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잘 쓰고싶기도 하고, 그냥 무언갈 써 내려가고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버스 타기를 무서워했다. 처음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탔을 때, 하필 엄마가 버스를 잘못 타셔서 한참을 돌았다. 목적지는 도심인데, 버스는 점점 산골로 굽이 들어갔다. 횡성 언저리쯤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제대로 된 버스를 탔지만, ‘버스는 언제든 길을 잃을 수 있는 이동수단’이라는 인식이 단단히 박혔다.
1-2년 쯤 뒤, 수영장에 가기 위해 동생과 둘이 버스를 타게 됐다. 엄마 말로는 돈통에 돈을 넣고 수영장 앞 정류장에서 벨 누르면 다라고 그랬는데… 그게 뭐라고 참 떨렸다. 버스 세우기부터가 난감했다. 혹시 버스가 날 지나칠세라 타야할 버스가 오자 일부러 과장되게 동생을 일어서라 손짓하고, 고개를 도로쪽으로 내밀었다. 택시 잡듯 손을 흔들면 안될 것 같아서, 곧 타야할 사람 마냥 부산스럽게 행동하는게 전부였다. 버스는 다행히 멈췄다.
턱이 높은 계단을 올랐다. 드디어 돈통이다! 통에 돈을 넣으면 된댔는데 돈통 생김새가 영 당황스러웠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였다. 입구는 분명 돈을 넣는것처럼 생겼는데 자판기와는 다르게 내가 낸 돈이 얼만지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같은건 없어보였다. 거스름돈을 어떻게 받지? 내 손엔 어린이요금을 넘는 지폐만 있는데… 천원 지폐를 손에 쥐고 돈통 앞에서 머뭇댔다. 머줍대는 아이들에게 버스 기사 아저씨는 버럭! 빨리 돈 넣고 자리에 앉으라며 한 소리를 하셨다. 잔뜩 쫄아 납득 안되는 통에 돈을 넣으니까 거스름돈이 알아서 짤랑짤랑 나왔다. 내가 얼마를 낸건지 어떻게 알고 거스름돈이 나오지? 의문스러웠지만, 버스 아저씨가 무서워서 동전을 집어들고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나를 친절히 이해시켜주는 공간이 아니었고, 이후로도 쭉 버스타기를 무서워했다.
오랜만에 고향 동네에 찾았다. 마트 자리엔 편의점이 생겼고, 단골 닭갈비집은 빵집으로 바뀌었다.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 떡볶이 집은 여전했다. 당시 처음 생겼을 때에는 센스있고 깔끔했던 간판이 세월에 닳아 너절해졌다. 둥글둥글 귀여웠던 상호는 어딘가 촌스럽게 느껴졌다. 주인 아주머니는 바뀌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사실 난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동생과 엄마만이 아주머니를 알아보시고, 여전하시네- 오히려 더 젊어지셨는데?- 등의 대화를 나눴다. 그러니까 아마 똑같은 분이실거다. 요새는 보기 힘든 컵떡볶이를 여전히 팔고 있었다. 그 맛만큼은 여전해서, 달콤하고 달큰해서, 어린아이 입맛에 딱 맞았다.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던 그 맛 그대로 밀떡은 쫄깃하게 끊어졌고, 잔뜩 맵게 생겨선 하나도 안매웠다. 내 손안에 쏙 감긴 종이컵에서 얇은 나무꼬챙이로 떡 하나를 찝어, 길 걸어가며 후루룩 떡을 빨아들이고 쫄깃하게 씹는 그 감각만큼은 똑같았다. 어린아이 입맛에 딱 맞는 그만큼 나에게도 딱 알맞았다.
빨간 국물만 남은 종이컵을 손에 쥐고 조금 걸으니, 내가 무서워했던 정류장이 그대로다. 서울살이 하다보면 버스정류장 생긴게 다 비슷하다. 어느 버스정류장에 가더라도 깔끔하고 편리하다. 그에 반해 내 고향 정류장은 내가 무서워했던 그 시절 그대로여서 낯설었다. 페인트칠이 구석구석 벗겨져서 어딘지 군색해졌다. 정류장의 글씨체마저 옛되었다. 기둥 색인지 지붕 색인지, 내가 익숙한 서울 정류장의 기억 안나는 색깔과는 달라서, ‘색이 다르다’ 는 사실은 또렷하게 남았다.
떡볶이 맛은 변하지 않아 반가웠는데, 정류장은 변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불편했다. 컵 속의 국물을 털어 삼키고 종이컵을 구기며 정류장을 멀찌감치서 바라봤다. 저 변변찮은 정류장이 뭐라고… 버스를 타고 내리는 하찮은 과정을 거창한 걸로 겁먹게 했을까. 아 내 글은 어떨까. 나는 변하겠지만, 이 활자는 그대로 남아 언젠간 무언가로 떠오를텐데. 나는 이 글을 반가워할까, 불편해할까. 시간이 엉킬 때마다 글을 쓰고 마음을 풀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잘쓰고 싶은 욕심에, 이리저리 허세를 부린 이십대의 나를 반가워할까 불편해할까. 세월을 털어내고 창피함을 구기며 이 글을 지나칠까.
부러워 할 것 같다. 너절해지는 건 글이 아니라 내 쪽일테니까. 모든 일이 시시해져버릴만큼 세월이 바랬을 땐, 글이 변변찮아도, 허세를 잔뜩 부려도, 엉키고 설킨 마음을 글로 풀어내던 열기가 부러울 것 같다. 이 글이 불편함일지 반가움일지를 결정짓는건 글 속의 내가 아니라 글을 읽는 나겠지. 볕바르게 나이들어 따스롭게 글을 봐줄 수 있다면. 이 글은 반가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