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키로를 뛴다. 뛰기로 했다. 날이 풀렸기 때문이다. 매해 봄이나 가을쯤 되면 뛰고 싶어진다. 15분. 그러니까 한 2~3키로 쯤을 겨우 뛰고 헉헉대던걸 40분까지 늘려준 게 이별이었다. 헤어지고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이 악물고 뛰었다. 40분을 쉬지 않고 뛰어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 영역을 해내었다. 그 이후로도 내가 무너질 것 같은 즈음이 되면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을 내구르며 땀방울 방울을 모두 흘려낸다. 숨을 헉헉거리며 찌꺼기까지 들숨 날숨에 모두 내쉰다. 그러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에 취했고 해내었다는 흡족함에 공허감이나 우울감을 잊어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겨울이 유독 길었다. 추운 날 달리기는 옷이 두껍고 무거워 걸리적거린다. 게다가 얼음 낀 냉기를 헉헉대며 들이마시면 폐가 어는 듯 고통스럽다. 봄이 코 앞이다. 날이 풀렸다. 이젠 다시 뛸 때다. 혹여나 겨울 사이 자리 잡은 게으름에 뛰기를 미룰까 봐 10km 마라톤도 신청해 놨다. 오늘은 가상 마라톤 훈련 날로, 10km 거리를 실제 마라톤 때처럼 뛰어보는 날이다.
하늘이 구름 하나 없어 맑다. 동시에 흐릿하다. 청명한 푸른빛 대신 얼음 안개가 낀듯한 흐릿한 잿빛 푸른색이다. 하지만 햇살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벽돌색 길에 내리 떨어져 온 길을 비춘다. 햇빛이 닿는 곳마다 미세하게 반짝인다. 온 세상이 반짝인다. 마라톤을 도와줄 노래를 골라 재생목록에 담아두었다. 흥겹고 당차고 힘이 나는 노래를 고심해 선별했다. 대부분 어렸을 때 들었던 애니메이션 노래다. 재생버튼을 눌러 헤드셋에서 나오는 노래 세상에 날 가두고, 준비운동을 한다.
발을 내딛는다. 10키로의 시작이 되는 발이다. 처음 속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다 내 몸이 가장 자연스레 뛸 수 있는 속도에 맞춘다. 너무 빠르면 후에 힘이 떨어질 것이고, 너무 느리면 시간이 길어져 지루해질 것이다. 처음 몇 발은 몸이 너무 무겁다. 아직은 느릿느릿한 시간에 익숙한 몸뚱아리가 뛰는데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2~3키로까지는 몸을 달래는 시간이다. 아직도 2키로야? 이거에 다섯 배를 뛰어야 하는 거야? 아 그냥 오늘은 5키로까지만 뛸까. 아냐 이렇게 실패해서 마라톤에서 10키로는 어떻게 뛰겠어. 순간순간의 내가 직전의 나를 응원하고 배반하기를 반복한다. 생각과 생각, 포기와 결심이 머릿속에서 얽히고설키는 동안 내 몸은 얼렁뚱땅 3키로를 뛰어낸다. 그러면 그제서야 몸은 달리기에 익숙해진다.
그때쯤이 되면 내 몸에 닿는 모든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전에도 느꼈을 감각에 집중하게 되는 것에 가까울까.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내가 공기 사이를 가르고 지르며 공기의 온도와 무게감을 받아낸다. 아직 봄이 미처 오지 않아 공기 중엔 쌀쌀함이 감돌았다. 춥진 않다. 이 공기는 더 이상 폐를 얼게 하지 않는다. 피부에 내가 만들어낸 바람이 와닿는 동안 얼굴 끝까지 올라온 열감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그런다고 시원해지지는 않지만.
바람은 왜 항상 앞에서 뒤로 부는 것일까. 뒤에서 날 밀어주고 끌어준다면 좋으련만. 바람이 한번 세차게 불면 꼭 앞에서 날 밀어내듯이 불어버린다. 난 바람까지 가르며 그 무게를 사이 질러 뚫어야 한다. 헤드셋 틈 사이로 바람이 세어 불면, 좁은 틈 사이를 지나는 동안 바람 소리가 더 거세어져 노랫소리가 묻혀버린다. 두 다리는 뛰어내고 있고, 두 팔은 흔들리고 있기에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노래를 들으려면 별 수 없다. 멈출 순 없기 때문이다.
6~7키로 쯤을 뛰는 동안 몸이 가벼워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한다. 눈은 편안하게 주변을 살피지만 내 몸은 여유를 느낄 새가 없다. 땀이 흘러내려 입가에 닿으면 짭쪼름한 맛에 입을 달싹인다. 손등으로 입가 땀을 훔쳐내고 콧등과 볼 사이 흘러내리는 땀을 손날로 닦는다. 이제 슬슬 남은 거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은 한강에 다다랐다. 강물폭과 시야가 확 트인다.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드넓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 스스로가 참 작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 작음은 나를 보잘것없이 만드는 의기소침함과는 멀다. 나는 대 자연의 일부이고 온 세상 중 하나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도 자연스럽다는 가벼움이다. 코로 이끼냄새를 찾는다. 한강변에 가면 이끼 냄새가 숨어있다. 이끼에서 온 냄새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딘가 축축한 초록빛이 떠오르는 그 냄새를 나는 이끼 냄새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번에 뛰는 동안은 바람에 날아갔는지, 내가 뛰는 동안 냄새가 코에 들어올 새도 없었는지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그곳에서 나는 냄새라 생각했는데 어디 갔을까.
8키로에 접어들면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노래야 들리겠지. 가사를 음미하고 집중하고 힘을 받고 하지 못한다. 얼마 남은 거야. 얼마 더 뛰어야 해. 온통 그 생각뿐이다. 심장이 뜨거워진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비유 대신 현실로 느낀다. 심장의 위치와 온도감이 느껴진다. 얼굴은 열감에 뜨거워진다. 처음엔 가벼웠던 500미터도 멀게만 느껴진다. 500미터만 더 뛰어내면 되는데.
그리고 난 10키로를 모두 뛰어냈다. 1시간 2분에 걸친 달리기였다. 온 감각을 동원해서 1시간을 모두 느껴내고 나면 살아있다는 만족감과 내 몸을 내가 온통 통제했다는 성취감에 취하게 된다. 또 달리고 싶을 때가 오겠지. 무게를 버틴 발목을 이끌고 터덜 터덜 출발점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봄 냄새를 맡는다. 오늘도 난 살았다. 온 생명을 다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