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함은 달라지고, 달라져도 좋아하고

키워드: 첫사랑, 뿔테안경, 정의, 습관적말투, 못생긴 사람

by 글희

초등학교 5학년 땐가 6학년 땐가,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참으로 못생겼다. 눈도 작고, 쌍커풀도 없고, 얼굴은 너무 동그랬다. 팔 다리는 어쩜 이리 퉁퉁한지, 화장실 변기에 앉아 퍼진 허벅지를 보면서 ‘내 퍼진 허벅지 두께가 원래 허벅지 두께였음 좋겠다’ 생각했다. 그에 반해 동생은 쌍커풀 짙은 눈에 눈도 크고 또렷했다. 뛰어놀길 좋아해서인지 마르고 날렵했는데, 친척집에 가면 친척들이 동생보고 예쁘다 예쁘다 칭찬하셨다. ‘쟨 남자고 내가 여잔데’, ‘저 칭찬은 쟤보다 나한테 좀 해주지’, 속으로만 삐죽 삐죽. 난 스스로를 못생긴 사람으로 정의 내렸다.


거울을 보다 내가 참 못생겼다 싶을때마다 어무니 안경을 써보곤 했다. 갈색 뿔테안경이었다. 안경을 쓰고 나면 내 얼굴이 봐줄만 해졌다. 얼굴 여백을 뿔테 안경으로 채워서인가? 안경을 쓰고 싶다고 조르고 졸랐는데, 어무니는 왜 안경을 쓰려고 하냐며, “나중엔 다들 라식 수술하고 렌즈 낀다”, “안경 불편하다”, “엄마는 지금 20년째 쓰고 있는데 아주 안쓰고 싶다” 며 절대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어린 나는 엄마를 이해 못하고 안경을 쓰고 싶어, 몰래 책을 가까이에 보고 티비 바로 앞에서 만화 영화를 봤다. 엄마 말 좀 들을걸. 렌즈를 낀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내 첫사랑은 뿔테안경을 썼다. 키가 큰 농구를 잘하는 2년 위 선배였다. 우리 학교는 동아리마다 직속제도라는 전통이 있었다. 대학으로 치면 뻔선-뻔후 제도이고, 군대로 치면 아빠군번-아들군번 제도쯤 된다. 다른게 있다면 부여받은 번호로 맺어지는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동아리만의 규칙(제비뽑기,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사람부터 뽑기 등)으로 선배들이 직속 후배를 뽑았다. 직속 후배가 또 직속 후배를 뽑고.. 이게 쭉 타고 내려가는 방식이라 직직속도 생기고 직직직속도 생기고 했다. 졸업한지 10년이 되었으니 나에겐 직직직…(x12)후배가 있을거다. 내 첫사랑은 동아리 직직속 선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사랑과 사귀었다. 사람을 잘 알아서 좋아한게 아니라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선 누구나 다 마음속에 좋아하는 사람 한 사람쯤 품고 있어야 했다. 농구 잘하는 멋진 고3 직직속 선배라니. 어느날 매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선배가 과자를 사준다고 했다. 한사코 사양하다가 초코하임을 골랐는데 제일 큰 초코하임을 사줬다. 좋아할만한걸 다 갖추고 있었다! 좋아하기로 하고 그러다보니 정말 좋아져버리고, 나중에는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부인할 정도가 되었는데, 사실 그 사이에 선배와 친해졌다던가 잘 알게 되었다던가 한게 아니라 혼자 마음을 키웠다 없는체 했다 난리를 친거라, 실질적인 선배와의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근데도 어떻게 사귀게 되었네. 나도 나지만 첫사랑아 넌 날 뭘보고 좋아한거니.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과 이미 대학물 2년을 먹은 스물두살은 관심사나 대화주제가 달랐다. 손을 잡고 산책하다가도 할말이 없어 어색할 때 습관적으로 포로보로보- 하며 혼자 소리를 내었는데, 그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놀라하면서도 귀여워했다. 난 내가 그런 습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난 별 의식 없이 소리를 내었을 뿐인데 그 사람의 반응을 보고서야 내가 어떤 소리를 내다니는지 알았고, 민망하면서도 좋았다. 그 다음엔 귀여움을 받고 싶어 일부러 소리를 내려고 했는데, 의식한 이후로는 의미도 없는데 어딘가 귀여우려고 발악하는거 같은 음절조합을 내기가 어려웠다. 습관은 사라졌다.


첫사랑도 뿔테안경을 벗었다. 그는 라식 수술을 했다. 시간이 경이롭다. 난 더이상 못생겼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못생겼다 내린 정의는 얼마나 가혹한가. 어렸을 때 얼굴이나 지금 얼굴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안경을 쓰지 않아도 내 얼굴은 꽤나 봐줄만 하다. 전형적이게 화려하게 예쁜건 아니어도 사람 각자가 갖는 고유의 매력이 있지 않은가. 그걸 나도 갖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첫사랑이 맞는데 첫사랑이 아닌것 같다. 첫사랑과 사귀기 전 그에게 갖고 있던 어떤 이미지가 한꺼풀 사라졌다. 첫사랑을 옆에 두고도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만큼 10년 전 그와 지금의 그는 많이 다르다. 세상에 10년도 넘었네, 벌써 12년 전이다. 다른 모습이지만 여전히 좋다. 그가 변해가듯 내가 변해가고 우리도 변해가고.


나를 정의하고, 관계를 정의하고, 세상을 정의하려고 하지만. 모든 정의는 정의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의 면면일 뿐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의 경이로움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겸손 뿐이다. 내 얼굴은 그대로지만 나는 내 얼굴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살 위 어른스러움이 만든 ‘선배’ 후광은 이미 내가 그 나이를 훌-쩍 뛰어 넘으면서 사라졌다. 그때 좋아하던 모양과는 다르지만, 친구같고 기댈 수 있는 그를 다른 모양으로 좋아한다. 어차피 변해가고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면, 지금의 모양을 미워하기보단 좋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뿔테안경을 원했다가 안경을 싫어하던 나는, 필요할 땐 종종 투명 뿔테안경을 끼고 거울을 보며 흡족해 한다. 변해가면 변해가는대로 좋아할 구석이 또또 생기겠지. 세상엔 참 좋아할거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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