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권태가 맞나요

1부. 사랑과 시간

by 글희

어쩌면 권태라고 주장하고 싶었나봐.

사실은 불만인 건데, 내가 식은 거라고.

말이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보다 덜 노력하는 위치에 올라서고 싶었나봐.





눈을 부릅뜨고 째려보던 독서실 책상. 5년 전쯤이었나. 자리에 앉아 기출문제집을 펴놓고, 문제 대신 보이지 않는 상대 얼굴을 째려보던 중이었다. 성이 잔뜩 났었다.


상대는 관성처럼 데이트를 나왔다. 데이트에서 무신경하거나 지루해하진 않았지만, 그는 무얼 먹고 싶은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어디서 무얼 같이 하고 싶은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왜 나만 매번 데이트를 계획해? 심지어 난 수험생인데'


문제도 풀리지 않고 집중도 되지 않아 생각은 계속 데이트로 가로샜고, 답답함과 짜증은 상대의 무심함과 나의 치우침으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속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공부하다 말고 뜬금없이 그 주엔 데이트를 쉬자고 질러버렸다. 상대는 아쉬워했지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의례상 건네는 말 같았다. 아 그게 어찌나 짜증 나던지. 이게 권태인가 싶었다. 권태의 모습은 짜증이라고 어디선가 들었으니까.


그니까 그 당시를 권태라고 부른다면, 권태의 다른 말은 몸부림이었다. 나는 관계가 불만족스러운데, 무얼 바꿔야 할지 전혀 몰랐다. 상대는 나를 갈망하지 않는 듯했다. 난 그게 서운했지만, 서운해할 일이 맞는지도 자신이 없었고, 뭘 바꿔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열정이 없다 뿐, 아이러니하게도 관계 자체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관계는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왜 변해야 하는지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난, 우리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안정적인 불균형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는, 안정적으로 그 모습을 유지한다.


한 자리에 앉아있지만, 그의 영혼은 그곳이 아닌 다른 데 있는 듯했던, 서울역 롯데리아가 기억난다. 함께 있으나 말과 말은 뭉치지 못하고, 잠시 모였다가 금세 흩어졌다. 그는 막 임관해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은 허탈했다. 그를 만나러 갔으나 그를 만나지 못한 듯했다.


그가 인제에 있는 부대에 배치받았을 무렵에도 비슷한 무엇을 느꼈다. 인제로 가는 시외버스 안엔 군인이 가득했다. 어느 날은 한 버스 안에 모두가 군인이고 나 혼자만 여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러 버스에 오르는 길은 항상 기꺼웠다. 그가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없어 항상 내가 찾아가야 했으나 그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이 내가 안고 탄 설렘만큼은 되지 못했다. 먼 길을 선뜻 찾아와 준 나를 고마워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반가움엔 미치지 못했고, 헤어질 무렵에도 그는 딱 서울에서 헤어질 때만큼 아쉬워했다. 어쩌면 그렇게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와 다시 떨어져야 한다는 아쉬움보다도, 그가 나를 아쉬워하지 않는 모습이 아쉽고 서러워서, 서울 돌아오는 버스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그 시절이 그에게 권태였을까. 사실 그는 그저 그의 군생활의 어려움에 골똘히 싸여있을 뿐이었다. 일상의 괴로움은 그의 눈을 가려 연인과 연결될 통로를 막았다. 그의 마음엔 여유가 없어, 관계에 쏟을 관심이 남아있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발버둥 치는 중임을 나는 알았다.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고통스러웠다. 그가 자신의 일상 고통에 온 신경을 쏟는 동안, 우리의 사랑 창고는 비어갔는데, 그는 비어감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눈치챘어도 외면했다. 바로 이 점이 날 더 괴롭게 했다.


차라리 그가 스스로 고통을 고백하고 우리를 돌볼 여유 없음을 자백했다면.


나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거나 기다림을 부탁했더라면.


나는 그의 언어를 '난 우리 관계를 지키고 싶어. 근데 지금은 좀 힘들어. 나를 도와줘' 하는 신호로 번역했을 거다. 그 부탁은 그가 관계를 신경 쓴다는 뜻이었다. 그의 요청은 나의 갈망을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관계가 시들해졌다 하면 그 기색을 귀신같이 눈치챘다. 관계가 열정 없이 지지부진해질 때면 우리는 연인보다는 익숙한 친구사이에 곧잘 가까워졌는데, 나는 그에게 편한 친구이기보다 연인이기를 바랐기에 그 상태가 영 불편했다. 나를 위해서, 같이 속을 터놓을만한 도구나 활동을 찾고 함께하며 연인 됨을 되느끼고자 했다. 한두 번 색다른 걸 하며 연결되고 나면 권태 생각은 들어가고 사랑은 다시 은은히 타올랐다.


그는 우리가 더 연결되고자 먼저 애쓰진 않았다. 무심했다. 그의 덤덤함은 나에게 일종의 안전지대가 되어주었다. 그는 내가 어떤 요구를 해도 내치지 않았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며 나의 실수까지 다 귀여워했다. 투박한 애정과 타고난 무심함이 섞여 만들어진 그만의 사랑방식에 난 홀딱 중독됐다. 내가 관계를 항상 지도하는 불균형에도 , 나는 그의 애정을 계속 받기 위해 불균형을 기꺼이 이고 나갔다. 불균형은 이렇게 단단히 다져졌다.


그러다가 한 번씩 지쳐, 도저히 버티기 어려울 만큼 억울할 때. 그때 나는 나 스스로에게 권태 이름을 붙여주고 우위를 차지하고자 했다.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권태롭게 느끼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사랑이 넘쳐나서 지친 대신에, 사랑이 부족해서 지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느낀 건 권태였을까


내 몸부림은 여기서 왔다. 불균형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치우침은 또 다른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나만 애쓴다는 억울함만 내려놓는다면, 나는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난 안정감도 억울함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권태는 그런 모순에서 비롯된 몸부림이었다. 균열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균열이 너무 은근해 도무지 손댈 수 없을 때 찾아오는 답답함이었다. 7년의 연애기간 동안 몇 번의 권태가 찾아왔다. 그런데 정말 권태였을까? 상대도 나도, 미지근한 시기를 구태여 ‘권태기’라고 지칭하진 않았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명명엔 강력한 힘이 있다. 우리의 잠시를 권태로 한번 못 박고 나면, 우리의 시간은 무언가를 극복해야 하는 투쟁이 되어버린다. 투쟁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마음은 투쟁으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균열을 직면하지 못한 건 잘못이었다. 지금껏 넘겨버린 권태의 부채는 이별로써 모두 떠안아야 했다. 시간을 갖자고 했던 쪽은 나였다. 헤어지기 2주 전, 우린 광화문역 어느 카페에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태엽이 어거지로 돌아가듯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매주 주말 관성으로 만났다. 카페에서 시시콜콜한 얘기로 적막을 채웠지만, 어딘가 억지스러워 불편했다. 표면적으론 해소되었으나 본질적으로 해소되진 않은 작은 갈등들이 계속 드러났다.


권태 이름 속에 숨어있던 파열을 우린 직면해야 했다. ‘만나도 할 게 없고 할 얘기가 없어 따분하다’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알아야 했다. 엄청난 무언가로 문제 삼을게 아니라, 그냥 가볍게 드러내고 문제를 나누고 얘기해야 했다. 우린 권태를 지나온 게 아니라 권태를 쌓아온 거였다. 그 무게가 우리를 눌렀다. 마지막 권태 2주 후 우린 헤어졌다. 사랑이 남은 채로


권태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시간과 욕망의 언어다. 긴 시간이 만든 안정감 속에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있음을 알려주는 감각이다. 그 욕망에 함께 직면할 때, 권태는 지나간다.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권태 속엔 욕망이 숨어있고, 욕망은 사랑의 이면이다.

마지막 권태는 관계를 멈췄지만 사랑을 종결시키지 못했다.

권태는 사랑의 종말이 아니다.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굴절되었을 뿐이다.

굴절될 사랑을 난 또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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