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일기장을 엿보며
“누나 일기장 내 방에 있다”
”내 일기장이 왜 거기 있어? “
이사 한번 하니 짐이 죄다 섞였는지, 내 방에만 있어야 할 물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동생 손에 들려있는 건 다행히도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이다. 반도 채워지지 않은 일기장은 지금껏 어디에 있었는지 빛바랜 부분 없이 원래 온전한 상태 그대로였다.
새해 첫눈은 새해 이튿날 내렸다. 가랑눈, 싸라기눈, 진눈깨비, 함박눈, 포슬눈 등 눈의 종류야 많지만 우리는 첫눈이라 하면 으레 함박눈이나 못해도 포슬하게 내리는 눈이길 바란다. 모든 처음은 그 무게가 무겁다. 뽀얀 함박눈이 새해 첫날 내리는 새해 첫눈이었으면 좋았겠으나, 새해 첫날이 지나 내리는 눈이어서인지, 눈의 무게는 급격히 가벼워졌을 뿐 아니라 질척이고 아름답지 못했다. 포슬히 떨어져 사뿐히 쌓이다가 뽀득이 밟히는 순수하고 깨끗한 눈 대신 스르르 녹아 자취를 감추고 흙과 섞여 더러워진 물얼음이 되었다. 가랑눈쯤 되었다가 진눈깨비처럼 녹았다.
진눈깨비들을 차박차박 밟고 밟았다. 걸음걸음들이 익숙한 동네 카페로 이끌었다. 평일 낮은 다들 일하러 나갔는지 한갓졌다. 겨울방학이다. 남들은 출근한 와중에 방학 있는 직업의 호사를 누렸다. 조용한 공기에 여유가 맴돌았다. 카페에도 사람이 없었다. 카페에 들고 간 건 새해 일기장과 옛 일기장.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라 낯선 어린이가 들려주는 일화 같았다. 지도하는 학생들 중 한 명이 조잘대는 수다 같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기장을 다시 책꽂이에 꼽는 대신 카페까지 들고 간 건 그 때문이었다. 낯선이가 쓴 책 하나를 읽듯, 오래됐지만 낡지 않은 옛일기를 책처럼 읽으려고 했다. 예전엔 일기 검사가 있었다. 방학숙제로 많이 내주셨는데 도장만 찍어주시는 선생님도 계셨고, 코멘트를 달아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5학년 선생님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27살이던가. 지금 나는 그 나이를 뛰어넘었다. 젊은 남자선생님이 학교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으레 그렇듯, 유쾌하고 유머러스하여 인기가 많았다. 인기가 많았을 이유는 단순히 유머러스해서만은 아니겠다. 카페에서 대충 훑어보며 넘긴 일기장엔 긴 코멘트가 달려 있는 글들이 여럿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돌이켜보면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들 모두에게 일기 코멘트를 달아주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멘트 대신 선생님의 이모저모까지 엿볼 수 있는 문장엔 학생 한 명 한 명을 향한 관심이 담겨 있었다. 진심은 아이들에게 특히나 투명히 전달된다.
“ 선생님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녀. 바쁘고 때론 피곤할 때도 있지만 힘내. 뭔가 심심하고, 게으르고, 멍한 것보다는 시간을 뜻깊게 쓰고, 늘 활동하는 게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들더라. ”
어렸을 땐 이 코멘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내 일기에 무언가 반응을 남겼다는 사실 하나에 기뻐했을 수도 있고, “희경이가 참 바쁜 것 같다”에 주목하여 으쓱해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27살 내 또래가 가지는 고민이 보인다. 심심하고, 게으르고, 멍한 일상을 보내다가 이를 탈피하고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기분을 환기하는 젊은 에너지가 보인다. 퇴근하고 온종일 누워있다가 지루함에 질색해하고, 긴 방학을 기다리면서도 텅 빈 시간을 두려워하다가 떠돌이가 됐을 거다. 소소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떠돌이. 지금 내가 그러하듯.
밖에서 내리던 가랑눈은 어느새 포슬눈이 되었다. 둘 다 가루같이 끊기듯 내리는 건 똑같지만, 진눈깨비마냥 녹아 사라지는 가랑눈 대신 포슬포슬 내리더니 길거리에 하얗게 내려앉아 조금씩 쌓여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선생님의 코멘트는 내가 떠돌고, 살아갈 방식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새해 둘째 날 돌아보는 작년 딱 이맘때엔 지루함과 헛헛함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게으르고 멍하게 시간을 죽이다가 나 자신도 죽어가는 기분이 싫었다. 하루하루 죽어가기보다 살아가고 싶었다. 나의 시간들이 밟히고 질척이다 녹아 사라지기보단, 포슬히 쌓이고 하얗게 뭉쳐지길 바랐다. 귀찮고 때론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이모저모를 떠돌아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내 행복을 찾아. 십수 년 전 젊은 선생님이 그러했듯.
작년 일기장엔 녹지 않고 쌓인 시간의 흔적이 잔뜩 쌓여있다. 작년만치 나를 여행했던 해가 있던가. 작년 겨울방학 오전엔 운동, 점심 먹고 독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매일 비슷한 일상을 한 3주 보내니 지루해서 몸이 뒤틀렸다. 거의 충동적으로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가입자가 다섯 명도 되지 않은 작은 모임이었는데, 그래서 가입했다. 모두 다 같이 어색한 사이일 것 같아서. 낯선 모임에 나가는 길은 떨렸다. 그 심장 두근댐만 생각해 보면 임용 고시 합격 발표 날 때 못지않다. 이건 좀 과장이려나. 누가 나올지, 낯선이 들은 날 환대할지, 책 소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나의 책과 발표가 무시받진 않을지 등을 걱정하며 나간 첫 모임은 예상외로 너무나 즐거웠다. 세 달 뒤 난 독서 모임의 운영진이 되어있었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는,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정형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개발자 한분은 역사에 홀딱 빠져 사료들을 모으는데 온 힘을 쏟았다. 지금껏 음악 인생을 살다가 행복을 찾아 국문학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시는 분도 계셨다. 어떤 분은 노래를 하시다가 베이킹을 하시다가 글을 쓰시며 산다. 각자 더 잘 살아보고자, 행복하게 지내고자,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자 다양하게 살았다. 난 무얼 해도 모나고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난 무얼 해도 되었다. 그리고 아무거나 했다.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면 많이 미루지 않고 다했다.
그중 하나로 수영도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수영을 했는데 그 처음을 더듬어 보자면 초등학생 때다. 좀 전의 그 코멘트는 수영장 갔던 날 일기에 적어주셨다. 동생과 나는 각자 친구를 꼬셔서 수영장에 가기로 했댔다. 학교에 가서 애들한테 같이 수영장을 가자고 말했지만 다들 바쁜 것 같다고 적었다. 나는 아무 친구도 데려오지 못했는데 동생은 태우를 끌고 왔다고 적었다. 감정에 대해 적지 않았음에도 문장 하나하나에서 제안에 응하지 않은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 친구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 하는 불안함, 친구를 데리고 온 동생과 비교되는 위축감이 같이 느껴졌다. 아예 터무니없는 불안은 아니었다. 나는 친구 무리에 쏙 껴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였다. 당시엔 애써 외면했겠지만.
지금도 반에 들어가면 행동이 못돼먹거나 마음이 나쁘지 않은데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아이들이 있다. 왕따는 아닌데 무리 속에 깊이 속하지는 못한다 해야 하나.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모범생에 가깝다. 교과서적인 말과 행동이 오히려 어설프고 부자연스러워 친구들의 눈총을 산다. 나쁜 행동이 아니니 친구들도 대놓고 따돌리거나 하진 못하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나는 그런 초등학생이었다. 친구가 아예 없진 않았지만, 항상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세 명이 어울리면 절친 같은 두 명 뒤에 따라가는 꼬랑지 같은 한 명. 놀이기구도 탈라치면 자연스레 혼자 타게 되는 한 명. 겉도는 자체도 서러웠겠지만 무리에 끼지 못하는 모습을 불쌍하게 볼까봐, 무언가 모자란 사람으로 볼까봐. 안 그런 척 스스로도 속였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버리면 우정 결속력은 약해지고 느슨한 무리만 여럿 생겨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난 지금 잘 살고 있다.
일기장은 반도 채워지지 않았기에 글은 금방 읽었다. 눈은 여전히 조용히 내린다. 길엔 하얗게 얹었는데, 눈은 곧 그칠 것 같다. 첫눈은 그 해 겨울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말한다는데, 이 눈은 첫눈이 맞을까? 아직 오지 않은 겨울에 처음 내릴 눈이 첫눈이 되는 것일까? 매년 첫눈들이 내린다. 모든 처음은 참 그 무게가 무겁다. 옛 일기를 다 읽고는 새해 첫 일기를 적는다. 매년 첫 일기들이 모여 벌써 십수 년 치가 쌓였다. 12살 썼던 일기는 명맥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적힌 무수한 처음들. 무겁게 적혔다 가벼이 홀씨처럼 흩날아버린데도 차곡차곡 흔적을 남기고 쌓일테지. 나는 눈처럼 살 테다. 포슬포슬 쌓였다가 스르르 녹았다가 내년 겨울이 되어 또다시 내리고. 그렇게 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