, 우리 애부터 먹여야지...
그런 생각으로 냉동실로 들어간 음식은 결국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더라.
맛있는 음식은 아끼지 말고 가장 맛있을 때 먹어야 한다. 그것도 내. 가. 먼. 저!
내가 느끼는 행복한 삶의 여러 순간 중의 하나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다.
이제부터라도 가장 좋은 상태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나부터 '셀프 대접'하리라.
그게 나를 사랑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한편으론 좋은 건 -그게 음식이든, 날씨든, 물건이든 -가장 좋을 때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왜 그렇게 살지 못했나 후회마저 든다.
좋은 것마저도 '나중에'라고 미뤄버렸던 나의 하등 쓸데없는 습관, 사고방식을 버리자!
냉동실을 정리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