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뭐길래 '의 최민수를 보고
터프가이, 마초, 상남자...
배우 최민수를 둘러싼 수식어는 엇비슷하다. 당연하다.
'모래시계' 속 태수에서 최근작 '오만과 편견'의 베테랑 검사까지
그가 맡은 배역은 하나같이 카리스마 넘치고 남자 냄새가 풀풀 나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래서 예능프로 '엄마가 뭐길래'에 나오는 최민수의 모습은 참 의외다 싶다.
드라마에선 그렇게 카리스마 넘치던 양반이 아내 강주은 앞에선 꼼짝을 못 하니~
심지어 애교도 철철 넘친다. 천하의 최민수에게 저런 귀여운 면이? 너무 재밌었다.
그때부터 최민수가 나오면 채널 돌리지 않고 봤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에피소드는 최민수가 설거지하는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다.
"그거 알아, 대디(daddy)?"
"응?"
"내가 처음 대디한테 (결혼 허락받으러) 인사 왔을 때도, 대디는 그렇게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고 있었어."
"그랬나?"
"근데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
고작 설거지하는 게 뭐가 멋지냐고 반문하는 장인에게
최민수는 그때가 자기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며 고백했고,
장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좋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따뜻하게 장인을 바라보던 최민수의 그 눈빛, 그 행복에 젖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 외로웠던 그 남자는
아내 될 여자의 아버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 이 분은 정말 좋은 아버지고 좋은 남편이시구나. 평생 그렇게 사셨겠구나.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자라면, 나의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어머니가 되어주겠구나.
외로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으로 채워줄 여자겠구나.
그리고 내게도 의지하고 존경할 수 있는 또 다른 아버지가 생겼구나....
최민수는 설거지며 청소며 쓰레기 버리기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집안일을 '내 일처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최민수가 아내 강주은과 투닥거려도 금방 화해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며
다 커버린 자녀들과도 자연스레 스킨십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비결이 아닐까?
'내 남편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글의 공유수가 90이다. 거의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내 보잘것없는 글을 공유해간 걸 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내 글을 공유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집안일을 하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이 남편 보여주려고 퍼간 걸까?
아니면 이미 집안일을 아내와 같이 하는 '깨인' 남편들이 공감하며 퍼간 걸까?
전자라면 씁쓸하고 후자라면 다행스럽다.
집안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매일 해도 티도 안 나는 끝도 없는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해야 하는 아내들은
마치 인간에게 불을 줬다는 이유로 매일 무거운 돌을 산꼭대기에 올리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신들의 저주에 걸린 시지프스나 다름없다.
집안일을 아내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기꺼이 나눠서 해야 하는 내 일로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남편들은 시지프스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민수가 설거지하는 장인의 모습에서 직관적으로 간파해낸 것은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고 아끼니까 집안일에 쏟는 수고를 덜어주고 싶고
힘든 일은 함께 나누고 싶은 그 마음. 그것이 체화된 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장인 어른을 본보기 삼아 그대로 실천한 최민수야말로
진짜 남자의 자격을 갖춘 남자다.
내 눈에는 최민수가 그동안 열연한 드라마나 영화 속 그 어떤 배역보다도
매일 아침 당연한 일과처럼 설거지하는 그의 모습이 더 멋져 보인다.
P.S- 최민수 씨,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싸인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