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by 글희

" 여러분, 안녕하세요! 상담 선생님입니다. 여러분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 어떤 수업 할 거 같아요? 자 바로, 오늘 할 수업 주제는!?!?


두두두두두둥


비밀입니다! 오늘은 대신 이 활동지를 먼저 해볼거에요. 여러분, 여러분 지금 눈을 감고 내가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세요. 사실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혹은 물건이어도 괜찮아요. 대신 조금 좋아하고, 요즘 잠깐 관심 가는 그런 사람이면 안됩니다. 누구보다 제 1순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그런 대상을 떠올렸다면 아래 체크리스트에서 해당 되는 내용에 전부 체크해 보세요. "


ㅁ 나는 이 대상이 너무 소중하다

ㅁ 나는 이 대상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ㅁ 나는 이 대상의 단점이 무엇인지 또한 알고 있다

ㅁ 나는 이 대상의 단점이 이 대상을 좋아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ㅁ 나는 이 대상이 최고의 상태(건강, 마음 등)이길 바라며 현재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다

ㅁ 나는 이 대상이 기분이 나쁘거나 상태가 안좋아보이면 걱정되고 위해주고 싶다

ㅁ 나는 이 대상에게 필요한게 있다면 그걸 주고 싶다

ㅁ 나는 이 대상에게 좋은걸 보여주고 좋은걸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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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리스트를 체크하게 하면 아이들은 10개 중 대부분을 체크한다. 보통은 가족이나 친구, 반려동물을 적는데 간혹 가다 정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자기가 오래 키워온 게임 캐릭터를 적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문항이 자신의 대상엔 적절하지 않을때가 있다. 그러면 의미만 통하도록 문항을 살짝 수정해준다. 그러고나면 대부분 10개 중 8-9개 이상을 체크한다.


" 자 여러분, 그럼 여러분이 1번에 쓴 가장 소중한 대상. 그 대상 자리를 ‘나’ 로 바꿔보세요. 여러분은 나 자신에게 여러분이 체크한 행동들을 하고 있나요? 자 오늘 수업 주제를 공개합니다. 오늘 수업 주제는 바로


‘자아 존중감’ 입니다. "


자아존중감은 학자마다 여러 뜻으로 정의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이 명확하고 뻔해보이는 정의에는 구체성이 빠져있다. 나를 존중하고 위하는 모습이 대체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이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존중의 대상을 ‘나’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 돌려본다. 이미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아이들은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기에 그 모습이 훨씬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하며,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 나 자신에겐 어떠한가. 때묻지 않은 초등학생 아이들이어도 고학년 쯤 되면 스스로에겐 이렇게 하지 못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수업은 자아존중감이 높으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자아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지로 흘러가고 그 중에서 하나를 연습해보며 마무리된다. 성인이 보면 뻔해보일 수 있는 흐름이어도 아이들에겐 나름 반전과 충격을 주고, 활동 자체도 타 교과목에 비해 재밌을 수 밖에 없어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음! 오늘도 아이들에게 한 건 했군! 의기양양해하며 상담실로 돌아간다.


최근 <욕구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거식증을 겪은 작가는 본인의 경험과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써내려간다. 지금 글에서 페미니즘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내 개인적 감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위로를 받았던 점은 자기 혐오, 특히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가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이었다. 책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문장으로 자기 몸 부정, 식욕 통제와 통제 불능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보편 사회 현상으로써가 아니라 개인 삶의 목소리로써 그들이 얼마나 나와 닮아있는지를 보았다. 음식을 볼 때 마다 저건 몇 칼로리겠지, 운동을 얼마해야겠지 계산하는 습관은 비단 나만의 습관이 아니었다. 재작년 무리한 다이어트의 결과로 운동강박과 숫자 강박을 얻었다. 총 칼로리와 단백질 그람수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내가 소모한 활동 칼로리가 얼마인지 유지 칼로리 아래를 웃도는지 어떤지를 확인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어선 안되는 음식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었다. 삶을 좀먹는 습관이다. 맛있는 음식과 음식을 나눠야하는 약속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눈 앞에 먹을걸 두고도, 즐거운 대화를 앞에 두고도, 난 속으로 칼로리를 계산하며 통제하고 인내해야 했다. 한번 무너지니 생긴 폭식증. 폭식을 한번 앓고 나니,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순 없다 생각하며 적당히 건강한 식습관과 느슨한 운동으로 돌렸다. 숫자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일부러 체중을 재지 않고, 먹고 싶은걸 다 먹어보는 연습의 결과는 스스로를 굉장히 깎아 먹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예전과는 다른 몸과 얼굴. 거울을 보기가 싫다. 넌 대체 요즘 왜 이래? 진짜 별로다. 예전의 난 어디간거야? 내뱉어지지 않는 혼잣말이 입 속에서 맴돈다.


내 몸이 ‘몸’이 아니라 ‘몸뚱아리’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당장 10년 전 일기만 봐도 그런 내용이 적혀있다. 나 스스로를 물질로 소외시키는 습관은 하루아침의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무니와 함께 나누니, 너는 거울 속 너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냐고 되물으셨다. 아니. 절대 할 수 없지. 날을 갈아 상처를 내리꼽는 문장들을 어떻게 면전에 꽂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난 실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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