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소개팅
헤어진 지 반년쯤 되니 주변에서 성화다.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 소개팅에 나가보라고 한다. 날도 조금씩 선선해지겠다, 내 마음도 전처럼 요동치지 않겠다, 새로운 사람이나 만나볼까.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난생처음 소개팅을 해본다. 연락처는 받았는데… 카톡부터가 고비다. 내가 먼저 카톡을 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즈음 카톡이 왔다. 아이폰 기본 이모티콘을 적극 활용하는 다정한 말투의 남자였다.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저는 다 잘 먹지만, 혹시 메뉴 정하는 것 때문이면 저는 일식을 좋아해요’ 라고 했다. 그때부터 고맙다는 말이 늘었다. 말을 참 다정하게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유튜브에 소개팅 룩을 검색해 보고 자지러진다. 내가 저런 낯간지러운 옷을 입어야 한다고? 옷들의 공통점은 여성의 라인을 강조한단 거였다. 내가 가장 즐겨 입는 옷은 청바지였는데... 다들 이런 걸 입고 사람을 만난단 말이야?
급하게 연분홍빛 원피스를 한벌 샀다. 몸 라인을 드러내면서도 너무 달라붙지 않는 머메이드 원피스였다. 원피스와 같은 색깔의 단화를 신었다. 나가기 전 거울을 보니, 썩 어울렸다. 물론 어색했지만, 만족스러웠다. 난생처음 입는 스타일에 소개팅임을 숨길 수가 없어 엄마에게 소개팅한다고 나갔다.
첫 만남은 혜화였다. 내 왼쪽도 오른쪽도 소개팅하는 테이블 같았다. 멋쩍고 민망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 주제는 옆 테이블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테이블 간 간격이 넓지 않아 계속 의식됐다.
상대는 자기 관리가 잘 된 사람이었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관리하는, 내가 원하던 부류의 사람이었다. 소개팅 전 운동을 하고 왔다는 말에 나도 그러했기에 반가웠다. 너무 유난이다 생각해 쑥스럽게 공개한 식단관리 루틴을, 자기도 하고 있다며 반겨주었다.
대화가 크게 재밌진 않았지만, 상대가 내게 호감이 있음은 명확히 보였다. 헷갈릴 게 없었다. 공통점이 있는지 찾는데 열중이었고, 어떤 말을 해도 대단하고 멋있는 삶으로 치켜세워주었다. 애프터 하겠구나. 아 그런데 난 잘 모르겠는데 어쩌지.
치켜세움이 기분 좋지는 않았다. 꼭 대단하고 멋있어야만 하나. 난 그저 나를 드러냈을 뿐인데, 긍정적인 얘기지만 결국 어떤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 부담스러웠다. 고민을 이야기해도 고민을 하는 자체가 멋있다고 하질 않나. 난 그다지 깊고 대단하지도 않거니와 깊어지고 대단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와의 공통점을 그리 찾고 싶지 않았다.
헤어질 때가 되니 상대가 다음에도 보고 싶다고 했다. 얼굴 보고 말할 줄 몰랐다. 얼떨결에 승낙했다.
‘이게 맞나?’ ‘나중이면 좋아질까?’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의 연속극 중반쯤 사귀었다. 상대는 불도저였다. 나는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음에도, 그는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다가왔다. 첫 애프터를 얼떨결에 승낙했던 것처럼 고백도 얼떨결에 승낙했고, 인생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됐다.
그러지 말았아야 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가 너무 덤덤해서 기억난다. 손을 잡자는 뉘앙스로 손을 내밀길래 잡았다. 따뜻한 남자손. 물리적인 온도와 질감 무게감만을 느끼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손이 잡혔다! 깜짝 놀라 뛰던 심장은, 놀람이 가셔도 콩닥댔다. 컴컴한 영상실엔 스크린에 몰입한 관람꾼이 여럿 있었다. 나 또한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틀어둔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의 손과 심장만을 관람했다. 수능 때도 이만큼 두근대진 않았는데, 나 정말 서툴고 촌스럽다. 투박하고 두툼한 남자 손이 낯설었다. 온 사물이 차가웠는데 그 손만큼은 따뜻했다. 어디서 데펴진 게 아니라 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온기. 낯 선 온기와 꼼지락대는 움직임이 좋아서, 전시실에서 나와서도 손을 잡으려고 내밀었는데, 밖에서는 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제복을 입고선 손잡을 수 없단 걸. 아 아쉽다. 또 잡고 싶은데.
첫 남자친구와 손잡기는 이렇게 썼었다.
7년 전 감각과 대비되어 씁쓸했다. 어른의 연애는 이렇게 미지근한 건가.
어딜 가도 옛 생각과 옛 추억에 집중할 수 없었다. 데이트를 하고도 옛 남자친구가 떠올라 버스에서 혼자 울며 돌아갔다. 점점 미안해졌다. 너무 성급했다. 이렇게 사귀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두 번째 연애는 연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간을 거치고 종료됐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연애를 끝내게 된 건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식의 토 나오는 실수 때문이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 실수를 두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헤어질 핑계가 있으니까. 본인도 인정할 실수니까.
실수가 없어 연애가 어영부영 길어졌다면 나는 상대에게 미안함만 커졌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분명 누가 그랬는데...
첫 소개팅은 성공했지만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