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랑과 시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던가. 우리 존재는 무겁게 뿌리내리길 바라는 홀씨같다. 태생적으로 가벼워서, 도무지 혼자선 뿌리내릴 수가 없어서, 그 괴리를 지우고자 내 존재를 상대에게 얹는다. 상대가 나를 갈망하는 마음에 나를 심고, 함께하는 긴 시간에 뿌리내려, 가벼움을 덜고자 한다.
함께한 시간은 내가 너를 견디고, 너가 나를 견디는 마음의 증명이다.
함께한 시간이 길다는 것은
너가 나를 원한 시간이 길었다는 것이고,
곧 내 존재도 그만치 무겁다는 뜻이고.
그래서 어떨땐 함께한 시간이 훈장 같다.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이 나를 견뎌주는 거지만, 이를 증명하는 건 함께 하는 시간 뿐이다.
내가 날 견디기 위해선, 날 오랫동안 견뎌주는 네가 필요해
그래서 기다림은 “나는 너를 원한다”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다.
여러 기다림이 있다.
너의 마음을 기다려줄게. 너의 변화를 기다려줄게. 너의 부재를 기다려줄게.
내 인생의 동력도 통제하기가 어려워, 언젠간 마음이 동하기를 기다리는데,
멈춰있는 상대가 움직이기를 기다려준다니(정확히는 내가 바라는 모양으로).
숭고해 보인다.
기다리기만 하면 상대도 더 고결한 무언가에 다가가줄거라고, 꼭 그렇게 믿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나에겐, 믿기때문에 기다리는게 아니라, 기다리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믿음을 만들어야 했던 시간이 있다.
‘지금은 너가 날 덜 생각해 줘도, 언젠간 나를 더 생각해줄거라 믿어’
그 속엔
‘제발 날 더 생각해 줘. 꼭 그랬으면 좋겠어’ 가 있었다.
믿음은 기다림을 정당화하기 위해 강요되었다. 그러니까 이 기다림은 자기 기만이다.
자기 기만의 기다림은 관계의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믿음을 만들어야 하는 기다림은 사랑 대신 나의 결핍을 증명한다. 없는걸 만들어서라도 상대를 놓지 못하는 나의 결핍. 상대가 사라져버리면 내 존재는 영영 가벼워져 뿌리내리지 못하고 날아가버릴까봐.
오래 기다릴수록 내 열위가 더 선명해졌다. 상대의 자기중심성을 감내하며 상대의 성숙을 바랐다. 기다림은 고통이었다.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철들기까지를 버티는게 아니라 상대에게 철들기 바라는 시간을 버텨야했다. 바람을 놓기 위해 난 내가 성숙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 내 성숙은 상대를 놓아야 완성될텐데, 그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정체성을 단단히 매만지는 20대를 그와 함께 보내, 내 정체성에 상대는 단단히 자리잡았고, 난 섣불리 그를 놓고 도려내지 못했다. 나는 그를 원했기에 기다렸고, 기다린만큼 낮아졌다. 기다림은 애초에 대등한 단어가 아니다.
둘다 미성숙했다. 존재의 가벼움을 난 그에게 들쑤셨고 그는 스스로의 심연에 쑤셔 넣었다. 나눠가지지 못한 관심과 갈망은 불균형을 만들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결코 무미건조하지는 않았다. 내 다정함과 다르게 다정했고, 나를 평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균형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바람이 없었기에 요구가 없었고, 날 견뎌낼 필요가 없었다. 내 존재를 그의 반응으로 확인하려는 시도는 종종 실패했다. 난 누군가 나를 붙잡아 땅에 끌어 붙여주길 바랐는데, 난 다른 홀씨의 끄트머리만 잡으며, 그가 날 땅에 붙여주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애정 권력은 여기서 온다. 다행히 그는 권력을 부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땅에 발 딛지 못했다. 나도 낮아지길 원하지 않았지만 그도 높아지길 원하지 않았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기다림의 짐을 우리는 왜 서로가 짊어져야 하는가.
불균형에 정이 들었지만.
정든 불균형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나의 기다림은 버팀이야.
사랑을 하고 있는 나를 지키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지키려고 했다.
난 상대를 기다리면서 우리를 기다렸다. 놀라운 모순은, 사랑은 지키려고 할수록 소진되었다는 점이다. 기다림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사랑은 불완전과 미완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시소는 그 자체로 견고하다. 한번 기울어진 시소는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되기 때문이다. 불균형은 그래서 한편의 완전과 완성이다. 한 쪽이 기다려야 유지되는 관계는 그 자체로 견고하다.
기다림이 갈망과 권력의 언어가 되지 않으려면, 기다림은 교대되어야 한다. 불완전과 미완은 균형을 아스라이 잡아가는 상태다. 한쪽으로 기울어질라 하면, 다른 한쪽이 무게를 잡아줘야 한다. 혹은 한쪽이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상대가 무게를 덜지 못해 괴로워할때, 내가 무게를 더 해주는 관용은 사랑이지만, 내가 무게를 덜지 못해 상대가 무게를 더해주길 기다리는 건 결핍이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 각자가 짊어내야 할 공허.
그곳에서 나다움이 만들어진다.
서로 고유성을 보존하며 동시에 공존하게 하는 사랑은, 교대되는 기다림에서 더 끈끈해진다. 한쪽이 그 모든 역학을 짊어져서 기다림이 희생이 된다면, 기울어진 사랑은 그 역학 그대로 견고해지고, 사랑이 살아 숨쉴 미완의 여백은 사라진다.
그를 놓지 못하고, 관계를 놓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