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다시 추억이 될 수 있을까

by 글희

추억이 살아 움직인다. 매번 같은 말을 되뇌고 이미 아는 시간이 재생되는 비디오가 아니었다. 눈앞에 서있는 추억은 기억에 없는 말을 하고, 몰랐던 표정을 짓는다. 2년 만이다. 헤어진 지 2년 만이다.

“잘 지냈어?”

자그만치 7년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시작한 연애는 끝을 모르고 길어졌다. 끝을 몰랐던 점이 문제였을까. 헤어지는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이게 맞다는 확신만으로 끝맺었다. 무언가 꼬여있었다. 우린 한강에서 봄기운이 스물스물 배어있는 공기를 가르고 지르며 뛰었다. 근처 술집에서 두부김치와 소주를 마시며 그간 꼬여있는 부분을 털어냈다. 털어낸 줄만 알고, 껴안고 사랑한다며 헤어졌는데… 털어낸 줄 알았던 꼬인 실타래는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날 찔렀다. 그 꼬임을 한번 더 드러내는 것이 매듭을 잘라내는 일일줄은 몰랐다. 잘 지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영원한 종결을 내뱉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걷던 포천천에서 눈물 한 방울 내지 않고 홀로 돌아와서야 무너졌다.

20대의 전부였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시작한 연애는 내 세계를 만들 새도 없이 모든 걸 우리 세계로 만들었다. 내 세계가 없단 점이 문제였을까. 어딜 가도 온통 우리- 밖에 없었다. 헤어지고 2년은 우리의 세계를 지우고 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일어났을 때 매번 와있던 “잘 잤어?” 문자 하나 없다고 울었다. 3주쯤 지나니 일과 중엔 생각이 안 났다. 퇴근하는 버스에서야 엇 오늘은 생각을 안 했네. 하고 울었다. 아무렇지 않아지길 바라면서도, 아무렇지 않아지기를 거부했다. 내가 기억에서도 놓는 순간 정말로 끝이라고 느꼈던 게 아닐까. 두 달쯤 지나서야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전에는 함께 듣던 노래든, 이별 노래든 들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일부러 듣지 않다가 서서히 잊혀 간다 싶을 때 자주 갔던 공원이나 함께 걷던 길을 기어코 찾아가서 노래를 듣고 울었다. 온통 추억이었다. 추억은 쫓을 추(追)에 생각할 억(憶)을 쓴다. 기억(記憶)이 ‘생각을 기록한다’면, 추억(追憶)은 ‘생각을 쫓는다’이다. 나는 울기 위해 그 기억을 쫓았고, 기억을 쫓으며 또 울었다.

그렇게 울어대고 비워내기를 1년쯤 하니까, 더 이상 눈물이 안 났다. 함께 찍었던 브이로그를 봐도, 영원하자던 편지를 읽어도, 사귀었던 시간과 헤어지는 순간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눈물이 안 났다. 추억은 기억을 쫓고자 하는 열성과 열망이 반영된 능동적인 말이다. 쫓고, 잡고자 하는 바람이 녹아있는 말이다. 잡고자 하나 잡히지 않는 기억에 애타는 마음이 이렇게 건조할리 없다. 우리- 세계는 점점 색이 바래 무채색이 되어갔다.

담담해지려 노력했고, 마침내 담담해졌던 시간을 흐트러트린 건 추억이 아닌 메일 한통이었다.

희경이에게

메일 한통이 이뤄낸 결과로써, 과거에만 살아 움직이던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사람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웃었고, 그 사람은 울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내겐 기억이 된 시간들에 눈물짓는다. 내 눈물은 말랐다. 참 보고 싶었다. 반가웠다. 그간의 내가 기특했다.

여전히 좋네. 손잡고 싶네. 안고 싶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그대도 그때도 아니다. 그리움은 말랐다. 추억은 기억이 됐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여전히 좋을 뿐. 기억이 된 추억이 다시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다시 추억이 되어야 할까? 쫓고 싶은 기억은 없다. 쫓고 싶은 기억을 만들고 싶다.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을 써내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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