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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퀸 May 01. 2023

이게 직업인데, 이것밖에 안 된다고 느껴지나요?

에디터 친구 J와 번개 만남을 가졌다. 바쁘면 다음에 봐도 된다는 그녀의 양보에 다급히 "아니야! 오늘 안 보면 1년 뒤에 볼 거 같아. 오늘 꼭 보자!"라며 그녀의 전화 목적을 달성시켜 주었다.



1차는 동네에 있는 교자집이었다.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벌써 맛집의 반열에 오른 식당이었다. 핫한 동네에 살고 있어서, 맛있다고 하는 곳에는 평일에 미리 가야 한다. 주말에 가면 무조건 웨이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 교자집은 오픈했을 당시, 사람이 더 많아지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촉이 발동해서 가던 식당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해 보니 이제는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J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좋은 자리에 앉아 먹을 수 있었다.



원래는 1차에서 만남을 끝내려고 예정했었다. 백수이기를 선택하고,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과제들을 성취하며 열심히 살고 있던 터라 2차까지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미리 못 박아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집을 쓰윽- 구경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물음표를 나는 느낌표로 되받을 수밖에 없었다. 1차로 끝내기에는 무척 아쉬웠던 만남이었던 거다. 서로의 일상 업데이트가 어찌나 밀렸던지, 그동안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만 얘기하는데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업데이트에 속도를 높여보았지만 지금도 흐르고 있는 시간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음식은 다 먹고 벌써 빈 그릇만 남아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결국 2차로 나의 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5분만 있다가 헤어지기로 했지만, 어쩐지 그 말이 아쉬워서 J를 10분만 더 붙잡아둬야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집 구경이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게 느껴지는 소박한 내 공간을 소개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책들도 보여주었는데 그중에서도 J는 <멜로가 체질 - 대본집>이 보고 싶다며 펼쳐 들었다. 그 책을 보는 J에게 나는 "임진주 때문에 내가 방송작가 한 거잖아."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게 서로의 직업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는데 우리는 장래희망 겹친 적이 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 우리는 똑같이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몸담고 있는 업종은 다르지만 연차가 비슷해서일까? 하고 있는 고민의 모양새 매년 비슷했다. 3년 차에 접어든 우리 고민은 이랬다.



"나의 글을 쓰고 있나?"

"일하면서 글 쓰는 실력은 늘고 있나"

"글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정작 느는 건 경력뿐인가?"



우리는 종종 서로의 글을 브런치로, 블로그로, 인스타그램으로 보며 지낸다.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도 둘 다 비슷했던 거 같다. 내 눈에 읽히는 J의 글은 너무도 훌륭했다. 그녀의 글을 보고 단 한순간도 질투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이었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잘 쓴 글을 보면 괜히 샘나고 얄밉다. 이 못난 심리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직업의 이미지와는 다소 결이 맞지 않는 듯 하긴 하다. 왠지 작가라고 하면 상냥하고 온화하고 따뜻하고 정감 많을 거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작가들은 타인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채찍'을 쥐고 흔드는 '완벽주의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신중한가, 탈고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수준에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J에게 오랫동안 품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글을 그렇게 잘 쓰는데 대체 왜 이렇게 글을 안 올리는 거야?"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일단, J의 글은 흠잡을 데 없이 탁월하다고 생각됐다. 때때로 질투가 느껴지는 날도, 질투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나 잘 쓰는 글을 이리도 자주 쓰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그녀의 솔직한 답변을 듣기 전에, 내가 먼저 솔직한 나의 사정을 밝혔다.



"정말 솔직히,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잘 쓰는 게' 아니라, '잘 썼다'고 생각해. 현재도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 심지어 내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은 적이 없으니까. 그냥 나 혼자 잘 썼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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