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주.
꽃비가 휘날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따뜻한 봄날. 평화로운 소풍. 사랑하는 사람과의 산책.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그리고 심해지는 비염? 뭐, 나는 이 정도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찾아가는 유물을 만나고 난 뒤엔 하나가 더 추가될지도 모른다. 꽃비가 휘날리는 날엔, 이차돈!
꼭 보고 싶었던 두 번째 유물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에 자리를 잡은 '이차돈 순교비'이다.
이차돈은 신라 법흥왕 때의 사람으로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순교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이기도 하다.
'그렇구나, 순교자구나. 그런데 그게 꽃비랑 무슨 상관?'
당연히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순교비를 보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교조각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차돈 순교비.
먼저 온 선객들로 북적이는 탓에 한참 기다렸다가 순교비 1면에 정면으로 마주 섰다. 비석은 총 6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1면에 이차돈의 순교장면이 새겨져 있다. 어두운 조명 탓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서서 관찰해 본다.
허리를 비스듬히 구부린 이차돈. 그 앞 바닥에 뚝 떨어져 있는 머리통.
목에서 솟구치는 하얀 우유. 바닥이 진동하는 구불거림. 그리고 사방에 휘날리는 꽃비.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그대로 재연해 놓았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더 기가 막힌다.
'이게 진짜 이야기라고?' 이토록 정교한 순교비까지 세워놓은 걸 보니 '진짜? 진짜??' 하고 자꾸 묻게 된다.
이 전설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각색되어 있는 건지 이야기를 더듬어 보는 내 머릿속이 시끄럽다.
순교를 했고 그로 인해 불교공인에 결정적 도움을 준 건 맞는 것 같다. 아마도.
하지만 우유와 꽃비, 지진은 양념이겠지?
에밀레종에 MSG가 들어간 것처럼 불교공인 과정에서도 어떤 강력한 효과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순교비에 새겨진 그대로 이차돈의 순교날을 상상해 본다.
결연하지만 담담한 표정의 이차돈이 참수형에 처해지고 그 목이 바닥으로 똑 떨어지는 순간, 목에서 하얀 우유가 위로 솟구친다. 놀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그때, 땅이 마구 흔들리고 하늘에선 꽃비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이 괴이하고 경이로운 광경에 사람들은 전율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니 알겠다. 양념이 빠진 순교는 너무 밍밍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이차돈의 순교를 극대화할 양념이 꼭 필요했을 거다. 그 양념의 효과로 불교가 공인되고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으니 양념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를 흥미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 전설의 쓸모를 또 한 번 느낀다.
이차돈 순교비 앞에서 여러 질문들을 툭툭 던져본다.
'이차돈의 순교가 없었다면? 불교공인이 더 늦어졌다면?'
신라의 역사와 불교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남아있는 눈부신 신라 불교문화제들의 시발점이 된 이차돈의 순교가 더 대단해 보인다.
'불법을 흥하게 한 왕'이란 뜻의 법흥왕. 법흥왕이란 시호를 받게 한 일등공신 이차돈.
앞으로 꽃비가 휘날리는 날엔, 이차돈과 법흥왕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