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된 사진 보고 글쓰기
비 오는 날이면, 고양이는 늘 창가에 앉아 비구경을 한다. 고양이 이름은 유자다. 길을 떠돌던 아이를 데려온지 벌써 4년이다.
유자를 데려온 건 순간의 충동이었는데, 그 충동이 나를 살렸다. 유자가 오기 전까지 자취방은 항상 싸늘했다. 밖은 따뜻하고 찬란해도, 방 안 공기는 항상 눅눅했고 그러면서 냉랭했다. 눅눅함과 냉랭함, 기분 나쁜 감각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여서, 온도를 데워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워도, 공기 속의 싸늘함은 결코 녹지 않았다. 사람 사는 온기가 쏙 빠져 방은 무채색으로 착잡했다.
시간이 죽어도 가지 않았고, 그나마 깨어서 버티는 시간이 고통스러워 잠만 잤었다. 그러다가 어느 비 오는 퇴근 길, 담장을 걷는 떠돌이 고양이를 발견했다. 털이 온통 젖어 축 늘어졌고 털 속에 감춰진 몸뚱아리는 너무 야위었다. 그게 꼭 나같아서 불쌍했다. 너는 내가 먹여줄게. 비가 와도 절대 젖지 않게 해줄게. 항상 보송보송하게 해줄게. 갑자기 솟은 충동으로 데려온 아이가 유자였다. 고양이 밥도 주고 모래도 갈아주고 장난감으로 우당탕탕 놀아주다보면 시간이 금방갔다. 고양이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했고, 어쩔 수 없는 움직임들이 나를 살렸다. 유자는 내 생명공동체였다.
또 그때와 같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한껏 보기 좋았다. 유자는 평소처럼 습관처럼 등을 둥글게 말고,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창밖을 지켜본다. 나는 그 뒷모습이 좋아서, 그 날도 무심코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지켜보는 건 무엇일까 시선을 따라갔다. 창에 맺혀 스르르 흘러내리는 물방울일까. 그러나 눈동자는 비가 아니라 그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 끝엔 회색 우비를 뒤집어 쓴 채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쑤셔넣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듯 했다. 섬뜩했다. 나는 남자를 본게 아니라 그 너머 창가를 보고 있었다는 듯, 굳이 눈을 피하거나 커튼을 닫지 않고 천천히 시선을 넘겼고, 오히려 여유있게 웃는 체하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창을 눌러 물방울을 가리키기도 했다. 내가 본건 당신이 아니라 빗방울이라는 사인을 온몸으로 보냈다.
그날 밤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예전에 여행했던 교토의 골목길이다. 비 내리는 기온 거리. 예스럽고 그윽했던 길거리는 내 기억 속 거리보다 어둡고 음침했다. 비 때문인지 몰라도 색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 사이에 비를 맞고 있는 유자가 있다. 비가 한참 내리지만, 유자 털은 비에 젖지 않아 보송보송하다. 유자는 나를 따라오라는 눈짓으로 앞서 가다, 중간중간 뒤를 본다.
따라가다 보면 골목길 중앙에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있다. 고색창연한 길거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 통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것이 입구에 묻어 있었다. 고양이의 시선이 닿은 곳을 내가 대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어디에선가 또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은 없는데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다는 공포에 몸서리친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유자가 내 옆에서 나를 빤히 지켜보는 것이다.
“너가 나를 보던거니 유자야?“
조용히 혼잣말같은 크기로 유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미 비슷한 꿈을 며칠 째 꾸고 있다. 잠을 항상 설친다. 잠이 분명 부족할텐데도, 불면증에 시달린다. 요샌 아예 티비를 보다 잠들기를 택했다. 아무거나 틀어두고 화면만 보고 있자면 스르르 잠들게 되는 것이다. 이 편이 잠들려고 노력하는 편보다 나았다. 이번에도 눈을 뜨니 어제 틀어둔 티비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평소처럼 티비를 끄려는데, 뉴스 소식에 멈춘 엄지.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자료 화면에 나온 동네가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오싹한 느낌이 들어 찡그리며 뉴스를 보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유자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