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역사관 (국립경주박물관 3)

2024. 경주.

by 은혜은

만나고 싶었던 전설들을 뒤로하고 천년제국 신라를 빛낸 유물들 속으로 뛰어든다.


신라역사관에 들어서니 다양한 얼굴의 신라가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코를 박고 관찰하다 보니 어느새 나 혼자다. 가족들 모두 각자의 관심과 속도대로 박물관 어딘가를 유람 중인가 보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 더 천천히 걷는다. 걸음을 붙드는 유물들과 일일이 눈 맞추며 그들이 가진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래, 너는 그렇구나.', '아, 너는 그런 거였어!'

처음 보는 유물은 신기함에 더 집중하게 되고 이름이 익숙한 유물은 반가움이 불쑥 앞서 혼자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느릿느릿 유영하듯 걷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유독 소란하다 싶은 전시장에 들어서니 사람 반, 황금 반이다.

온통 눈을 사로잡는 황금색. 신라 권력의 상징들이 모여있는 곳. 왜 사람이 많은지 알 수밖에 없는 곳.

흩어졌던 가족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 각자 관심 있는 유물 앞에 서서 대화 중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제 허리띠, 금제 관식,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 목걸이, 그리고 수많은 귀고리와 반지들.

경주 첫걸음에 들렀던 대릉원 일원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니 더 반갑다. 대릉원의 그 오묘한 기운은 이런 유물들을 간직하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을 만큼 눈이 부시다.


그렇게 저마다 화려한 매력을 뿜어내는 금장신구들 중에 유독 눈을 사로잡는 게 하나 있다.

높이 솟은 금관도,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금제 허리띠도 아니다. 귓불이 내려앉을 듯 무겁고 화려한 세공을 자랑하는 귀고리도 아니다. 그저 단순한 반지 하나.

많은 금반지들 사이에 몰려 한데 웅크리고 있었는데 유독 눈에 딱 들어왔다. 백로사이에 섞인 까마귀처럼 남다르다. 어떤 점이? 화려함에 멀 것 같은 눈을 정화시켜 주는 단순함이 눈길을 끈다. 집중관찰하다 보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어디서 봤을까 생각해 보니 요즘 주얼리샵에 가면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가져다가 옆에 진열해 놓아도 어색할 것 같지 않은 세련됨이 있다.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신라 금장신구의 매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신분과 권력을 대놓고 과시하기 위한 장신구와 일상에서 소소하게 착용했을 것 같은 장신구까지.

황금은 신라 권력자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걸 통해 우리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훌쩍 초대한다.

멋지다. 정말!!

반지 앞에 하염없이 서있는 나를 아이들이 재촉한다. 눈을 사로잡는 황금의 유효시간이 아이들은 더 짧은가 보다.


박물관을 나서며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들을 하나씩 말해 본다.

첫째는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둘째는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호우명그릇'을 꼽는다.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수긍이 간다. 텍스트로만 알고 있던 유물을 실제로 봤을 때의 내적 친밀감을 나도 계속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1순위도 황금이 아니라 '임신서기석'이다.

아마도 경주 방문 직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라의 황금유산들을 이미 경험하고 온 것이 황금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배경이 된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때. 어떤 신라든 마음에 새겨진다면 이 여행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경주라는 이상한 나라의 여덟 번째 걸음에서, 천년제국 신라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들의 일상과 종교, 문화와 권력까지.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똘똘 뭉쳐 기막힌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신라라고!


그래, 그래. 반가웠어, 신라야! 잘 있어, 경주!

2024. 경주라는 이상한 나라, 미련 없이 손 흔들 수 있을 만큼 짧았지만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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