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훔쳐간 것은
어떤 상황이 더 기분 나쁠까.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해보자. 첫 번째 도둑은 집을 난장판으로 쳐놓았다. 서랍은 열려있고, 물건은 나뒹군다. 침입자가 들었음이 분명한 상황. 심장이 벌렁거린다. 두 번째 도둑은 아주 은밀했다. 침입 흔적조차 없어 매일과 같이 평범했다. 이 두 번째 도둑은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들어와 조금씩 훔쳐내 갔다. 매일같이 조용히 찾아와 야금야금 훔쳐간 양이 마침내 첫 번째 도둑과 같아졌을 때, 비로소 도둑질을 눈치챘다고 하자. 두 도둑 모두 같은 종류의 물건들을 같은 양만큼 훔쳤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도둑은 빨리 알아차렸고 수습해야 할 어지럽혀진 방이 남았다는 것, 두 번째 도둑은 아주 늦게 알아차렸겠으나 방은 평상시와 똑같아 수습할 거리는 없다는 점이겠다. 어떤 상황이 더 기분 나쁠까.
나는 두 번째 도둑이 더 기분 나쁘다. 첫 번째 도둑에겐 손에 만져지는 실물만을 빼앗겼다면, 음흉하게 침투한 두 번째 도둑에겐 내 일상까지 빼앗긴 느낌이 든다. 창피하고 당혹스러워. 평범한 일상의 낯낯을 들켰고 사생활이라고 불릴만한 무언가가 탄로 났으며, 그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동안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점에서 나는 완벽한 호구가 되어버렸다. 내가 느낀 수치심은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있다. 값진 것들을 가져가는 동안 나는 가져갔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그 값진 것들에 무심했고, 무관심했고, 소홀했다. 소중히 대해야 하는 것을 소중히 대하고 있지 않은 나의 민낯을 들켜버렸다.
우리는 도둑 하면 으레 첫 번째 도둑을 떠올린다. 두 번째 도둑처럼 사적인 공간에 은밀하게 침투해서 훔쳐내 가는 일을 반복할 멍청이는 많지 않다.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티 나지 않게 무엇을 훔쳐갈지 심려하는 일엔 시간이 많이 든다. 두 번째 도둑처럼 도둑질을 반복했다간 현실에선 금방 들통이 날 거다. 그래서 두 번째 도둑질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두 번째 도둑질은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훔쳐가는 게 물건이 아닐 뿐이다.
지난달인가 나는 미용실에 갔었다. 1시로 예약했었다. 바람난 숟가락질로 부리나케 점심을 해치우고, 겨우 예약시간에 맞췄다. 고급진 곳이다. 샴푸를 하러 가거나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이동하겠습니다” 응대해주고, 물온도는 맞는지 불편한덴 없는지 물어보신다. 시그니처 커피, 아메리카노, 녹차 등이 무료고 쿠키나 사탕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대접받는 시간. 머리를 하는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인스타를 보거나 전자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펌이 모두 끝날 때까지 난 그곳에 있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시간을 마음껏 죽였다.
시간을 죽이는 동안 머리를 끝내니 4시가 다됐다. 놀랐다. 머리 하는데 걸릴 시간을 미리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 예상을 했었더라도 그보단 짧게 예상했을 거다. 몰아치는 바람에 간간이 섞여있는 빗방울을 가르고 겨우겨우 버스를 타 집에 돌아왔다. 5시였다. 내 오후는 어디 갔지? 이미 사라진 오후는 멈출 줄 모르고 저버렸다. 생각보다 길어진 외출에 안마 의자에 털썩 앉아 티비 예능을 하나 틀어두었다. 화면만 하염없이 보는 사이 저녁해는 저버렸다. 아직은 낮이라고 거실 불을 켜지 않았더니만, 티비 화면만 밝게 빛나는 어둠이 금세 거실을 덮었다.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새어나간 시간.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 하루 종일 깨닫지 못하다가 날이 다 저물어서야 마침내 상실을 알았다. 내 시간은 어디 갔냐는 말이다. 이게 도둑질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시간을 도둑질당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 시간은 손에 쥔 모래처럼 새어나갔고, 나는 시간이 넉넉하다는 사치를 부리다가 무관심을 된통 들켜버렸다. 시간을 푸지게 써버리고 살펴보지 않았음이 모조리 까발려져 버렸다.
시간 도둑질은 은밀하다. 당하는 중인 줄도 모르다가 뒤늦게야 알아챈다. 두 번째 도둑이 첫 번째 도둑보다 기분 나쁜 이유는 알아채지 못했음에 있다. 언제 또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기 때문도 있지만, 긴 시간 훔침질을 눈치도 못 챘을 만큼 소중해야 했던 것들에 소홀했음이 들통나 바보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 도둑은 두 번째 이유를 특히 충족한다. 더욱더 화가 나는 건 화를 담금질할 대상도 없이 시간 도둑의 범인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런 자각 없이 미용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안마의자에 앉아 티브이에 눈을 고정했다. 내 스스로가 시간을 도둑질하는 동안 내 혼을 쏙 빼놓는 일이야 현대에 널렸다. 새로고침 한 번으로 무한 생성되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 틀어두기만 하면 다음 회차가 저절로 재생되는 ott와 다양한 영상 컨텐츠. 하지만 그걸 튼 게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그 앞에 앉아있겠다고 결정 내린 게 누군가. 나 자신이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런데 시간은 과연 내 것일까. 도둑질은 내 것을 내 허락 없이 침범하고 가져갔을 때 성립한다. 훔쳐진 시간은 과연 내 시간이었을까. 애초에 내 허락 없이 가져갈 수 있는 대상이었을까. 시간을 도둑맞았을 때 겪는 무력감과 억울함 답답함은, 내 삶을 내가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을 바로 봤을 때 받는 부끄러움에 가깝다. 내 삶을 똑바로 직시하고, 내 삶에 주어진 시간을 인지하고, 그 목적을 생각했다면. 똑같은 유튜브, 쇼츠, 인스타가 그만치 허탈하고 공허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간은 내가 내 마음대로 당기고 멈출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삶을 걸고 시간을 빌린다. 빌려놓고 허투루 사용하고 하찮게 낭비했으니 허탈할 수밖에. 빌리는 데 사용한 건 소중한 나의 젊음이고 나의 삶인걸. 무력하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동안, 손 놓아버린 내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주 까먹겠지만 잊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