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랑과 용기
‘몇 번 더 만나보고 싶어’
‘내가 먼저 연락할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의 ‘오래’는 1시간이었다. ‘몇 번 더 만나보고 싶어’ 속 몇 번은 과연 몇 번일까?
엔틱한 카페 창가 너머로 경의선 숲길이 내려다 보인다. 그는 창가를 보며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무게 잡고 앉아있으려던 계획은,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대가로 실패했다. 늦은 15분이 날 너무나 가벼운 사람으로 되돌렸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오빠는 괜찮다며 웃었다. 평범해서 새삼스럽고, 그래서 놀랍다. 자연스럽고 익숙한 패턴. 예전에도 그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었고, 나는 5분씩 늦고는 했는데, 그러면 그는 5분이 아니라 15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었다.
나란히 앉은 탓에 서로를 보기보다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면, 보고 싶지만 볼 수 없었던 얼굴이 내 옆에 있는 게 신기했다.
예전이었으면 손이라도 잡고 얘기했을 텐데. 중간중간 기대고 장난쳤을 텐데. 서로의 몸에 옅은 결계가 있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공기가 묘해 간질간질했다.
나는 한 달 정도 기한을 제시했는데, 오빠는 기한보다는 횟수로 하자며 세 번을 더 만나고 마지막 만남에서 결론을 내리자고 했다. 반가웠다! 기한이건 횟수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관계를 이끌어감에 있어 오빠가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 흡족했다. 나는 홀로 애씀을 내려놨고 우리는 동등해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절대 또 헤어지고 싶지 않아”
술이 들어가자 털어놓는 진심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2년 전 헤어졌을 때는, 우리가 연인으로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많이 지난다면 어쩌면 친구처럼 연락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 헤어진다면 완벽하게 끝이다. 절대 다시 만날 수 없다. 친구로라도 그리워할 수 없다.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이걸 알았다. 유예기간의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음에도, 신중함을 표방하는 장치를 세웠다. 우리의 만남은 3번 연장되었다.
3번을 연장했지만, 우리는 3번보다는 더 많이 봤다. 그는 평일에도 종종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면 퇴근 후에 만나지 않겠냐며 물어봤고, 그럼 퇴근 후에 만나 맥주 한잔을 걸쳤다. 이건 횟수로 치지 않는다며 만남의 무게를 덜고는, 하루 동안의 고됨을 풀고 나눴다.
헤어질 무렵엔 겨우 사회초년생이었던 난, 2년 사이 업무에 익숙한 직장인이 되었다. 대화 중 재밌는 대화는 솔직한 감정이 오가는 대화 아니겠나. 오빠는 2년 사이 그런 류의 대화에 익숙해졌는지 솔직한 감정을 곧잘 털어놨다.
대화의 컨텐츠도, 나눠지는 감상도 공감되고 재밌었다. 만남도 즐거웠을뿐더러, 횟수에 포함되지 않은 만남을 제안하는 모습도 달고 포근했다.
영화를 보는 중 오빠가 대뜸 내 손을 가져갔다. 그러더니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누른다. 예전에도 속이 더부룩하면 민간요법의 일종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를 주물러 주곤 했었다. 근데 난 지금은 속 하나도 안 더부룩한데? 손을 몇 번 눌러주더니 손을 잡는다. 진짜 웃긴 사람이야
예전에도 데이트를 하고 나면 자기 전 좋았던 순간을 곱씹곤 했는데, 이 날 자기 전에도 손잡기를 계속 재생했다. 항상 손을 잡던 우리가 손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손을 잡을까 말까 하다 손을 잡는다.
어느 날은 손을 잡았고, 어느 날은 포옹도 했지만, 또 어느 날은 서로 절대 만지지 않았다. 선을 묘하게 넘나드는 텐션이 간질간질했다.
우리는 다시 만나는 중일까 새로 만나는 중일까
편안함과 설렘이 공존한 한 달, 나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질문을 반복해야 했다. 답은 정해두고, 내가 답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는 것처럼 고민했다.
앞으로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이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이 질문의 근간은 상대를 놓치는 것에 대한 불안보단 내 젊음을 놓치는 데에서 온 불안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나에겐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재밌는데. 오랜만에 간질간질한데. 어차피 끝을 모르는 건 누구나 다 같을 텐데.
딱 1년만 믿어보면 어떨까.
9년 전 첫 데이트를 했던 혜화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보자고 약속했다.
메일이 2년이나 지나서 온 건 참 다행이다. 헤어진 지 1년 후쯤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때의 난 이별을 습관처럼 재생하고 자발적으로 상처 입던 때였다. 그때 연락이 왔다면 연락을 구원으로 여겼을 것이다.
메일은 나에게 놓쳐선 안될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행동을 조심했을 것이고, 똑같은 이별을 맞지 않기 위해 움츠러들고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움츠러들고 조마조마한 불안은 그 자체가 이유가 되어 연애를 망쳤을 것이다.
새로 만나는 중이다.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다. 사랑은 구원이 아니다. 관계와 무관하게 내 일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나는 종종 침울해진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음에 안온하다. 그래서 고맙다.
이 이야기의 끝은 무엇일까.
지금은 알 수 없는 결말의 초입을 글로써 남긴다.