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약할 결심
몸뚱아리
난 일기에 내 몸이라는 표현대신 몸뚱아리라고 썼다. 매일 밤 몰래 숨어서, 씹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입에 넣고 삼켰다.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맛을 느끼고 흡족해하는 대신, 입에 우걱우걱 넣고, 씹고, 삼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울면서 삼켰고, 울면서 삼키는 그 모습을 혐오스러워했다.
작년 10월, 두 번째 연애를 끝냈다. 영양가 없던 연애였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시작했다. 날 좋아해 줬다. 그 사람은 내 호감을 얻으려고 다정했다. 다정함을 취하고 싶어 시작했으나 마음은 커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술에 취해 나에게 토악질 나오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당시엔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 실수를 내세워 이별을 고했다.
영양가 없는 관계를 끝내고는 허탈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람을 원하고 사랑을 원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나를 채찍질하며 운동을 하고 몸을 가꿨을까. 텅 빈 마음이 공허했다. 아마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 입부터 무언갈 채웠을 거다. 처음엔 빵이었는데, 크림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하나에 500칼로리가 넘는 편의점 빵 비닐을 뜯고, 3분도 안되어 해치웠다. 빈 입은 3분 만에 다시 빈 입이 되었다. 그럼 다시 채워 넣었다. 그렇게 채워 넣으면 빈 입엔 수치심만 남았다. 수치심을 비우고자 다시 음식을 넣었다. 음식을 못 참고 먹는 모습이 수치스러워 밤에 가족 몰래 삼켰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많은 양을 소화시키느라 버거운 건지 배가 땡겼다.
폭주기관차 같은 질주를 멈추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어려웠다. 세상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가볍고 쉽게 떠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할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랑할 구석은 객관적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구석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흡족하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고 싶어서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폭식이 있기 이전에 한창 달렸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자신이 참 좋았다. 살아있는 감각. 그만 뛸까? 아냐 조금만 더 뛰자. 매 순간마다 직전의 나를 부정하고 설득하며 흔들리면서도 몸은 끝끝내 달렸었다. 기록, 성과와 무관하게 다 뛰고 땀을 흠뻑 흘려내면, 난 내 젊음과 생명력에, 살아있음에 취하곤 했다. 그 감각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다시 뛰자. 다시 달려보자.
나의 호기는 발목과 함께 꺾였다. 퇴근 후 근처 중랑천 공원에서 한 3km쯤 뛰었을 때인가. 무언가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넘어졌다. 폭식으로 불어버린 체중에 발목이 놀란 건지 그대로 꺾여 아스팔트 도로에 무릎을 갈았다. 정말 어렸을 때 말고 넘어져서 피 흘려본 적이 있던가. 반바지를 입어 노출된 무릎은 그대로 갈렸다. 피가 흘러내려 새하얀 양말을 적셨다. 모든 짐은 직장에 두고 왔었다. 달리기를 다 끝내고 짐을 챙겨 퇴근할 생각이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피 흘리는 무릎을 이끌고 내가 달려온 길을 그대로 걷거나 뛰어 돌아가는 수밖에. 한숨 한번 내쉬고. 걷다 뛰다 돌아갔다. 뛰는 동안 무릎이 흔들리며 피는 더더욱이나 고이지 못하고 튀어 내렸다. 산책하는 이들의 무심함도 지나치고, 놀라거나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지나쳤다.
학교로 돌아왔다.(직장이 학교다) 모두가 퇴근한 불 꺼진 학교. 상처를 치료하고 싶었으나 보건 선생님도 이미 퇴근한 후였다. 돌아오면 해결될 줄 알았으나 피가 멎지 않은 채로 원래의 바지로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에는 돌봄교실이 있다.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하여 방과후나 저녁에도 운영되는 아이 돌봄 프로그램이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돌봄교실은 어두운 복도 불 꺼진 교실 들 사이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선생님께서 계셨다. 아이들은 없었다.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반바지 입고 피 흘리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돌봄 선생님께서는 내 상태를 보고는 깜짝 놀라셨다. 아이들이 워낙 자주 다치는 탓에. 혹은 덕에. 교실마다 응급 키트가 구비되어 있다. 선생님께서는 어쩌다 다쳤냐고 걱정해하시며 소독 스프레이, 연고, 면봉, 반창고 등을 꺼냈다. 소독 스프레이 칙칙. 아직 멎지 않은 피가 투명한 소독약에 섞여 흘러내리면 티슈로 닦아주셨다. 피를 다 닦고 면봉에 하얀 연고를 묻혀, 상처 주변에 발라주셨다. 따갑고 아팠다. 눈물이 났다. 눈물은 따갑고 아픈 상처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이제껏 아프고 힘들 때 혼자 있으려 했다. 그 모든 걸 숨기고 혼자 곱씹고 어느 정도 소화하고 나서야 밖에 다시 섰다. 나도 이렇게 약할 수 있는 사람인데. 약하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사랑받을 수 있는데. 목 끝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 감사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그 감사합니다의 농도는 어느 감사합니다보다도 진했다. 상처를 치료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뿐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온기를 전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온기를 받고 온전히 약해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도 유약해도 됨을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펑펑 울었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나약했다. 돌아와선 동생에게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마음껏 약하고, 마음껏 기댈 거라고. 부탁해 본 적 없고, 기대 본 적 없고, 챙김 받기를 어색해하는 이에겐 이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지 않다. 내가 모자라고 부족함을 드러내는 낯선 부끄러움을 이겨내야 한다.
가족에게 폭식증을 고백했다. 몰래 울면서 먹는다고. 스스로가 너무 싫다고. 그렇게 해서 살쪄버린 몸뚱아리를 견딜 수가 없다고. 어머니께선 내가 무언가 먹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건강한 야채와, 스트링 치즈, 올리브를 올린 샐러드를 해주셨다. 그 양과 빈도는 절대 적지 않아 다이어트를 위한 양이라고 할 수 없었으나,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야채와 함께 나를 신경 써주고 애써주는 마음을 삼켰다. 비정상적이던 식욕은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제자리를 찾아갔다. 2주 동안 발목과 무릎 상처는 거의 나아 다시 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다시금 나의 젊음에 취하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발을 딛고 디뎠다. 나는 여전히 유약하고, 무너지고, 상처받으나 이를 드러낸다. 여전히 낯설고 멋쩍은 일이나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는 나 혼자 서기뿐 아니라 여럿에게 기댈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와 받침목이 될 수 있도록. 혼자와 혼자들이 기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