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날씨를 탄다. 날이 흐리면 마음도 흐리멍텅하고, 날이 맑으면 마음도 갠다. 달라진 상황이 하나 없는데 날씨에 따라 기분 달라짐을 보며, 난 영락없이 육체에 갇혀있고 인간 뿌리는 결국 동물이구나 한다. 추상과 이성 세계에서 인간다움을 찾아도, 인간은 결국 감각과 물성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족쇄같기도 하지만 어쩔땐 선물이다. 난 왜 이런 단순한데에서 행복을 느끼지? 의미를 머리굴려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뿌리는 물성이고, 육체니까.
저번 금요일인가. 날이 참 화창했다. 햇빛은 나뭇잎 사이사이를 투과해 땅으로 떨어지고, 나뭇잎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벽돌 바닥길엔 나뭇잎 그림자가 바람이 불때마다 제들끼리 붙었다 떨어졌다. 스-스-스-스-쉬하며 여리게 바스락댄다. 나뭇잎이 흔들거릴 때마다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나뭇잎 틈사이를 지난 햇빛은 벽돌길 위에서, 윤슬처럼 요리 빛났다가 조리 빛났다가. 하늘은 구름 없이 선명히 푸르렀다. 빛을 받아 조금 투명해진걸까. 아직 진하게 익지 않은 초록빛이 하늘 앞에서 또렷했다. 여름방학이 날씨라면. 여름방학같은 날씨다. 덜 여문 생기가 찬란히 빛났다. 빛과 바람과 하늘과 초록이 함께 숨 쉰다. 그 속에 있으면 나도 함께 숨 쉰다. 모든게 또렷하다. 상쾌하고 개운하여 나마저 빛난다.
구름이 문젠가?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린 날엔 똑같은 장면도 흐릿하게 보인다. 분명 햇빛 아래에서 선명했던 윤곽이 뭉개진다. 똑같은 장면인데 찬란함은 사라지고 그냥 그저 그런 배경. 나 자신도 축 가라앉는다. 맑은 날 상쾌했던 마음은, 하늘이 흐린것만으로도, 습해서 무거운 마음이 되어버린다. 지난 화요일이 그랬다. 분명 오전인데도 비가 올 것같이 어둡고, 바닥은 비가 왔던 것인지 약간 젖어있는 듯하고. 출근하고 영 의욕이 없어 겨우 커피만 타와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업무포털을 열고 공문을 확인만 하며, 일해야지 일해야지 유야무야 의욕을 준비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가 울적하다는 카톡이 어찌나 반갑던지. 날씨를 타는 사람은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었다. 오늘따라 축 처지고 울적하다- 몸이 찌뿌둥하다- 시시콜콜한 감상을 나누는 카톡창만이 내게 또렷했다. 창문 물걸레 지나간 자리 그대로 남은 먼지자국같은 날씨. 찝찝하여 벗어나고 싶은데, 먼지색 하늘이 너무나 드넓어 벗어날 구멍이 없었다.
물을 잔뜩 먹어 무거운 걸레. 그런 무거운 걸레가 마음 아래 매달려, 마음을 계속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린다. 하지만 흐린날도 얼마나 많았겠어. 수 날을 흐리게 지내니 그래도 노하우가 생긴달까. 깨끗하게 빨아 햇볕에 빠싹 말린 약간 누런 면보. 그 면보의 보송보송함까지는 못되어도, 차분하게 블루함을 즐기는 루틴이 생겼다. 흐린 날엔 평소에 흘려버리는 감각에 더 집중한다. 평소엔 들이키기만 중요했던 커피의 향을 괜히 맡아본다. 원두향이 산뜻하고 향긋하다. 커피를 삼켜 바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대신, 입안에 잠시 머금고 있으면, 마시기 행위에 밀려 놓치고 있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느껴야 내가 마시고 있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정말 커피구나 싶어진다. 매번 익숙한 맛이 괜히 신선해진다.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무겁게 가라앉으려던 마음도 다시 산뜻해진다. 찬란한 날의 산뜻함과는 다르지만, 주변을 섬세히 느끼게 하는 차분함의 매력이 있다.
오늘의 날씨는 어떠려나. 날이 흐리면 마음도 흐리멍텅하고, 날이 맑으면 마음도 갠다. 달라진 상황이 하나 없는데 날씨에 따라 기분 달라짐을 보며, 난 영락없이 육체에 갇혀있고 인간 뿌리는 결국 동물이구나 한다. 물성과 추상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에서 만족하는가- 어떻게 해야 그 지점에 찾아가는가- 성숙함은 이 중간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을까. 난 날씨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