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카페의 기준

by 글희

커피도 좋아하지만, 카페 공간도 좋아한다. 테이크아웃이 1000원 더 저렴해도, 굳이 굳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일종의 '쉼' 의식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대단히 엄청난 걸 하진 못한다.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글 한편 쓰는 것까지가 목표지만 보통은 그 셋 중 하나만 성공하고, 유튜브를 보다 시간을 다 쓴다. 그럼에도 창가에 앉아 시간을 여유로이 부리고 있자면 마음이 안정된다. 항상 가는 단골 카페가 있다. 매번 앉는 자리에 앉아 창 너머의 녹음을 바라본다. 계절에 따라 앙상했던 가지에 춘유록빛이 살랑인다. 그러다가 짙은 녹음이 깔리고, 바삭하게 익고 가벼워지고, 다시 앙상해진다. 잎이 떨어질 때 즈음이면 하얀 테이블에 초록 빨강 체크무늬 식탁보가 깔린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한 곳에서 온 계절을 다 같이 보내는 동안, 나는 그 자리를 지키고 내 일상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 카페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코지하고 감성적인 우드톤 카페, 심플하고 감각적인 힙한 카페, 아쉽지만 가끔 친구들 만나 사진 찍을 때나 찾지, 내 단골 카페는 될 수 없다. 힘이 잔뜩 들어간 예쁜 공간에선 내 모습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맨투맨, 추리닝에 슬리퍼나 운동화 끌고 모자 푹 눌러쓴 내 초라함이 도드라진다. 분명 편안했던 옷가지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어째? 난 몸에도 마음에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집 근처에 그런 카페가 있지도 않다.

단골 카페가 되기 위해 첫번째론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걸어서 10분 이내! 그게 내 기준이다. 주로 주말 오전에 카페를 간다. 그 시간에 대중교통을 탈 만큼 내 몰골이 멀쩡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가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든다. 한두 번이야 기분전환으로 찾겠지만, 단골이 되기가 어렵다. 제기동에서 자취할 때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이디야에 갔고, 학교 앞에서 자취할 땐 걸어서 1분 거리 빅베어브레드를 자주 갔다. 최근 2년 간 단골이 된 카페는 아파트 상가에 새로운 터줏대감 마냥 박혀있다. 사장님 마음 가는 대로 디저트를 만드시고 내놓으신다. 사람 사는 맛이 정겹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디저트가 나와있을지, 내가 먹고픈 건 팔고 있을지 항상 궁금하다. 이사를 갔음에도 카페가 많이 멀어지지 않아 이전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한다. 토요일 오전은 내 자리엔 항상 에그타르트와 아메리카노가 차려져 있다.

두 번째로는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개방 공간인 카페에서 사생활을 찾는 게 웬 말이냐 할 수 있겠지만 별거 아니다. 사람이 적고, 카운터와 거리감이 있을 것.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에 있는 게 카페다. 사람을 만나고 싶고, 군중 안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내 존재는 숨기고 싶다. 그래서 단골이 되는 카페는 대부분 사람이 적고 숨을 곳이 있다. 카운터와 층이 나눠져 있거나, 공간이 좁아도 ㄱ자로 꺾여있어 카운터가 보이지 않는다. 빅 베어브레드가 여기 해당했다. 작은 카페지만 자리에 앉으면 카운터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아까 말한 요즘의 단골 카페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일자 공간이지만, 카운터의 시선은 벽을 향하지 테이블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거지가 편하고 자유롭다.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데, 시선에서 자유로운 것만으로도 마음이 괜스레 편안하다.

이 두 조건만 만족하면 난 언제든 자유롭게 카페를 들락거리며 주말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아쉬운걸. 애정이 안 간다 해야 하나? 마지막 추가 조건은 인정이다. 인정이요? 認定 말고 人情. 따뜻함, 인간다움, 정겨움 이런 것들이랄까. 아무래도 일하시는 분들의 친절함과 서로를 알아보는 유대정도가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단골이 되는 카페들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랜 기간 찾았기 때문에 사장님께서 날 알아보시는 경우가 많았다. 자주 온다는 걸 알아봐 주시고, 가끔은 쿠키를 얹어주신다거나 더 챙겨주시면 그 작은 관심에 괜히 정감이 간다. 소소한 따뜻함을 나누는 게 좋다. 지금의 단골 카페 사장님은 얼마나 인심이 좋으시던지, 최근엔 3500원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는데 브런치 세트메뉴처럼 소금빵 샌드위치를 서비스로 주셨다. 그 외에도 수건 케이크, 과일 모찌, 수제 젤리 등 그날 시범적으로 만든 메뉴들을 서비스로 얹혀주시기도 하고, 신 메뉴 개발 중이라며 직접 담근 딸기청으로 에이드, 라떼를 만들어 컵 째 주시기도 하셨다. 내가 그 카페에서 쓴 금액도 상당하지만,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신 것들만 모아도 아주 상당하리라. 그중에선 정식 메뉴가 되지 못하고, 잠깐 한시적으로 팔거나 사라진 메뉴도 참 많았는데 그럴 때면 그 맛있는 메뉴를 시키지 못하는 게 아쉬우면서도 카페의 속속들이를 내가 알고 있다는 점에 으쓱해지기도 한다.

어제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의외로 에그타르트 대신 스콘을 시킨 예외적인 날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단골 카페에 애정을 느끼는 건, 커피의 맛이나 공간의 편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작은 나눔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정해진 공간에서 익숙한 시간을 보내는 안정감을 좋아한다. 속하고 싶지만 드러나고 싶지 않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나를 숨길 수 있는 곳을 항상 찾는다. 그런 공간에서 인정까지 느낀다면 완전히 빠져버리는 거다. 다음주 주말에도 카페에 있겠지. 주말 오전에 날 찾고 싶다면 카페에 가면 된다. 그곳에 지박령처럼 붙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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