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사랑, 불완전 용기

2부. 사랑과 용기

by 글희

내 마음의 일부를, 내가 닿지 않는 곳에 맡긴다.




불완전 사랑


사랑이 어떻게 만들어지냐고.

내 마음, 네 마음을 떼어 서로에게 맡기고 나면,

덩어리진 마음이 생겨나는데 그게 곧 사랑이다.


아니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피조물이야

내 마음 한 덩이, 너 마음 한 덩이 그 둘 사이 작용하는 중력이 사랑이겠지.


인간이 불완전한 건 완성을 쫓기 때문이다. 완성은 곧 끝이다. 그러나 삶은 흘러가는 시간처럼, 완성이 없는 미완의 연속이다.


인간의 조바심은 여러 미완들을 손에 움켜쥐고 주무르려 들게 한다. 그러나 사랑은 섬세한 녀석이다. 사랑을 두르려 하는 순간 사랑은 서서히 소멸된다.


엉키고 얽히고 섞이고 설킨 마음 안에 사랑이 머문다. 덩어리 마음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꿔서 어딘가에 도달할 수 없다. 매 순간 달라지는 모양의 한 순간을 포착해 ‘완전하다’ 하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소모심이 된다. 사랑과 완전은 반대말이다. 사랑은 미완과 불완전 속에서만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무형의 언어를 육체에 깃대어 설명하듯, ‘사랑’ 단어는 사랑이 만든 덩어리 마음에 깃대어야 한다.


‘깃대다’는 없는 말이다.

깃들고, 기대고, 빗대어진 말이다. 생명은 육체에 깃들어있고, 기대고 있으며, 곧잘 빗대어져 설명된다. 실체가 모호한 단어가 으레 그렇듯, 사랑 또한 그 결과물로써 이리저리 설명될 뿐이다. 깃대어야 설명되는 단어의 시작을 내가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사랑을, 사랑이 깃대어진 이야기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불완전 용기


내 사랑은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시작되었다. 사관생도였던 남자친구는 제복을 입고 나타났다. 제복을 입었을 땐 이성교제 상대에게 애정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케케묵은 규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 손을 잡을 시도를 해야 잡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연애가 처음이었고, 첫 데이트 때 으레 따르는 스크립트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나란히 걷기만 했다.


첫 데이트는 시립미술관, 스탠리 큐브릭 전이었다. 영화계의 거장이라지만 난 사실 잘 몰랐다. 모르는 티를 내기 싫어 <스페이스 오디세이> 하나만 부랴부랴 챙겨 봤다. 영화를 잘 모르는 탓에 내 눈에 들어오는 전시는 아니었음에도, 거의 10년 전 전시를 기억하는 이유는 어떤 영상실에서 비롯됐다.


손이 잡혔다! 깜짝 놀라 뛰던 심장은, 놀람이 가셔도 콩닥댔다. 컴컴한 영상실엔 스크린에 몰입한 관람꾼이 여럿 있었다. 나 또한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틀어둔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의 손과 심장만을 관람했다. 수능 때도 이만큼 두근대진 않았는데, 나 정말 서툴고 촌스럽다. 투박하고 두툼한 남자 손이 낯설었다. 온 사물이 차가웠는데 그 손만큼은 따뜻했다. 어디서 데펴진 게 아니라 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온기. 낯선 온기와 꼼지락대는 움직임이 좋아서, 전시실에서 나와서도 손을 잡으려고 내밀었는데, 밖에서는 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제복을 입고선 손잡을 수 없단 걸. 아 아쉽다. 또 잡고 싶은데.


이때부터 마음도 시간도 기꺼이 바쳤다. 무모하리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내 중심의 일부는 그에게 가있었다. 두 번째 데이트땐 석계역 카페에 갔다. 그 앞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에게 카페 이름 그대로 ‘호호’ 이름을 붙여줬다. 호호! 강아지 이름처럼 우린 참 많이 웃었다. 평범한 일상도 그와 함께하면 의미 있고 대단한 것이 되어서 금세 그에게 온 인생을 걸었다.


시계 시침과 분침처럼, 난 좀 더 빠르게 돌아가고 그는 천천히 돌아갔지만, 우리는 주기적으로 교차하여 공명했다. 시계도 멈추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내 마음을 넙죽 떼어 그에게 맡기곤, 그가 잘 보살펴 주길 기대하고 기다렸다. 다행히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어서, 서로에게 덤으로 얹어진 마음은 각자의 방식대로 보살펴졌다. 상대가 내 마음을 가져가놓고 마음대로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무식한 용기. 용기를 내지 않고도 난 용기 있었다. 생채기쯤은 날 수 있지만, 그가 나에게 칼을 휘두르진 않을 거라고. 내 마음을 방치하고 아무렇지 않은 모양으로 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당연히 믿었으니깐.


그즈음 난 사랑을 용기로 글 적었다. ‘사랑이 섹슈얼한 우정과 다른 점은 지금의 감정이 영원할지 어떨지 모르는 불확실성에도, 자신의 마음을 떼어 서로에게 맡길 수 있는 용기에 있다’고. 사귄 지 5년쯤 됐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히 내맡긴 용기가 얼마나 쉬웠는지 모르고. 불완전했는지 모르고.


가식, 거짓, 배신, 배반 같은 단어는 먼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악독하지 않아도 애정은 쉽게 쓸모를 얻어 상품처럼 취급되었다. 마음은 순수한 영역에서 소외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런 세태임을 7년을 보내고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용기가 불완전하지만, 내 용기는 유독 불완전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스무살의 첫사랑을 하던 너에게.

미래 넌 어떤지 들려줄까?


사랑도, 사람도 언제나 달라져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한다. 불완전과 미완에서 살아간다.


내 사랑은 상대뿐 아니라 나에게도 향해있어

매 순간의 선택을 나를 향한 사랑에 깃대어 믿는다


나는 나를 선택하는 동시에

달라진 첫사랑을 다시 선택했고.

또다시 나는 내 마음의 일부를

내가 닿지 않는 곳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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