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랑과 시간
7년을 연애하고 헤어졌다. 2년 뒤 다시 만났다.
이건 20대 내내 한 사람을 사랑하다 쓰는 젊은 날의 기록이다.
사귄지 2년 쯤 됐을 때였나, 어디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란 글을 봤다. 3년이라고? 1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한부 사랑을 사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다를 거라고 애써 믿었다.
3년이 훌쩍 지나고도 관계는 은은하게 이어졌다. 우리 사랑이 세간에 떠도는 법칙을 뛰어넘은 듯 해 우쭐했다. 연애 기간은 성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는 퇴색되고 있었다. 중요한 부품이 빠져 헛돌고 있는 바퀴처럼, 분명 돌아가고 있으나 우린 정체된 듯 했다. 어딘가 비어 공허했다. 내가 느낀 결핍, 그가 느낀 권태를 다시 올바로 끼워맞추고자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에게 얘기했다.
나는 ‘나를 더 원해줘’ 라고 말하는 대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줘’ 라고 얘기했다.
나는 ‘나한테 애 좀 태워 줘’ 대신
‘내가 기분이 안좋아보이면 뭐 때문인지 물어봐주라’ 라고 했다.
나는 갈망을 요구하는 대신
나를 갈망하면 뒤따라올 말과 행동을 요구했다.
노력하겠다,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순간의 불편함만 갈무리했을 뿐이다. 우리 둘다 표면적인 말과 행동이 문제가 아님을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요구의 근원은 ‘갈망의 부재’임을 서로가 은연중에 알았다.
그는 나를 갈망하지 않았다. 이때의 갈망은 단지 섹슈얼한 욕망이 아닌,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원하고, 나를 안달내하는 모든 마음이었다.
갈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는 내 존재가 당연했다. 이미 나는 그의 삶 속에 단단히 잠식되어 그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몰랐다. 자신이 무얼 밟고 버티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는 날 원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내 연애는 끝을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처럼 서서히 타들어갔다. 얼마 남았는지 보이지 않는 심지. 그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는데, 그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가 불에 옮아 붙어 타버리는걸, 내가 무슨 수로 막겠어? 붙잡으려 하면 더 멀어질까 봐, 그 시간을 관망할 뿐이었다.
어, 근데 그동안 나는 그를 사랑했는가. 나 또한 그를 놓치던 건 아닐까. 언젠가부터 나는 그를 사랑하기보다 그가 나를 갈망하는 마음을 갈망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사랑을 지키려면 그가 나를 바라야 했다. 내 사랑도 ‘그’에서 ‘그가 나를 욕망하는 마음’에 옮겨 붙어 있었다.
7년 넘은 연애가 끝난 뒤, 가장 먼저 그리워한 건 아침에 나눈 카톡이었다.. ‘잘 잤어?’, ‘출근한다’, ‘가기 싫다’ 등의 시시콜콜한 감상. 내 하루의 시작은 아무에게도 공유되지 못했고, 내 일상을 함께 기억해갔던 이가 사라졌따.
그다음부터는 귀여움 받았던 수많은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어찌나 그리워했던지 다른 이를 만나도 떠올랐고, 헤어진지 2년쯤 지나도 그 사랑을 다시 받고 싶었다. 그는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날 귀여워라 했다. 얼굴이 동그랗다고 귀여워하고, 덜렁대거나 실수를 해도 ‘아이구 우짜니’ 하며 볼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그 귀여움 받기와 쓰다듬는 행위가 좋아서 실수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닳고 닳아 결국엔 소멸된 사랑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낡고 헤졌지만 매일 머리맡에 내어두는 책 같았다. 결말이 나버린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 꺼내어 읽었다. 어떤 날은 첫 장을, 어떤 날은 결말을, 어떤 날은 절정을, 꼭꼭 되씹었다. 사진을 다시 보기도 하고, 일기를 다시 읽기도 하고, 추억 있는 장소를 다시 찾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억쯤이야 몽글몽글 훌훌 불어 날려버리면 될 텐데,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너무 소복해서, 훌훌 불어버리면 우리가 영영 사라질까 봐. 불어내지 못했다.
함께 찍은 무수히 많은 사진들.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얼굴. 사진 속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소중했다. 함께 나눈 젊음도, 서툴고 촌스러웠던 마음도, 보고 싶은 그 사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니. 어쩐지 유통기한이라는 단어와 닮은 듯도 하고. 싱싱했던 사랑이 오래되다 못해 상하기까지 기간이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초입은 언제나 미지다.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상대의 습관, 말투, 과거의 경험까지 모두가 발견의 대상이다.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데, 남들은 그 영역을 알 수가 없네? 오로지 나만 탐구할 수 있는 미지. 미지와 독점의 공존. 그 속에서 설렘이 핀다. 얼른 더 알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나 물어봤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뭘 먹지 못하는지. 영화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어땠는지. 동네엔 무슨 추억이 있는지. 사소한 습관은 어떤게 있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게 즐거웠다.
그는 골똘한 생각에 잠겨 걸을 때, 한쪽 다리에 힘을 더 실어 성큼성큼 버릇이 있었다. 그걸 알려줬을 때 자기가 그러냐면서 신기해 했다. 나는 어색할 때 의미 없는 의성어 ‘포로보로보’와 같은 소리를 종종 냈다. 의식했던 건 아닌데, 그가 그 버릇을 발견하고 귀여워해준 이후로 의식이 되어 더 쓰려다가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스스로도 모르던 모습을 서로 발견해서 알려주고, 서로 또다른 자신을 찾아가고. 함께 아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뿌듯했다. 공유되는 시간이 소중했다. 내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보다 함께 써내려가는 이야기에 시선이 간다. 내 이야기보다 상대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 궁금함을 사랑으로 알았다.
사람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일정시간이 지난 후엔 어느 정도 사람을 알게 된다. 사람은 계속해서 쓰여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너무 지난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몇 줄 적히는 정도다. 그 사람이 이미 써왔던 문장을 다 읽어버리면 호기심은 줄고 쉬이 권태로워진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 모습을 사랑의 소멸로 안다면, 사랑은 유효기간이 생긴다.
그러나 사랑은 고인 상태가 아니라 흐르는 감정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면, 그건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변하는 마음을 두려워하고, 감정의 무게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사랑을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감정’으로 정의할 때 우리는 이미 감정을 망가뜨릴 준비를 하는 셈이다.
‘우린 언제까지 괜찮을까’ ‘우린 언제부터 변했을까’
질문이 전면에 부상하는 때부터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관리와 측정의 대상이 된다. 사랑이라는 녀석은 고집세고 섬세해서, 누군자 자신을 요리 조리 다루려고 드는 순간부터 발을 빼고 도망간다. 사랑을 신선하게 유지하려는 마음이 곧 부패의 시작이 된다. 어쩌면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란 말을 듣고, 내 연애 기간을 법칙에 대어 괜찮은지 확인하려던 그 때부터, 내 사랑은 조금씩 도망갔을 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래서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엔 끝이 날 수가 없다. 계속 무언가가 쓰여가니까.
짧게 짧게 덧쓰이는 한 줄을 따라 느리게 읽어가는 선택. 변해가는 감정 속에서도 ‘함께 머무는 일’을 택함으로써 사랑은 매순간 갱신되고, 유효기간은 매순간 연장된다. 사랑은, 그 사람을 선택하게 하는 용기와, 선택 그 자체다.
함께 쓰이는 미완의 이야기. 사랑은 늘 미완과 불완전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지난 사랑에 후회는 없다. 항상 내 온 진심을 다했다. 내가 사랑했던 게 사람이든, 관계든, 욕망이든. 난 최선을 다했다. 완전한 사랑을 바라다가 사랑을 놓쳤지만, 불씨는 다 꺼진 재 속에서 살아남아, 미완과 불완전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