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by 글희

중심을 잃어간다. 피곤함에 뭉근하게 절여진다.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를 뭐로 채워야할지 모르겠다. 허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제일 단순한 행복은 먹는거여서 저녁을 다 먹고도 간식거리를 찾았다. 폭식증을 앓았기에 이후엔 폭식이 도지지 않을지 예의주시한다. 간식을 찾고 끊임없이 입에 넣으면서도,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건강한 재료들로 간식을 만든다. 콩을 구워삶는다든지 무설탕 요거트에 견과류를 섞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시중에 파는 혈당 높이는 과자를 먹는거보다야 낫겠지만 끊임없이 먹으며 배가 묵직하게 차면, 잠들기 전 기분이 나빠진다. 비워내야할 걸 비워내지 못했다. 기어코 가벼워지지 못했다. 배에 들어찬 감정은 잼처럼 졸여지고 끈적히 무거워졌다.


원래면 이럴때마다 동생을 불러내 하소연을 했다. 폭식증이 생겼을 때 날 구원해준게 동생이었다. 동생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날 구원했다. 언젠가 난 망부석같은 동생에게 나의 수치와 공허, 망가져버린 몸과 그로 인한 혐오감을 쏟아냈었고, 나도 챙김받고 사랑받을거라며 엉엉 울었다.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얘기를 들어주곤, 다음날 카카오톡으로 올리브영 기프트카드를 보내며 ‘힘내’ 무뚝뚝하게 한마디 보내는 동생이었다. 얼마나 딱딱한지 우리 사이엔 그 흔한 ‘ㅋㅋㅋ’도 ‘ㅠㅠㅠ’도 흔치 않았다. 그 무뚝뚝한 아이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는다. 모든 뒤엉킨 감정을 다 털어내도, 날 한심하게 보지 않고 ‘그런가보다’ 하는 아이. 만원짜리 상품권보다 다음날에도 나에게 관심 써주는 존재에 고마운거다.


동생 방은 바로 옆방인데도 문을 닫고 있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면 똑같이 뚱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했다. 카페 갈래? 그네 탈래? 편의점 갈래? 그 말들에서 우리는 공허감과 답답함에 몸서리치는 서로를 알아챘다. 문이 닫혀있어도 든든했다. 마음껏 절여지고 납작해져도 되었다. 문 몇번 두들기고 산책 좀 하고나면. 그렇게 며칠을 버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살아갈 이유에 대해 묻지 않으면서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기대며 사람 인(人)자가 왜 사람 둘이 기대있는 모양인지 이해했다. 각자가 짊어지는 무의미의 무게를 애처로워하고 안쓰러워하며 아끼고 살아가는거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런 모양이구나. 서로에게 기대고 위로받고 버티고. 그러다 가끔 행복하고 흐드러지게 웃고. 그렇게 한 세상 사는거구나 했다.


동생은 함께하던 집을 떠났다. 우리는 아직 젊어서 짊어져야 할 건 무의미나 공허감만이 아니었다. 취업이라느니 결혼이라느니 현실에 만져지는 변화를 일궈야했다. 문이 닫혀 있어도 동생이 방에 있는지 없는지 알았다. 동생은 방에 없다. 그전에도 동생은 방에서 소리 없이 조용했는데, 빈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면 그 고요함이 귀에 띈다. 사람은 잃고 나야 그 존재를 뉘우친다. 잘 잤어? 오늘 뭐해? 는 입에서 입으로 오고가지 못하고 손에서 손으로 가끔씩 오고 갔다.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카톡창만 반짝였다.


동생은 항상 나보다 어리기에 어리기만 한 줄 알았다. 혼자 아무것도 못하는 꼬꼬마인 줄 알았더니. 어느덧 스물여섯 동생은 제 인생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수많은 '해야한다-'들에 짓눌리면서도 하루 하루의 압박을 뚫어내고 있었다. 정작 내가 언젠가 일궈야할 것들을 생각하면 갑갑하긴 해도 안쓰럽진 않은데, 동생 녀석을 보면 그게 참 안쓰러운거다. 이제는 힘들다고 서로를 불러낼 수 없다. 하지만 몸이 멀어진다고 가족이 가족이 아니더냐. 애가 써지고 측은하게 여겨지는 마음은 멀어진 거리만큼 더해졌다.


나는 너가 힘들어도 외롭진 않았으면 좋겠어. 한 세상을 홀로 견뎌야만 한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아있는 행복에 취하기도 했음 좋겠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나는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말로 글로 듣겠다. 희소식이든 비소식이든 내가 다 들어줄테니 걱정말고 털어놔라. 너를 궁금해하는 사람 항상 여기에 있다. 내가 남들에게 못보이는 모습을 털어내고 기댔듯, 사람 사는 모양 그대로 내가 너에게 기대어 주겠다. 함께 뉘이고 기대고 서로를 받쳐주고.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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