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에 갇혔다. 입이 가장 먼저 심심해진다. 나는 와그작 와그작 씹히는 음식으로 구멍을 채운다. 그러나 배부르기도 전에 다시 허기가 밀려온다. 허기는 위장에서 오지 않고, 삶에서 왔다.
삶은 방 한 칸에서의 하루와 닮았다. 세상을 걸으며 방을 채운다. 처음엔 모든게 새롭다. 그래서 즐겁다. 어느정도 방이 차면 방에는 내 냄새가 밴다. 해낙낙하다. 내 방과 똑! 같은 방은 세상에 없으리라.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조금씩, 방 채우기는 무얼 위한 행위인지 의문스럽다. 씨앗은 스스로 꽃을 틔운다. 일단 땅에 심겨지고 나면, 정해진 순리를 따라 자란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방에 심겼고, ‘방을 채워야겠다, 그러고 싶다’는 욕망도 우리 속에 함께 심겼다. 욕망을 피워내는 것이 정해진 순리가 된다. 이유도 모른 채 방을 열심히 채우다가 문득 목적 없는 행위에 의문을 갖는다. 이때부터 방꾸미기는 무력해진다. 난 사실 방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방 한켠을 훑어본다. 나쁘지 않다. 너저분하지만 없을 건 없다. 굳이 더 채워야 할까? 차곡차곡 정리해야 할까? 허기가 진다. 참 따분하다. 대단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가만히 누워 있지만, 내 방 전체가 흔들리고, 깜짝 놀라 난 저절로 일으켜지고, 방을 왜 꾸며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방을 재건하고 싶다. 혹시 기다리다보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가만히 기다려봐도 아무 일도 없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 세상은 그대로다. 밀려오는 허기는 방의 허기다. 위장을 채워 허기를 잠재우면 나아질까. 아무리 음식을 씹고 삼켜도 방의 허기는 그대로다. 그러니 곧장 배고파질 수밖에.
방을 나가면 다를까. 이미 발견한 세상은 지루하고, 발견하지 않은 세상엔 기대가 없다. 울부짖을 뿐이다. 자유로운 듯 제자리만 맴도는 방에서. 난 더 펼쳐내고 떨쳐내고 싶다고. 울부짖음은 난잡해서, 쉽사리 활자로 옮겨지지 않는다. 글이나 써볼까. 내 울부짖음을 알아달라고 편지나 써볼까.
떠다니는 소리는 형체가 없는데, 억눌러진 격정을 자음 모음 형체에 가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렬된다. 내 감정과 생각은 정렬되지 않았는데 글은 필연적으로 순서가 생긴다. 글자들 사이의 순서, 문장들 사이의 순서, 문단들 사이의 순서.
쓰다보면 난 무정렬이 새어나오는 사람이 아니라는 모순만 발견한다. 난 지금껏 너저분하게 늘어놔진 마음을 곧잘 정리했다. 난 왜 글을 쓸까. 권태로부터 날 구원할 거라는 소망. 방으로부터의 탈출.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 글은 편지다. 방 안에서의 고독을 덜어내고자, 권태를 떨쳐내고자. 권태의 벽을 두드리며, 날 알아봐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